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을 보는 두 편의 글을 소개합니다.


                                                           2018.01.15


최근 영화 <1987>에 대해 당시를 살았던 X86 세대가 바라보는 글이 있어 아래에 소개합니다. 저도 이 두 편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문화평론가 김태훈은 영웅이 되기보다 신사가 되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저는 김태훈의 이 말에 공감합니다.

저는 우리 애들에게 위인전을 읽히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위인전은 미화로 가득 차기도 하고,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어 우상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위인들은 대개 정치사회적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아 인간과 그 삶 자체에 대한 탐구를 하는 모델로는 적합지 않다고 보는 편입니다. 영웅은 한 순간의 결정, 우연한 사건으로 탄생하지만, 신사는 그런 일발의 사건으로는 될 수 없지요. 장시간 자기 내면을 가꾸고 노력해야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종철, 이한열, 김세진 등이 고문, 최루탄 피격, 투신 자살로 자신의 젊음과 인생을 빼앗긴 것은 안타깝고 그에  상응한 평가도 따라야 하겠지만, 한 평생을 실험실에서 연구에 몸 바치거나 골방에서 고전을 번역한 사람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 인간을 연루된 사건으로 평가하지 않고 전 생을 관통한 그들의 철학, 그리고 이룬 성과로 평가합니다.

나이 50 중반을 넘어가다 보니 선, 정의, 도덕 등에 대한 개념이나 가치가 새로워집니다. 저는 안중근보다 이토 히로부미의 손자에게 용서를 빌 수밖에 없었던 아들 안준생의 인생을 더 안타깝게 생각하고 연민의 정을 느끼고 이해하는 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장으로서 짊어져야 했던 안준생의 삶의 무게를 느껴 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를 친일파라 손가락질 할 수 없다고 보지요.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치관이 바뀌고 삶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꼴통 보수화 되는 것이라고 누가 욕해도 저는 담담히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이게 현재 50 중반을 맞은 내 양심이고 철학인데 남의 눈을 의식하여 위선적인 말을 하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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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SNU Truth Forum(서울대 스투포)에서 퍼 온 것입니다.

저도 영화 <1987>을 볼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뻔한 내용이기도 할 것이니와 이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라 영화 보다가 저도 토 나올 것 같기 때문입니다.


1987, 난 안 봐! 토가 나올락 하네!(펌)

- 영화 <1987>에 대한 운동권 선배의 회고



1. 박종철, 임종석을 비롯한 386 운동권은 스스로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실제로 추구한 것은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 즉 공산주의 체제였고 그들이 한 운동은 공산화운동이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386을 그렇게까지 내몰았던 암울했던 시대 상황과 그들의 격렬한 저항이 결과적으로 민주화시대로의 이행을 촉진시켰다는 점에서 나는 그들을 민주화세력이라고 부르는 데 동의해 왔다.


3. 그러나 민주화세력이라는 이름 속에 숨겨져 있는 거짓과 위선, 오만과 과욕, 미화와 우상화,  그리고 그것들에 근거한 끝없는 역사의 왜곡과 국민의 정신적 퇴화, 그리고 그로 인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가 안보와 정체성 그리고 국가 존망의 위기, 이런 것들 때문에 많은 애국 시민들이 그들을 민주화세력이라고 부르기를 거부한다.


4. 우리가 그들을 뭐라 부르던, 그들이 거짓과 위선 그리고 시대착오적, 후진적 사고방식으로 똘똘 뭉친 이 시대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 수구 반동 세력이라는 사실에는 모든 애국 시민들이 동의할 것이다.


5. 신림동에 박종철 거리가 생기는 것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박종철과 그가 속했던 CA그룹이 민중혁명으로 세상을 뒤집은 뒤에 제헌의회를 소집하자는 공산주의 운동 단체였다는 사실은 정확히 알려져야 한다. 내가 보기에 박종철은 80년대라는 독특한 시대 상황의 압박에 밀려 상식으로부터 꽤  멀리까지 벗어난 사고와 활동 속으로 빨려 들어간 수많은 386 중 재수가 가장 없는 친구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박종철 거리, 안 될 것 없다. 그러나 그와 그가 속했던 서클이 어떤 일을 하던 집단인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그냥 단순하게 민주화운동으로 체포되어 고문 받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으로만 알려진다면 이 거리는 거짓의 거리가 된다.


6.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 동정이나 안타까움의 대상이 될 만한 처지에 있었던 것은 맞다. 나를 포함해 수많은 386들의 삶이 시대 상황에 의해 심하게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또, 국민적 자부심과 설득력 있는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위해 민주화시대의 대표적 인물들을 미화하거나 신비화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은 온데간데없이, 그 시대를 살아가며 약간의 고통을 겪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하는 자아도취의 우물 속에 빠진 채 30년을 허우적거린 386의 과욕이 이러한 이성과 상식을 송두리 채 무너뜨렸다.


7. 문제는 386의 거짓과 위선에 있다. 이제 소통은 감성과 피해의식을 적절히 자극해 주는 기술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이제 진실은 나와 소통하는 집단의 믿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거짓과 위선이 어느새 진실과 소통이 되어 있다.


8. 솔직히 나는 개인적으로 이성과 진실이 궁극적으로 거짓과 위선을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국민의 평균 학력, 경제적 이익에 관한 민감도, 뿌리 깊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 성향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저들의 헛발질이 대한민국 세력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궤멸된, 아니 부역질까지 서슴치 않으며 자기끼리 칼질하며 스스로 콩가루 집안을 만들어버린 우파 집단이 그 상황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아직도, 망해가는 집을 일으켜 세우려는 자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남은 재산을 노리는 자들만 득실거린다.


SNU TRUTH FORUM / 인문대 83 YK


snu.truth.foru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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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사회 디자인 연구소 소장 김대호(서울대 공대 81학번)님이 <제3의길>에 게재한 것입니다.


1987년? 무얼 더 갖고 싶은가(펌)


문재인이 열심히 하겠다고 하면 겁부터 난다. 경제, 노동시장, 공공부문, 외교안보, 에너지, 의료 등등 문재인이 관심 가지는 곳마다 으악 소리, 곡소리가 난다. 도무지 사리에 맞지 않는 가치와 정책을 탱크부대, 공수부대처럼 밀어붙여 깔아 뭉개버리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정책이 대표적이다. 

文 “청년 일자리 직접 챙길 것”…’재벌 개혁’ 재확인

문재인, 오랫동안 관찰했다. 같이 일해 본 사람들의 얘기 엄청 많이 들었다. 직접 만나서 독대로 2시간30분 얘기를 나눠 봤다.

결론은 이 분은 고시공부 머리는 있다. 눈앞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가슴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사회역사적 통찰력, 종합적 인식/판단 능력, 자아성찰 능력, 학습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꽝이다. 보통 사람 수준도 안된다. 그래서 보이는 곳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수십 명의 아픔은 아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수천 만 명의 아픔은 모른다.

김대호가 서울시향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열심히 할수록 불협화음이 심해질 것이다. 점점 더 개판이 될 것이다. 문재인의 대통령질이 그와 같다. 서울시향 오케스트라와 관련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공연장 청소나 무거운 물건 나르기 정도일 것이다. 아마 보통 사람만큼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자아성찰 능력이 있으니까 하는 판단이다. 그런데 문재인은 그게 없다. 국가적, 민족적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단언컨대 열 가지 넘는 부정비리로 재판을 받는 박근혜보다 문재인이 국가와 민족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이 훨씬 크다.

재벌개혁? 그것보다 정치개혁이고, 정치개혁의 핵심은 대통령제 개혁이나 지방분권개혁이 아니다. 핵심은 선거제도 개혁이다. 정치 독과점 체제를 깨는 것이다. 생산적 정치 경쟁체제와 대승적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선거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박근혜, 문재인 같은, 오로지 이미지 하나로 대통령이 되는 대재앙이 반복되지 않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영화 <1987>을 보면서 눈물 흘렸다는 사람 많다. 그 시절의 아픔이 생각날까봐 감히 못 보겠다는 사람도 많다. 감상평을 보니 웬만큼(정권 낙하산이 되거나, 공공부문에 자리를 잡거나 하여) 부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 내지 명예까지 가지고 싶어하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고 역겹기도 하다.

좋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니! 그런데 과거 30년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 30년을 보라. 나를 포함하여, x86세대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은 희망과 기회의 사다리를 가졌던 세대다. 그런데 우리 자식 세대는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졌지만 기회와 희망이 너무 없다. 깨놓고 말하건대 그들은 부모 세대보다 못 살 것이다. 가슴이 미어진다.

현 정부의 정책을 보라. 청년의 기회와 국가의 미래를 학살하는 정책으로 일관한다. 나는 <1987>을 보면, 그 뜨거웠던 세대의 열정, 꿈, 희망과 지금의 지독한 혼미, 퇴행, 쇠락이 대비되어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이건 우리, x86세대 탓이니까! 나는 조만간 영화 <1987>을 두 눈 뜨고, 이를 악물고 보려 한다. 미래로부터 다가오는 위험과 산업화의 기적에는 눈을 감고, 민주화의 기적, 산업화의

음지만 눈을 크게 뜨고, 추억에 잠겨 눈물콧물 흘리는 세대의 한심한 행태를 좀 더 똑똑히 들여다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향후 3~4년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중에는 황광우가 얘기하는 ‘파르테논 솔루션’과 ‘뉴딜(테네시강 유역개발) 솔루션’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일시적인 사업이기 때문이다.

[왜냐면] ‘일자리 위원회’에 보내는 고언 / 황광우

그런데 이보다 백배는 더 중요한 일이 기업들이나 창업자들로 하여금 국내 투자와 고용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창의와 열정이 뛰어난 인재들로 하여금 창업과 (민간기업) 취업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국내 투자와 고용, 창업과 취업에 따른 리스크를 적정하게 경감, 완충시켜 줘야 한다. 위험과 이익, 성과와 보상의 균형이 맞도록 해야 한다. 한마디로 위험도 적고, 성과도 적은 데 비해 엄청나게 높은 보상을 받는 지대의 성채를 때려부숴야 한다. 대표적인 곳이 공공부문이다.

너무 높은 최저임금, 연공임금 체계, 영구적 고용의무화 등은 기업들과 창업자들에게 너무나 징벌적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라고? 누가 혜택을 보는지 보라. 기존에 어쩌다가 연고를 타고 기간제, 계약직, 파견용역직 등으로 들어간 중장년들이 최대 수혜자다. 이제 막 노동시장에 들어오는 청년들은 최대 피해자다. 문재인 정부는 목적과 수단의 괴리가 가장 심한 정부, 한마디로 도대체 개념이 없는 정부가 아닌가 한다.

가장 가증스러운 인간들이, 인구통계 구조를 들먹이며, 또 단카이 세대가 퇴장한 일본의 예를 들면서 3~4년이 지나면 청년실업 문제가 해소된다고 말하는 자들이다. 한국 신생아 수를 보면 1990년 649,738(1984~1990까지 60만명대), 1991년 709,275명, 1992년 730,678명,1993 년 715,826명, 1994년 721,185명, 1995년 715,020명, 1996년 691,226명이고 이후 2000년까지 60만명대다. 2001년 554,895명, 2002년 492,111명 이후 2016년까지 40만명 대를 유지했다.

한국의 청년실업은 일자리 자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대학진학률 70%와 현실에서 너무 먼 대기업 노조, 공공부문과 진보의 고용임금패러다임(너무 높은 요구기대 수준)이 기업들의 국내투자와 고용에 대한 공포를 초래한데다가 무분별하게 수입한 외국인노동자 등이 합세하여 그야말로 자승자박한 상태다. 그래서 출생아 수가 40만명 아니 30만명이라 할지라도 청년실업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1991~1995년 생들은 2020~2025년 경에 청년은 졸업하지만, 인생을 졸업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창의와 열정, 요구와 기대 수준에 너무 미치지 못한 채 중장년이 된다. 그 이후 세대도 마찬가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자리위원회의 살신성인이 아니라 경제철학의 대전환이다. 고용 패러다임의 환골탈태다.

출처 : http://road3.kr/?p=5086&cat=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