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아이들이 단체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 중 한 명이 출발 직전에 끔찍한 환각을 본다.
활주로를 벗어나자마자 비행기가 폭발하여 승객들이 모두 죽는 환각이 너무도 생생하여 젊은이는 아우성을 치다가 결국 올라탔던 비행기를 내리게 된다.
그 와중에 그의 친구들 너댓 명도 함께 내리게 된다.
그리고 비행기는 환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사고를 일으켜 폭발한다.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한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인 며칠 후에 젊은이는 또다시 환각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살아 남은 친구들이 한 명씩 차례로 납득하기 어려운 사고를 당해 죽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이번 환각들 역시 현실로 나타난다.
결국 밝혀진 사실은, 원래 죽을 운명이었던 젊은이와 그 친구들이 젊은이의 예지 환각 덕분에 살아 남기는 하였으나 죽음은 자신이 놓친 목표물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한 명씩 죽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젊은 아이들은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한 명 한 명 죽어 간다.
그러다가ㅡ 마지막으로 살아 남은 젊은이와 그의 여자친구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비결을 알아냈다고 생각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죽음이 마침내는 그들을 덮친다....


이상이 영화 '데스티네이션'의 줄거리다.
이 정도면 오락물로서 일단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컨셉이 꽤 괜찮다.
하지만 속편이 나오면서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데스티네이션2까지는 어떻게 참아 줄 수 있더라도 5편, 6편까지 나와 있는 걸 보고는 황당해지지 않을 수 없다.
죽을 뻔하던 젊은이들 몇 명이 살아 남지만 며칠 뒤에는 결국 죽고 만다ㅡ이 기본 컨셉에 아무 변화도 없는데 같은 영화를 일부러 또 볼 필요가 왜 있을까.


사신(死神)은 한 번 찍은 목표물을 포기하지 않는다ㅡ이 기본 컨셉을 그대로 반복하는 대신에 영화는 인물들이 사고사를 당하게 되는 갖가지 기묘한 과정을 고안함으로써 바리에이션을 준다.
윤활유가 새고, 차가운 컵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청소기 코드가 탁자 위의 뭔가를 넘어뜨리고, 보통은 잠기지 말아야 할 선텐 기계의 걸쇠가 잠겨져 버리고, 전동차 운전자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어 다른 소리를 못 듣고....
하나씩 보면 아무것도 아닌 현상들이 예닐곱 가지 모여서는 결국 사람이 죽는 사태를 빚어낸다.
여느 때 같으면 전혀 위험을 느낄 이유가 없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그런 작은 우연들이 겹치고 또 겹쳐 사람의 숨통을 끊어 놓는 그 기발한 발상, 이제 영화는 거기에 집중한다.


이쯤 되면 영화를 보는 것은 악취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잖은가. 이번에는 또 어떤 기묘한 방식으로 사람을 죽일지 지켜보는 건 천박한 짓이 아니고 뭔가.
나이프가 날아와 심장에 꽂히고, 감전을 당하고, 불에 태워지고....
그런 갖가지 물리력 앞에서 인간의 육체는 너무도 쉽사리 허물어지는 연약한 소재이다.
영혼을 담는 그릇이던 육체에서 영혼이 제거되고 단순한 소재로서의 육체만 남는다.
성품.인격.개성.... 영혼을 반영하던 속성들이 모두 사라진 영화 속의 인물들은 꿈도 열정도 남모르는 아픔도 없고 그저 살아 남고자 하는 본능에 충실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 영화는 인간의 위엄을 떨어뜨린다.


물론 '데스티네이션' 같은 평범한 오락물을 놓고 이런 거창한 소리를 하는 것이 격에 맞지 않는다는 건 나도 안다.
게다가 인간에게서 육체적인 면만을 보는 영화는 데스티네이션 시리즈 말고도 많이 있다.
더 무서운 영화, 더 끔찍한 장면들을 나열하는 징그러운 영화들 말이다.
하지만 뭐랄까, 징그러운 영화들은 처음부터 그 장르에 천착한다는 차이가 있다고 할까....


말하자면 이런 얘기다.
에로 영화나 멜러 영화에서 간간이 비치는 알몸은 대단히 에로틱하다.
반면에 포르노에서는 알몸은 그 자체로는 그리 에로틱하지 못하다.
이제부터 벌거벗은 남녀가 나와서 한바탕 설치리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기에 어지간히 망칙한 장면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은 성적인 자극을 받기 힘들어진 탓이다.
그래서 어떤 포르노는 제대로 된 제작 환경 아닌 노천이나 버스 안에서 섹스를 벌이기도 하고 몰래카메라 형식을 채택하기도 한다.
요컨대 일상적인 감수성을 복원시킴으로써 성적 흥분을 느끼기 쉽게 유도하는 것이다.
슬래셔 무비라는 것도 마찬가지ㅡ
애당초 작정하고 징그럽게 만든 영화임을 감안하고 마음의 대비를 하면 끔찍끔찍한 장면들이 주는 공포와 혐오도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 내려갈 것이다.(문장이 왜 추측형이냐 하면 나는 남달리 간이 작은지 비교적 얌전한 수준의 공포영화조차도 견디기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슬래셔 무비는 스틸만 봐도 역겨워 단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데스티네이션'에서는 일상적인 감정이 내내 유지되고 있다.
언제 또 선혈이 튀는 장면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어 팽팽한 긴장감은 감돌지만 그 장면이 나오기 직전까지는 일상적인 풍경이 계속되므로 보는 이의 감성도 평상적인 모드로 맞추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을 영혼 없는 고깃덩어리로 취급하는 모습을 평상적인 도덕감각을 유지한 채 지켜보도록 강요한다는 데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의 천박함이 있다.


사족//
슬래셔 무비를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이것도 슬래셔 무비만큼이나 잔혹하지 않을까 싶은 영화는 나도 한두 편 본 적이 있다.
영화를 소개하는 글이 하도 흥미로워 이런 영화라면 어느 정도의 역겨움은 감수할 가치가 있겠다고 판단하였던 것인데, 지금도 나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영화(제목을 잊어 버렸다) 역시 인간을 육체로만 다루고 있기는 하였으나 육체를 부각시키는 과정 자체에 철저히 집중함으로써 육체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을 보는 이가 스스로 제기하게 만들고 있었다.
'데스티네이션'에는 그런 진지함이 없다.
'데스티네이션'의 육체 천착은 그저 영화를 진행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