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만난 것은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숯가마 사우나에서였다.
나보다 며칠 더 일찍 그 사우나에 채용되었던 그는 그곳에서 이과장이라고 불리우고 있었고, 처음에는 무슨 업무를 맡았었는지 몰라도 보일러 담당자가 뭔가 말썽을 피워 해고된 뒤부터는 그 빈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개인 사업체가 으례 그렇듯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당신 할 일이라는 직무 한계가 명확하지 않아 일손이 딸리는 곳마다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상당히 고달픈 일과를 보내고 있는 듯하였다.
물론 그런 사정은 남탕 청소를 맡고 있던 나 역시 다를 바 없어, 숯가마를 떼기 위한 통나무 트럭을 부리거나 약수터에서 받아 온 식수통을 나르느라 우리는 하루에 열 차례도 넘게 얼굴을 마주치곤 하였다.



그때 그는 나보다 대여섯 살 젊은 40대 후반이었다.
그 나이대 중에서는 상당히 키가 큰 편이었고, 청년 시절에는 그럭저럭 늘씬한 체격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조금씩 앙상한 가슴팍에 올챙이배가 튀어나온 노인 체형으로 바뀌어 가는 중이었다.
얼굴 생김새는 그저 그랬다.
굳이 평하자면 조금 추남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목구비 자체는 크게 흠잡을 데가 없었으나 그 무난한 얼굴이 짓는 표정이 대단히 천박하여 실제보다 훨씬 더 추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특히 웃는 얼굴은 마치 찰리 채플린의 그것처럼 비굴함마저 느껴지곤 하였다.(채플린 팬들은 나를 용서해 주기 바란다.)
늘상 다른 이들에게 아첨하는 미소를 지으며 살아 온 사람의 얼굴이라고나 할까.
젊은 시절에는 일본에서 살았던 적도 있다고 하는데, 뚜렷한 기술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니 혹시 일본 여성들을 상대하는 호스트로 뛰었던 게 아닐까 싶었으나 물론 본인에게 그 점을 확인해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동료 사우나 직원들에게도 필요 이상으로 비위를 맞추고 다니는 그의 습성은 호스트란 직업과 썩 잘 어울린다고 할 것이다.



한 달 정도 함께 생활하다 보니 자연히 알게 된 사실은, 그가 대단한 게으름뱅이라는 점이었다.
나 역시 세상에서 두째 가라면 서러워할 게으름뱅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일단 남한테 월급 받고 하는 일은 성심껏 수행하는 편이다.
그는 달랐다.
타고난 이지 고잉 스타일이랄까, 무슨 일이든 대충 대충 넘어가곤 하였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뒷탈이 나게 될 것이 뻔히 내다보이는데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고 지금 당장 대충 넘어갈 수만 있으면 대충 넘어가려 드는 것이었다.


뭐, 그거야 그 사람 살아가는 스타일이니 내가 참견할 일은 못 되지만, 문제는 그런 그의 습성이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때가 종종 생긴다는 점이었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그와 나, 그리고 성민이란 이름의 중국에서 온 청년까지 단체로 사장들(그 사우나는 전직 조폭 두 명이 공동 출자하여 열었던 거라서 사장이 두 명이었다)에게 야단을 맞은 적이 한두 번 있었다.
나보다 십 년은 젊은 사장들 앞에 무슨 군대에서처럼 차렷자세로 서서 훈계를 듣는 일이 적잖이 씁쓸하였으나 그건 이과장이 잘못한 것이고 난 내 몫의 일을 다 했노라고 밝히는 얍삭한 짓은 차마 할 수 없었기에 할 수 없이 수모를 감수하여야 했었다.
어쩌면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에서 나이를 따지는 것이 덜 떨어진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야단을 맞는 일은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는 자기보다 젊은 사장들한테 야단을 맞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지 나중에 뒷탈이 날 게 뻔한데도 지금 당장 몸이 조금더 편한 쪽을 택하곤 하였다.
어찌 보면 누구보다도 확고한 주관을 갖고 사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렇게 늘상 실실 웃고 다니는 그에게도 알고 보니 나름의 애환은 있었다.
당뇨기가 있어 매일 약을 복용해야 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듣자 하니 일본 여자와의 사이에서 생긴 딸을 일본에 두고 왔다는 것이었다.
호스트 업소를 들락거리던 호스테스와 눈이 맞아 애까지 낳게 됐지만 무능하고 대책 없는 남자에게 진저리가 난 여자가 자신의 삶에서 그를 단호히 잘라내고, 비자 기한이 끝날 때마다 한국에 돌아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기를 몇 차례 거듭하는 동안에 호스트로서의 경쟁력이 떨어져 더는 현역으로 뛸 수 없는 나이가 되고, 달리 돈을 벌 길이 없는 일본에 들어가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되다 보니 그들 모녀와의 관계도 자연히 끊어지게 되고....
대충 그런 그림이 그려졌다.
물론 이건 내 상상일 뿐, 그가 실제로 일본에서 호스트 생활을 했다는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가진 기술 하나 없는 사람이 남의 나라에서 뭘 하고 살았겠는가.
아무튼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지 않고 그저 편안하게 지내려고만 드는 그의 습성은 호스트란 직업과 썩 어울려 보였다.


일본에 남겨 두고 온 그의 가족들....
아직도 가족이란 말을 적용할 수는 있는 상태인지조차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그들 모녀는 모르긴 해도 지금 일본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 쪽은 자신의 선택의 결과를 감당하는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딸은 무슨 죄인가 말이다.
아버지 얼굴조차 기억 못할 여자애는 어쩌면 아버지를, 그리고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의 모든 것을 증오하고 있지 않을까?
쉬흔이 가까운 나이에 가족과 뚝 떨어져 허접한 잡일이나 하고 살고, 따로 모아 둔 돈도 없는 성싶고, 건강도 엉망인 것 같고....
참으로 딱한 신세였다.
젊은 시절을 얼마나 허랑방탕하게 보냈으면 저 모양일까 하고, 딸린 가족이 없고 건강에 별 이상이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정확히 그와 일치하는 내 신세도 잠깐 잊고 한심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건 그의 삶은 그가 감당할 몫이었다.
내 삶을 건사하는 일만도 벅찬데 그의 삶까지 내가 신경써 줄 필요는 없었다.
시시콜콜 밝히기에는 너무 장황한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한 달을 채우고 나서 그곳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 뒤로는 그를 다시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사우나 측의 요청에 따라 한 달에서 한 닷새 더 일해 주었었는데, 그에 대한 보수가 좀처럼 입금되지 않아 두어 차례 그곳을 방문하여야 했지만 묘하게도 그때마다 그를 만나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1,2년 뒤의 어느 초여름날, 엉뚱하게도 부산 서면의 롯데 백화점 부근에서 그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나는 부산에서 일박하고 마산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고, 그는 이제 갓 부산 나들이를 시작한 듯해 보였다.
행인들로 번잡한 길목에 엉거주춤 선 채로 우리는 피차 간에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서로의 근황을 묻고 답하였다.
중국 청년 성민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우나 직원들이 그 동안 교체된 모양이었다.
달리 나눌 얘기거리도 없고 해서 사우나를 그만둘 때 자투리 근무에 대한 보수를 받아내느라 애를 먹었던 얘기를 꺼내 보았는데, 그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고작 십여 만 원밖에 안 되는 돈을 떼어먹으려 들던 작태 앞에서 당연히 함께 분개하며 사장들을 성토해 줄 줄 알았던 그가 의외로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 내심 괘씸하게 여겼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아침 겸 점심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어차피 마산에서건 부산에서건 끼니는 떼워야 할 판이었고, 부산이 마산보다 물가가 싸서 같은 돈으로 좀더 나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 부근에 있는, 나름 유명한 짜장면집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그에게 함께 가자고 권하지는 않았다.
어지간히 친한 사람하고도 식사는 같이 하지 않는다, 난.
타고나기를 솔로 체질로 타고났는지 밥도 혼자서 먹는 것이 편하고 영화도 혼자서 보는 것이 편하다.
게다가 맺고 끊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의 성격을 생각할 때 식사를 함께 하자는 내 말이 그에게는 초대로 받아들여져 두 사람 분 식사대를 내가 모두 내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날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
아마 살면서 그와 다시 만나는 일은 없을 듯하다.
어쩌다 그의 생각이 나면 그날 짜장면 한 그릇 정도는 사줄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