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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해병대 사령관을 역임한 박구일은 부마사태에 선두 투입된 해병대 7연대 연대장이었고 그는 현장에 투입된 해병대원들에게 이렇게 지시한다.(*4)
"시민들이 때리면 맞아라. 돌을 던지면 맞아라. 어떠한 경우에도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 단, 어떠한 위급한 상황에서도 총은 빼앗기지 말라"
당시 현장에 투입된 한 해병 장교는 자조적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시위 진압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와 전경들에 비해 우리는 그런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다가 상부의 그런 지시를 받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몸으로 때우는 것"
만일, 광주학살 현장에 있던 공수부대 지휘관이나 또는 박정희가 투입하고자 했던 지휘관들의 직업정신이 투철했다면 학살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왜? 군인의 존재는 국민의 안위를 보장하는 것이 직업정신이고 막말로 박구일 연대장의 지시처럼 '시민이 때리면 맞아야 하고 맞아서 죽더라도 군인으로서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므로.
내가 전두환 할아버지가 전남 화순 출신이라는 '썰'을 꺼낸 이유는 바로 광주학살의 원인은 작금 한국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직업정신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전두환의 정권욕이 가해진 것이지 전두환이 딱히 경상도 사람이라서 광주에서 학살극을 벌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단지, 당시의 상황이 광주에서 학살극을 벌리는 것이 여러가지의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어디 멀리갈 것 있는가? 세월호 참사에서 선장이 직업윤리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세월호 참사는 미증유의 비극으로 끝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폐비 박씨가 탄핵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우리나라는 역사적 사건을 해석할 때 정치성이라는 MSG를 너무 과하게 넣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역사는, 솔까말, 세계 어느나라의 역사보다 더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MSG는 선동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민은 유독 선동에 약한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선동에 약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그 근거 역시 상당수 잘못된 선동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寂易騷"를 남기고 간다.
부산 사태에서 부산시가 집계한 일반 시민과 학생 부상자들 65명[자진 신고 기준] 가운데 11명이 중상으로 분류되었다. 65명 중 37명이 18일 밤에 시청 부근에서 군인들에게 두들겨 맞아 크게 다친 사람들이었다. 데모에 가담하지 않은 시민들인데도 구타를 당한 경우가 많았다. 군인들의 폭행은 무지막지한 것이었다. 데모 군중에게 곤봉을 쓸 때는 어깨 밑을 때리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군인들은 데모 군중도 아니고 아무런 위협도 주지 않는 양민들도 머리를 주로 때렸다.
군인들에게 맞아 다친 시민들의 80% 이상이 머리에 상처를 입었다. 구타의 강도와 머리를 맞은 피해자의 수를 생각할 때 사망자가 없었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었다. 다친 시민들의 병명을 늘어놓으면 군인들이 어떻게 사람을 폭행했는지 알 수 있다. 병명은 주로 창자 파열, 뇌좌상, 뇌진탕, 전두부 파열상, 후두부 열창, 안면 열창, 안면부 내부 열창, 전신 타박상, 뇌경막 손상 등이었다. 부산시가 발표한 부상자 통계에 따르면 16~19일 사이에 197명이 다쳤다. 경찰 부상자의 88%인 117명은 16~17일의 데모 진압 과정에서 다쳤다. 반면 시민과 학생 부상자의 66%는 계엄군이 주둔한 18일 이후에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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