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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직후 안철수는 '극중주의'를 이념노선으로 제시했다. 경제적 자유주의와 복지국가에 대한 지향, 보수적 안보관 등 진영논리에 구애받지 않는 안철수에게 중도와 극중은 어울리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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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철수가 극중주의를 내세운 것은 어울리는 이름 찾기가 아니었다. 국민의 지지가 집권세력에게 쏠렸고, 불리한 상황에서 국민의당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는 선전포고 성격이 짙었다. 국민의당은 민주당에서 갈라져나온 당이었고, 본가가 먹고 살만해지면, 독립심 보다는 본가에 돌아가서 넉넉하게 지내고 싶은 유혹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대선은 적폐청산을 시대적 과제로 고정시켰다. 그것은 정치적 수사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진보-보수라는 이분법 마저 제쳐버렸다. 정치를 적폐세력과 적폐를 청산하는 세력으로 재편 한 것이다. 대세가 기운 상황에서, 대선 직후 국민의당은 '적폐를 청산하는 세력'에 포함되기 위해 애쓰는 모양새가 뚜렷했다.
큰 물길에 얌전히 휩쓸려 가려고 하는 국민의당을 붙잡기 위해서, 안철수는 '극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국민의당이 집권여당과 청와대 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그럴려면 야당으로서 정체성을 세워야 했고, 나아가서 당권을 장악 해야했다.
국민의당원과 지지자들의 바람도 안철수의 생각과 같았다. 적폐청산을 지지한다면 국민의당의 호남중진들을 지지할 이유가 없고 더민주와 청와대를 지지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최근 바른정당과 합당에 대한 전당원 투표나 당내 여론조사, 국민여론조사 결과로서 확인됐다. 국민의당원과 야당성향의 국민들은 다수가 안철수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결국 안철수는 개혁보수노선을 표방하는 유승민과 새로운 정당인 미래당을 창당했다. 적폐청산을 지지하고 진보적 스탠스를 가진 이들은 호남 국회의원 중심으로 민주평화당을 창당했다. 결과로서 보자면 순리대로 된 것이고, 결대로 나뉜 것이다. 미래당은 중도와 개혁보수 간에 건강한 노선투쟁을 예고했다. 안철수와 유승민 서로가 다름을 인정했고, 각자 자기것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경쟁하자고 했다. 민주평화당은 국회에서 캐스팅 보터 역할을 하기보다는 더민주나 청와대와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국정에 협조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가 마크롱의 당선에 고무되어 극중이란 말을 따라했다는 평가도 있는데, 그런 이유로 극중을 말하려고 했다면, 이미 대선때 써먹었어야 맞다. 안철수는 국민의당을 살려내기 위해서 그 단어를 사용한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과업을 완수해냈다. 국민의당은 살아남았고 본래의 지지율을 회복했다. 물론 당명은 미래당으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안철수가 대권에만 욕심이 있었다면, 절대로 극중이나 중도를 입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중도를 표방한 세계의 어느 정당도 집권당이 되지 못했다. 정치사로 보면 중도 정당이 가장 신생아다. 더욱이 한국의 정치제도는 승자독식의 구조다. 승자독식의 구조에서는 오직 이분법의 당사자만 살아남는다. 선거의 계절이 아닐 때는 그나만 중도라는 말을 꺼내볼 수 있지만, 선거에서는 '사표유발자' 취급당하기 일수다.
현재 40석 정도의 중도정당이 승자독식의 양당제 틀 안에서 갈 수 있는 길은 두가지다. 하나는 협치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거대 양당의 한 축으로 확장하는 길이다. 후자부터 이야기 해보면,
두 번째길은 왕좌의 길이다. 두 가지 길을 게임의 룰에 따른 분류인데, 승자독식의 양당제는 단 하나의 왕좌를 차지하는 게임이고, 왕좌를 차지한 자가 모든 권력을 독식하는 게임이다. 왕좌의 게임 룰 안에서는 진보고 보수고, 중도고 필요없다. 덩치키워서 이기는게 장땡이다. 중도정치를 하고, 문제해결의 정치를 하고, 또 미래를 위한 비전을 펼치려고 해도, 왕좌를 차지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안철수는 왕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래서 그가 대통령 욕심에 무엇을 한다는 평가는 거짓 마타도어일 뿐이다. 왕좌의 길을 가고자 했다면 훨씬 쉬운 방법이 있다. 중도를 말할 필요도 없고, 바른정당과 합당으로 에너지 소모 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병에 걸렸다면 쉬운길이 많다. 그러나 안철수는 쉬운 길을 쫒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유시민이 썰전에서 안철수에게 "왜 그렇게 힘들게 사세요"라고 물었는데, 맞다, 그는 힘들 길만 걷고 있다.
그러나, 왕좌의 길을 갈수 밖에 없는 상황이면, 안철수는 그 길을 갈 것이다. 자유한국당과 연대를 하지는 않겠지만, 미래당을 양당제의 한 축으로 만드는 길을 개척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냐 안하냐는 따로 따져볼 문제고, 내가 예상하는 것은 안철수가 다당제와 협치를 내세웠다고 해서 왕좌의 길을 도덕적으로 거부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그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고,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안철수는 할 것이다.
안철수가 왕좌의 길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협치의 길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만약 중도세력이 협치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정치에서 왕좌의 게임이 끝난 것이다. 왕좌의 게임이 시스템 적으로, 법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완벽하게 소멸해야지만 가능하다. 협치와 왕좌는 공존이 불가능하다.
중도는 오직 협치의 상황에서만 내세울 수 있는 노선이다. 협치의 세계에는 승자독식이 없다. 정부의 권력을 여러 정치세력이 나눠갖는다. 국회도 국민의 지지성향에 따라 구성된다. 이와 같은 협치의 세계에서만이 중도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다. 스스로 중도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20%정도 되면 충분하다. 어떤 선거에서도 중도가 큰 영향력 행사해서 진짜 캐스팅보터가 된다.
안철수가 힘든 길을 가는 것은 이 '협치의 길'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다. 오직 협치의 길만이 중도가 사는 길이다.
더민주는 장기집권을 꿈꾸고 있다. 청와대와 더민주는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모델로 사회적 대타협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더민주는 대한민국을 둘로 나누는 양극단의 한 축으로서, 심하게 말하면 '갈등유발자'다. 갈등유발자가 대타협을 주도한다는 것은 신뢰의 문제를 야기한다. 협상과 타협에서 신뢰의 문제는 핵심중에 핵심이다. 신뢰가 없으면 협상의 결과는 불보듯 뻔한 것 아닌가.
사회민주주의도 협치의 모델이긴 하지만, 사민당의 안정적인 장기집권을 전제로 한다. 사회적 대타협은 5년 10년짜리 단기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민주가 사민주의적 사회적 대타협을 지금에서 강조하는 것에는 사회적 대타협에 방점이 있다기 보다, 장기집권에 방점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협치의 태도 없이 왕좌의 게임하듯 정치를 하면서 대타협을 이야기 하는 것은 역시 믿을만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기집권도 사민당식 장기집권이 아니라, 한 10년 정도, 전에 해온대로 하고픈 욕망으로 읽힌다.
안철수와 유승민은 자유민주주의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면 너무 통속적이라서 오해가 있을 법한데, 사민주의가 진보에서 중도로 가까이 온 것이라면, 자민주의는 보수에서 중도로 가까이 온 것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다. 미래당의 정치적 과제는 더민주의 장기집권 시도를 좌절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대타협을 빌미로 장기집권을 하면 안된다. 사민주의 장기집권을 하더라도 그 전에 협치가 가능한 제도적 문화적 정치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로 왕좌의 게임일 뿐이고, 사회적 대타협이 아니라, 양극단의 적대적 공생이 지속되는 것일 뿐이다.
불교에서 중도는 '내려놓음'을 뜻한다. 끊임없이 비워내고 나를 내려 놓아야만, 편견없이 받아들이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와 유승민이 함께하는 미래당은 중도와 개혁보수의 아집을 끊임없이이 내려놓음으로서 중도와 개혁보수를 실천하기를 희망한다. 왕좌의 길을 폐하고 협치의 길을 열는 것만이 미래당이 사는 길이다.
2018.02.05 01:48:18
불교의 중도가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 아세요? 그 당시 고행을 하며 깨닮음을 얻는것이 인도의 유행이였을대 부처도 그대로 고행을 실행하다 문득 깨달은것입니다. 그런데 안철수는 고행을 한적이 있었던가? 여기서 고행이란 자신의 이념일 투철하게 고민했던가 입니다. 그게 없으면 중도같은건 없습니다. 안철수가 보수주의로 혹은 진보주의로 사상적 연구와 고행을 해봤냐는 겁니다. 그런게 없는 사람이 무슨 중도라는 깨닮음을 얻겠냐는 겁니다. 중간을 하는게 중도가 아닙니다. 안철수가 항상 비판받았던게 뭔가요? 기본적인 이념이 없다는 겁니다. 진보주의자면서 중도적 정책을 펼칠수는 있지만 중도주의자라는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중도는 방법론 즉 정책의 속도차이 입니다. 그게 이념일수가 없죠. 유럽의 사민주의가 중도적 정책으로 복지국가를 이루었지만 그들이 중도주의자인가요? 아니거든요. 그들은 명백한 사회주의자입니다. 정책을 중도적인걸로 선택을 한거고요. 그러니까 방향성이 있어야 중도라는게 생기는 겁니다. 안철수의 방향성은 뭔가요? 그가 주장했던 경제는 진보라고 했는데 지금 전혀 진보적 뱡향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냥 복지 늘리겠다 이거 하나만으로 뭔가 될거라 생각하나 본데 중도주의자라면 상황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겠다 이거 아닌가요?
안철수가 생각하는 그 중도라는게 진보에서 보수에서 좋은것만 갖다 쓰겠다 이게 실용적이다. 딱 기업가적 마인드죠. 누군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진보와 보수 좋은걸 누가 판단하나요? 둘은 치열하게 논쟁을 하면서 발전을 하는겁니다. 그냥 섞어서 쓸 수 있는 도구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안철수가 하는 말이 뭡니까? 허구헛날 둘이 싸운다. 적대적 공생관계다. 이런걸로 이념논쟁을 비하하는거죠. 물론 정치공작적 논쟁도 있습니다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겁니다.
2018.02.05 02:33:24
dd님.
부처가 고행을 원인삼아 중도를 깨쳤다면, 제자들에게도 고행을 시켰겠지요. 고행을 해야만 중도를 깨우칠 테니까요. 그러나 부처는 제자들에 고행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깨달은 중도를 스스로 실천하셨고, 제자들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지도했습니다.
중도는 정책의 속도차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흔히 진보가 '내가 참말로 옳은데, 너무 빨리해서 좀 문제지?'하는 매우 독선적이고 근거없는 우월적 사고방식에서 중도를 볼 때 생기는 오류입니다.
중도는 모든 사고체계를 잘 이해하고 내것으로 한 다음에, 자신과 사회를 경영할 때, 있는 그대로 상황을 인식하고, 그에 맞는 사고체계를 골라 사용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사고체계 하나를 알고나서, 이것만 옳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고정관념을 가지고 상황을 인식하지 않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부처의 중도이고요.
이것을 선사(Zen Master)들은 '빨간 공이 오면 빨간 공을 비추고, 파란 공이 오면 파란 공을 비춘다'고 가르쳤습니다.
진보-보수 모두 나쁘지 않습니다. 나만 옳다고 하는 것이 아주 나쁜 것입니다.
2018.02.05 03:36:08
고행을 참선으로 대처한거죠. 불교에서 깨닮음은 중도를 한다고 얻는게 아닙니다. 중도는 고행을 대신해서 어떻게 수행하느냐를 깨닮은것입니다. 그런데 안철수에게 중도란 중간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하는 행동들이 딱 그겁니다. 극중주의도 그래서 애기한거고요. 마크롱이 어부지리로 얻은 대통령자리에 영감을 얻었나본데 지금 프랑스에서 마크롱 지지율은 반토막 났습니다.
옳다고 생각해야 의견을 내죠. 무엇을 고를것인가 어떻게 정합니까? 진보와 보수 자기들이 둘다 옳다고 주장하고 토론을 해야죠. 토론을 할때 내가 맞다고 생각해야 그에 맞는 논리를 적립합니다. 상대는 그 헛점을 파고드는거고요. 안그렇습니까? 그렇게 헛점을 매꾸는 과정에서 서로가 발전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발전된 과정이 바로 중도적 정책으로 나타나는 거고요. 그러니까 서로 싸워야 발전을 한다는 겁니다. 사민주의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사회주의자 내부에서 엄청나게 치열한 이념투쟁과정에서 나온 겁니다. 그런데 님이 말하는 그 중도라는건 무엇을 판단할 것이냐의 문제 아닌가요?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판단 할 수 있냐는 겁니다. 이것만 옳다고 생각하지 않고 고정관념이 없다고 해서 판단이 되나요? 아니잖아요. 그건 그냥 생각의 가능성이 높은것이고 가치판단의 기준은 그 가치라는 것 자체를 설정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님이 말하는 그 중도에서는 가치라는것이 없다는 겁니다. 기계적으로 중간을 선택하자 이거 아니냐는 겁니다. 상황에 따라서 보수주의 했다 진보주의 했다 이게 아니라는 겁니다. 애초에 그걸 할 수 가 없습니다. 님 말대로 판단을 해야 하는데 내가 진보와 보수 둘의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사항을 동시에 판단을 할 수 있냐는 겁니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으면 어떻게 판단을 하나요? 그러니까 할 수 있는건 적당히 타협하자 이것 뿐이라는 겁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칠게 몰아붙인다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자는게 중도인가요? 그런게 협치인가요? 싸우기 싫어서? 아니죠?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무조건 지키면서 정치를 해야죠. 그런데 님이 말하는 그 중도에서 이런게 있냐는 겁니다. 그러니 중도라는건 적당히 중간을 선택할 것이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방향성으로 가는 것인가를 확실히 알고 있는데 그것의 방법론에서 천천히 갈것인가 빠르게 갈것인가 속도를 조절하자는 겁니다. 사민주의자들이 님이 생각하는 그런 중도를 했다면 그냥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적당히 섞어서 썼겠죠. 그런데 기본적으로 사민주의는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회주의 국가건설은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적당히 타협했다면 복지국가가 적당히 어려울때 그냥 적당히 이도저도 안되서 지금의 복지국가는 도루묵이 되었겠죠. 그리니 사민주의는 둘의 짬뽕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을 아주 천천히 하자입니다. 그러니 사민주의에서 중도란 속도의 차이라는 거고요.
2018.02.05 09:50:39
dd님.
참선은 고행이 아닙니다. 쾌락과 금욕이 모두 고통의 씨앗임을 알고, 두 양단을 모두 추구하지 않되, 그렇다고 배척하지도 않는 것이 참선입니다. 참선은 웰빙의 라이프스타일링이고, 마음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편안해지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옳다고 생각해야 의견을 내는 것이 맞습니다. 이도저도 아니라고 하고, 이것도 저것도 옳다는 생각에 집착해서 옴짝달싹 못하는 것은 중도가 아닙니다. 다만, 옳다고 생각한대로 행동하되, 그 옳음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양비와 양시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옳은 것을 떠올려서 적시적소에 행동하는 것이 중도고요.
옳음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불교에서는 땟목으로 비유합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 땟목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강을 건넜으면 땟목을 강 기슭에 놓고 가야죠. 땟목이 진리라고해서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 씀씀이에서도 그렇고, 이념이나 사회적 정책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쓰고 나면 제자리에 놓고, 또 필요하면 쓰고 놓고 할 뿐입니다.
사민주의는 전통적인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북유럽 사민주의가 만든 사회적 대타협은 노동은 파업을 하지 않고 기업은 완전고용을 의무로서 받아들이는 것이고요. 정부는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자유시장에 자율권을 이양하고, 노동과 고용의 복지는 노동계에 이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는 민간의 개인과 기업의 자본과 생산수단의 소유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혁명의 핵심은 자본과 생산수단의 국유화입니다. 사민주의는 국유화를 최종목표로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혁명 자체를 폐기한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얻어지는 사회안정과 경제의 규모화 발전을 바탕으로 고부담 고복지의 사회체제를 만들어냈지요.
북유럽이 극심한 사회혼란을 기회삼아 사회적 대타협을 이룬 것은 이념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북유럽의 모델로 부터 당장 배워야 하는 것은, 그와 같이 이념에 집착하지 않고 이념을 뛰어넘어서 필요한 것들 제때 쓰고 놓고 할 수 있는 중도의 마음자리입니다.
당장 고부담 고복지의 복지사회가 좋아보인다고 또 거기에 집차해서 그걸 하자고 하면, 보편이냐 선별이냐 하면서 허망한 싸움밖에 못합니다. 사회적 대타협 모델이 훌륭한 사회해법이라고는 해도, 그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낸 마음자리부터 갖춰야 하는 것이지 당장 그것부터 하자고 하면, 덧셈뺄셈도 익숙하지 않은 초등학생이 대학교 미분적분 하겠다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옳음을 가지고 행하되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중도고, 공(空)이고, 진공묘유(眞空妙有)입니다.
2018.02.05 10:53:13
사회주의 핵심은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아닙니다. 그건 공산주의의 이념이고요. 사회주의 중 공산주의가 있는겁니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가 사회주의중 가장 과학적이라고 말하는것이지 사회주의 자체가 공산주의인것은 아닙니다. 마르크스 이전에도 수많은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존재했거든요. 그들은 공산주의를 주장한적이 없습니다. 둘은 구분해야 맞는거고요. 사민주의도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스웨덴의 사민주의와 독일의 사민주의가 있는데 성공한것은 스웨덴의 사민주의였고 그 이유가 바로 사회주의 건설목표를 버리지 않아서입니다. 사민주의가 기존의 공산주의와 다른점은 마르크스혁명론을 포기하고 점진적 사회주의건설을 하자는거였습니다. 그게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그래서 대타협을 한거고요. 사회주의 이념을 버린게 아닙니다. 그러면 그냥 독일처럼 적당히 섞어서 썼겟죠.그런데 독일이 실패한 이유는 목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리저리 갈팡질팡 하다 추진력을 얻지못해 매우 혼란스러워서 나치에게 먹힌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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