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북관계와 동아시아 평화를 주제로 많은 사고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분단 이후, 우리 정신세계를 지배한 '화해협력'이나 '반공'의 틀을 넘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영구적으로 안착시킬 새로운 '한 생각(idea)'이 무엇일까 하고 말입니다. 

얼마 전에 아버지 댁에 갔다가, 방찬영 총장의 책을 접했습니다. 방찬영 총장은 카자흐스탄 키맵대학교 총장이고,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경제고문으로 카자흐스탄의 시장경제도입과 개혁개방을 주도한 분이라고 하더군요.

책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내는 시장지향적 개혁개방 제안서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방 총장이 김 위원장의 초대를 받았고, 평양에서 브리핑을 할 것인데, 그 책이 브리핑 자료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책에 잼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1991년에 고르바초프가 카자흐스탄을 방문했고 방 총장은 대통령 경제고문 자격으로 그를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방 총장은 고르바초프에게 당시 카자흐스탄에서 진행하던 국영기업과 개인주택 사유화 진행과정을 소개했고,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낙후된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소련의 개혁과 개방에 대한 소신을 피력했습니다.

방 총장은 그 때, 고르바초프가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모순과 부조리 자체를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의 기본 틀 안에서 무언가를 개량하는 것이 목적임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방 총장은 사회주의 경제체제 자체의 모순과 결함 때문에, 체제를 바꾸는 근본 개혁없이, 체제 내의 개혁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고르바초프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고르바초프는 설득되지 않았고, 딱잘라 한 마디로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고 합니다.

"후세의 역사가들이 고르바초프가 충실하고 헌신적인 공산주의자로 무덤에 묻혔다고 기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방 총장의 예견대로 개혁개방 없는 개량의 시도와 급진적 견해가 고르바초프의 통치권력에 몰락을 가져왔고, 야나예브의 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실각했습니다.

방 총장은 이 내용을 비중있게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결국 북한 역시 체제 자체를 개혁하고 개방하지 않으면 경제적 성공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주장인 것이죠. 김정은도 핵완성 이후에 근본적인 경제문제의 해결은 국제관계에서가 아니라, 북한 내부의 체제를 개혁함으로서 성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동네 양아치가 권총하나 주었다고 깡패되서 먹고 살 만큼 삥뜯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김정은도 분명 고민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얼마전 뉴스에서 김정은이 다시금 '사회주의 체제 수호'를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이미 다양한 시장경제의 형태가 도입되어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집단농장의 말단 단위인 분조의 최소구성원 수가 거의 한가구 구성수로 축소 되었다고 하고요. 협동농장의 개념이 많이 희박해 진 것이라고 하더군요. 또, 이미 국가 소유의 생산시설이 원자재 공급이 끊기거나 에너지 사정, 기반시설부족 등에 의해서 가동을 멈춘지가 오래 됐다고 합니다. 해서, 실제로는 국가의 묵인하에 사적인 유통업이 존재해서 국가의 생산능력 부족을 메우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을 하더군요.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핵보유 이후에, 다시 사회주의 체제강화 노선으로 돌아서는 것은 그냥 총든 동네 양아치가 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입니다. 동네 구멍가게들 상대로 삥뜯겠다는 거죠. 주변에 구멍가게도 없는데 말이죠. 경제는 2류 정치는 3류인 남한 빼고는요.

이제와서 사회주의 체제강화라는 것은 결국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하고 필요와 분배를 국가가 결정하겠다는 말이죠. 결국 기존에 인민들이 제 살길 찾아 하던 봇짐장사도 이제는 그만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이 먹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기 이전에 이미 국가소유, 국가주도의 경제로는 넉넉하게 먹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세계사에서 증명된 것 아니겠습니까.

고르바초프가 급진적 공산주의자라면, 북한은 맹신적 주체사상파들입니다. 역사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수령의 지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수령을 지도자로 신봉하고요. 그러나 북한의 수뇌부가 주변국들의 알력다툼 속에서 핵 만들기에 올인하는 동안, 수령의 보살핌 없이 각자 도생하며 끼니를 해결해온 인민들이 이제는 상당히 관료적 지배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개방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은 우리나 북 모두에게 이 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요구합니다. 북한도 체제 변화의 임계점을 만지고 있고요, 한국도 수구적인 정치의 한계에서 무능력이 극대화 되고 있습니다. 서로가 각자 지닌 결핍이 양측 모두의 근본적인 변화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죠.

나는 우리가 얽매임 없는 사고로 깨어나서 남과 북을 두루 유익하게 하는 리더쉽을 발휘하기를 소망합니다. 그 방법을 많은 분들이 생각해야 합니다. 기존의 사고 틀은 과감하게 버리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주체사상까지 담아내서 단 번에 녹여낼 수 있는 '한 생각'을 찾아야 합니다.

북한 핵/미사일 실험과 대한민국의 평창올림픽을 둘러싸고 현재 남과 북의 행동은 너무도 아쉽습니다. 트럼프는 남북 대화의 공로가 자기 것이라고 떠벌립니다. 그 와중에 철학과 소신이 부족한 남측과 핵완성에 들 뜬 북한이 경솔한 행동만 하고 있지요. 서로에게 아무런 유익도 없는 일들을 선전이랍시고 하고 있습니다. 비싼 미국산 트럼프 화장품을 사다가 화장빨로 겉모습만 신경쓰는 것이죠. 한반도 주인으로서 서로 유익되고 잘 살 방법은 함께 모색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고 북한도 그런 것이죠. 누구 탓도 아니고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쇼윈도 부부 신세에요.

남한이 아무리 먹고 살만해도, 또 북한이 이제 핵무기 마져 가졌다고 해도, 둘의 행동은 20년전에서 나아진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사고의 틀이 고정되어서 바뀌질 않기 때문입니다.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합니다. 핵심적인 '한 생각(idea)'을 바꿔야 합니다. 그것을 찾는 것이 당장의 시대정신이고요.

북한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삥 뜯을 생각 밖에 못하는 것이죠. 핵무기도 인민들 먹여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가오잡으려고 개발한 듯 보입니다. 순 생 양아치인 거죠. 남한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반쪽짜리 권력들이 그냥 자기유불리 따라서 자발적으로 삥 뜯기고, 아니면 쥐뿔도 없으면서 센척이나 하고 합니다. 어디가서 평생 주인노릇은 못해볼 더부살이 신세와 같습니다.

이거를 남과 북이 함께, 동시에 벗어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