우리가 흔히 쓰는 '개판 오분 전'이라는 표현은 굶주리는 삶을 살았던 한반도 민중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표현이다.

(전략) 개판 오분 전의 개판은 콩글리쉬로 'dog plate'가 아닌 것이었다. 개판은 開版이라는 한자 성어였다.

開는 열린다는 의미이고 版은 씨름'판', 싸움'판' 등 어떤 왁자지껄한 상황이 벌어지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어떤 요란한 상황이 열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개판 오분 전이란 어떤 요란한 상황이 벌어지기 오 분전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개판 오분 전'은 슬픈 우리의 역사가 담긴 그런 의미였다.

"6.25 당시 전쟁통에 사람들은 식량을 배급 받았다. 그런데 피난촌에 식사 시간이 되면 밥짓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배급 준비가 끝나면 신호를 했는데 그 신호가 바로 개판이라는 것인데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기 마련이어서 사람들은 '개판'이라는 신호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개판이라는 신호 오분 전에 미리 움직여 난장판이 되는 상황을 일컷는 것"(주*1)이라는 것이다.


개판 오분 전......


개판 오분 전......... 그리고 오분이 흐른 후에는 어렵게 끼니를 배급 받은 '승자'와 끼니를 배급 받지 못해서 한끼를 굶을 수 밖에 없는 '약육강식 하'에서의 처절한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게 되는 것으로 미리 움직이지 않으면 한끼 식사를 굶을지도 모른다는 그 초조감이 오늘날 현대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빨리병'에 걸리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자펌 - 전문은 여기를 클릭)


드물지 않게 한국사람들을 비판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업무 때문에 미국의 한 업체에 장기간 체류했을 때의 일이다.


한달 쯤 지나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왕따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매일같이 있었던 '점심 식사하러 가자'라고 하던가 또는 '근무 후에 가볍게 한잔'이라는 제안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내 잘못도 있었다. 왜냐하면, 개발환경이 내가 한국에서 쓰던 것과 많이 다른 것이어서 개발환경에 익숙해지느라 보름 정도를 점심시간을 건너뛰고 overtime도 불사했으니까.


아마 그 과정에서 '식사하러 가자'라거나 '근무 후에 가볍게 한잔하자'라는 제안을 빈번히 거절했으니까 거절 당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나중에는 제안 자체가 사라졌다고 생각했기 떄문에 아무 생각없이 넘겼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개발환경에 익숙해져서 점심시간을 챙기는 것은 물론 칼퇴근을 할 떄도 나에게 그런 제안을 하는 직원들이 없는 것으로 보고 약간 열(?)을 받았다.


그래서 한 현지 회사 직원에게 불평 아닌 불평을 했다.


"아니, 내 사정 뻔히 알면서 점심식사나 한잔 제안을 몇번 거절했다고 왕따 시키냐?"


그러자 그 직원은 얼굴에 미소를 띄더니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고 그루씨는 식사하러 가자거나 한잔 제안을 하면 응답이 한 템포 늦게 나와서 그래"


설명인 즉, 누군가 제안을 했을 때 내가 업무 때문에 거절을 하는 경우에는 '나중에'라는 응답이 즉시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은 '아, 지금 바쁘구나'라고 이해를 하면서 넘어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예스까, 노까'라는 응답이 한 템포 늦게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자주 보이니까 상대방은 나라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무언가 무척 바쁜가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따라서 오히려 나를 배려하느라 '식사 또는 한잔 제안'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은 아마 한국인들의 일상적인 '버릇'일 것이다. 좋은 의미로 '겸양의 자세'이고 나쁜 의미로 식불언(食不言) 문화에 지배된 탓이다.


식불언(食不言) 문화의 또 다른 예는 취중진담(醉中真談)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다.


내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짜증내는 것 중 하나가 회사에 대한 불만, 상사에 대한 불만 또는 부하직원에 대한 불만들을 결코 맨정신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중진담(醉中真談)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술 한잔 들어가야 이런 불만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화가 나는 것은, 취중에 회사에 대한 불만 등이 쏟아져 나왔을 때 그 불만을 반영하려고 나름 노력했던 내가 '술자리에서 한 말을 뭐 그리 신경 쓰는지' 물색없는 놈이 되버린다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자리에 가서야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을까? 그 이유는 바로 식불언(食不言) 문화가 지배하기 떄문이다.


식불언(食不言) 문화는 조선시대에 유래된 풍습이다. 그리고 이런 풍습은 먹거리가 풍부했던 왕궁은 물론 '개판 오분 전'의 표현에서 있듯 상시적으로 굶주렸던 조선민중의 애환이 습관화 된 이유이다.


왕궁의 경우에는 워낙 사람들이 많은 반면에 그 사람들을 동시에 식사를 하기 위한 인력이 태부족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런 이유 떄문에 오후 근무는 거의 못하는 폐단을 개선하고자 하는 상소문들이 올라오기도 했었는데 그런 폐단을 줄이기 위한 조치 중 하나가 바로 식불언(食不言), 그러니까 '밥상 앞에서는 대화 금지'라는 조치였던 것이다.


그리고 상시적으로 굶주렸던 조선민중들에게는 아닌 말로, '남에게 먹거리를 뺴앗길까봐' 땀을 내면서 먹을 것을 꾸역꾸역 먹는 것이다. 당연히 '밥상 앞에서 대화할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비교적 여유가 생겼지만 식불언 문화는 그대로 유지되어 군대에서 식불언(사실, 군대 식사 시간에 대화를 하면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병장급 고참이라면 모를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요즘 군대는 어쩐지 모르겠지만) 문화는 유지되었고 일반 가정에서도 식불언 문화가 유지,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불언 문화 떄문에 미국에서 유학생들이 많은 잡음을 내고 있으며 미국의 식사 예절에 상당히 어긋나는 것들이 많아서 일부 식당에서는 '한국사람은 식당 출입 금지'라는 팻말을 내거는게 쌍팔년도 이야기가 아니라 최근에 발생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한번 설명한 것 같은데, 심리학적으로 사람들은 식탁 앞에서 '경계심을 푼다'고 한다. 동물의 세계 다큐들에서 보면 육식동물들이 먹이를 먹는 순간 가장 온순해지는 경향을 보이며 영업사원들이 식사 접대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자연의 개체를 지배하고 있는 생존본능인 경계심이 식탁 앞에서는 무장해제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식불언(食不言) 문화가 지배된 탓에 식탁 앞에서 '경계심을 풀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부부 생활의 경우, 아무리 살을 섞는 관계라고 하지만, 경계심이 가장 누그러져서 마음 속에 있는 것을 꺼낼 기회가 사라지니 부부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부부 간의 대화가 사라지고 처음에는 '사랑'이라는 것으로 묶여 있던 부부 관계가 그 '사랑'이 희박해지면서 남편 따로, 아내 따로의 생활이 유지되고 남편은 밖에서 술을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음주 문화의 특색이 여기서 유래되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 관계도 마찬가지. 식탁 앞에서 자녀들이 마음 속에 있는 말을 꺼내기는 커녕 식불언 문화에 짓눌리다 보니 가장 많은 대화가 이루어져야 할 식탁 앞에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부모 따로 자식 따로 모드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요즘은 외식문화가 성행하여 그나마 낫겠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마음 속에 있는 말을 꺼내기 쉬울까?



이런 식불언 문화는 사람들 간에 마음 속에 있는 말을 꺼낼 기회를 박탈하며 특히 남성 가장의 경우 가부장 문화에서 지켜야 할 위엄과 취중진담이라는 표현에 빌어 술 한잔 들어가야 그나마 마음 속에 있는 말을 꺼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나 찬구 관계처럼 비경쟁적인 관계도 아니고 알게 모르게 경쟁관계에 있는 상대방과 마음 속에 있는 말을 꺼내려면 어설픈 술 한잔 따위로 가능할까? 그래서 생긴 것이 폭탄주 문화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제는, 이 폭탄주 문화가 그나마 마음 속에 있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두뇌회로가 먼저 작동을 멈춰서 '마음 속에 있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는 그대로 유지한 채 몸만 망가지는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반드시 철폐되어야 할 문화는 식불언 문화이다.


(덧글 :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간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내가, 요즘 내가 요즘 점심시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특별히 근무시간이나 퇴근 시간이 정해지지 않아서 오랜 기간 출퇴근 시간에 익숙했던 나에게 생소함을 느끼는데다가 규정(?)과는 달리 점심시간을 두시간 넘기는 것은 예사이기 떄문이다. 논리는 식사 시간에 맞추어 식사를 끝내고 회사로 돌아가서 자리에 앉아봐야 식곤증 때문에 조느라고 일 못할테니까 그 시간에 즐겁게 식사하고 대화하면서 소화시키자는 것이다. 꽤 논리적이기는 한데, 오랜 시간 동안 한시간 점심시간 규정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이 것도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이다. 특히, 업무 상, 엔지니어링 노가다(키보드 자판을 친 시간과 출력이 정직하게 비례하는) 부분이 꽤 있는 나에게는 시간적인 압박이 같이 생겨서 스트레스 지수는 좀더 높아진다. 좀더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