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새정치와 '중부담 중복지' / 아크로에서 토론

토론이 여러글로 분산되었고, 제가 잠시 집을 비운 관계로 공백이 있었습니다. 여러 소주제에 일일히 답변을 드리기보다 압축해서 정리하는게 논의를 정체시키지 않고, 한 말 나아가면서 논점들을 풀어나가는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토론하는 것은 '새정치'에 대한 개념정립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정치'라는 키워드에 2018년 새해 시작에서 벌어지는 정치국면에 대한 견해들이 녹아있고, 지역주의 노선문제, 이념적 노선문제, 대북정책문제, 패권 전체주의와 국민통합의 문제, 성장과 복지 문제 등을 포괄합니다.

'새정치'라는 키워드는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정치사회적 지향점이 됐습니다. 그것은 대중이 소비하고 소화하기 쉬운 형태의 정치수사로 통용되고 있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안철수와 조합되어 우리 정치에서 새정치라고 하면, '안철수의 새정치'로 받아들여집니다. 안철수가 정치에 나선 이후로, 새정치는 애써 무시되거나, 조롱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부패한 정권의 후계자라는 이미지로 덧씌워 졌지만, 2018년 오늘도 정치수사로서의 영향력은 다른 어떤 정치이데올로기보다 압도적인 동시에 확장되고 있습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개편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 '새정치'의 영향력을 증명합니다. 지난 20년간 양당제는 한국정치의 메인프레임으로 고착됐고, 그 기간동안 제3당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통합진보당이 국회교섭단체로서 잠시 존재했으나, 수구보수세력이 국회의 과반 이상을 과점하기 쉬웠기 때문에, 양당제 자체를 견제하고 컨트롤 하는 의미에서 3당의 역할을 하는 정당은 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소위 범진보라고 해서, 민주진보개혁 세력으로 한 묶음되는 존재였기 때문에, 기득권 양당제에 좀더 좌측의 무게를 더해서 이념적 균형추를 맞추는 정도의 역할만 했을 뿐입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은 새로운 정치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통진당이 분당과 해산을 겪고 사라진것과도 다른 전개가 진행중입니다. 국민들은 이념적 균형추가 아니라 이념을 혁파하고 이념을 초월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제3당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이 새정치의 동력이고, 국민-바른이라는 중도진보와 중도보수 세력간에 통합에 기대감이 높은 이유입니다. 우리가 여러 토론장에서 두 정당의 합당을 토론하는 것 역시 합당이 단지 군소정당간에 이합집산 수준을 훨씬 초월하는 빅뱅임을 예견하거나 혹은 그러한 인식 전환의 가능성을 검증하는 노력입니다.

두 당의 합당에서 핵심이되는 키워드는 '중부담 중복지'입니다. 다당제라는 시대정신도 있고 한데, 그러한 정치 아젠다 보다는 좀던 심화된 정치경제사회적 아젠다가 중부담 중복지라는 키워드에 담겨있습니다. 특히 양당의 현 대표인 안철수와 유승민이 실제로 이것을 우리사회의 기본 골격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물론 똑같은 뜻으로 사용하지는 않았겠습니다만, 그러나 중부담 중복지로부터 다양한 사회경제적 아젠다가 어떠한 루트로 풀려나가는가 하는 개략적인 흐름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부담 중복지'라는 키워드를 분석/검증하면, 새정치라는 수사를 조금은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중부담 중복지는 세금 적당히 더 내서, 사회복지서비스를, 북유럽 기준으로 보면 그 보다는 낮은 수준, 현재 대한민국의 복지서비스 수준에서 보면 조금 더 확대하고 강화하는 정도로 중복지를 하자는 것이 주요한 내용입니다. 단어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죠.

이것이 단어만 놓고 보면 쉽게 해석되고, 또 쉽게 이해되는 평범한 정책내용이지만, 대한민국의 여러 상황에 대입하면 간단한 내용이 아닙니다. 중부담 중복지를 정책목표 삼은 이유는 다음 세가지 정도를 원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2. 재분배(복지)에 의한 불평등 개선이 불가능한 상황
3. 양당제로 인한 정치의 불안정

사회적 불평등은 왜 중부담 중복지가 대두된 배경이 되겠습니까. 이것은 중부담 중복지가 사회적 불평등의 해법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회적 불평등이 너무 심화됐기 때문에, 현실적인 사회경제모델의 대안이 중부담 중복지가 최대치라는 의미입니다. 불평등은 임금의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 비정규직으로 인한 격차에 기인해서 그 격차가 격차를 다시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상황입니다. 기업은 성장과 분배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가계는 소비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초거대 대기업들만 돈을 쌓아두고 사회전반의 분배기능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IMF 이후 기업의 부채비율은 낮아져서 생산의 주체인 기업들은 돈빌려서 투자하지 않고, 가계들만 은행에서 빚을 집니다.

가계부채가 심각하죠. 그러니 소비도 제기능이 안됩니다. 그 와중에 자영업의 비율은 높아갑니다. 영세 자영업이 고용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어서, 현 정부가 제시했던 임금주도성장도 어렵습니다. 임금상승을 주도할 대다수의 중소기업이나 영세자영업이, 이번 최저임금 인상과정에서 드러났듯이 그럴 여력이 전혀 없고, 그나마 고용의 대부분을 담당했던 그들이 분배의 책임을 떠안는 꼴 밖에 안된 것이죠. 경제성장의 과실은 오직 피라미드 꼭대기에 초거대 대기업들이 독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시장의 기능은 완전히 무너진 것입니다. 기업과 가계가 제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정부는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만약 정부가 세금 걷어서 하부를 먹여살리겠다고 하면, 밑빠진 독에 물 붇기 밖에 안됩니다. 결국 두 번째, 재분배가 불평등을 개선할 수 없다는 의미인 것이죠.

쉬운 말로 망국의 지름길이고, 우파들이 주장하는 복지천국 국가부도의 길로 가는 꼴이죠. 실제로는 복지천국은 해보지 못하고 말입니다. 그런 식의 재분배는 복지가 아닙니다. 현대적인 개념에 맞지 않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이미 생산적 복지의 개념이 정립이 됐는데, 불평등을 메꾸기 위한 재분배는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 실패한 구제적 복지입니다.

생산적 복지는 노동자가 잘사는 것(well-being)이 생산성 향상과 경제성장의 주요 요소라는 깨달음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정부는 재분배 정책을 적극적으로 서비스하는게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보편복지라는 것은 '공동구매'의 형식을 차용해서 공공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정책입니다. 공공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낮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혁신과 성장, 과학과 문화의 발전에 투자여력이 증가하는 일입니다. 결국 불평등과 격차가 줄어들고 경제의 활력이 높아져서, 그 만큼 사회적 가치가 확대 생산될 때, 보편증세를 함으로서 보편복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부담 중복지라는 것은 시장의 분배기능을 정상화하는 일을 전제합니다. 임금의 불평등을 해소함으로서, 소위 부자증세가 아니고 보편증세를 한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책목표고 비전입니다. 즉 중부담 중복지라는 것은 단순히 재분배의 아이디어가 아닌 것이죠. 노동과 산업구조, 비정규직, 가계대출 중심의 금융 등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해법이 필요충분조건으로 담겨있는 것입니다. 또 중부담 중복지라고 해서 선별복지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요. 복지 서비스 범위에 대한 것이지 결국 생산적 복지와 보편증세 의한 보편복지를 의미합니다.

또, 중부담 중복지 사회로 이행된다는 것은 불평등 해소에 따른 국민통합이 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핵심이 보편증세 거든요. 증세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특정 부자들만 더 걷는게 아니고, 물론 세율의 증가는 소득 분위별로 높으면 높을 수록 높아지는 것이겠지만, 여하튼 모든 국민이 보편적으로 세금 더 내자는데 동의해야 하는 일입니다. 얼마만큼 진전된 사회통합이 이루어져야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모든 조세저항을 극복하고 국민들이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내야지만 가능합니다.

이것을 정치가 해내야합니다. 중부담 중복지를 목표한다는 것은 결국 사회통합, 국민합의를 정치가 해내겠다는 의지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 수준이 어떻습니까?

이 지점에서 비로소 '새정치', 그리고 다당제라는 아젠다가 도출되는 것이죠. 이번 대선에서 거대 기득권 양당이 내놓은 사회적 해법은 한심한 수준이었습니다. 더민주는 임금주도성장을 브랜드로 내세웠지요. 자유당은 대기업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를 통한 성장, 그리고 그 성장이 넘쳐서 그 낙수효과로 불평등이 해소된다는 주장을 여전히 했습니다. 그러나 정권잡은 더민주의 임금주도성장은 결국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 죽이기 밖에 안되고, 실제로 대기업보다 몇배의 고용을 그들이 담당하고 있는데, 그들의 어려움은 결국 고용불안으로 이어지는 정책실패가 불보듯 뻔한 상황이죠. 만약 자유당이 되어서 대기업 법인세 내려주고 각종규제 풀어주는 홍준표 해법이 실행됐다면, 그것은 역시 그레이트 헬조선의 시작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장과 활력을 도모하자고 한다면, 저 두 세력의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입니다. 문제를 뭔지를 모르니 해법이 엉뚱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기득권 양당은 왜 이렇게 허무맹랑한 해법을 내놓는 것일까요? 이념적 선명성이 정치적 유익, 권력쟁취에 유리하다는 단 하나의 이유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념적 선명성도 아닙니다. 단순한 패권정치, 해게모니 쟁탈에 소모할 그럴듯한 '이미지'만 있으면 되니까, 이념인척 포장하고, 때로는 지역정서에 호소하고 할 뿐인것이죠. 정치가 이념을 잡아먹은 겁니다.

진짜 이념은 안철수와 유승민이 주장한 '중부담 중복지'와 같은 제3의 선택지안에 모두 담겨있습니다. 진보나 보수, 좌나 우라는 이념이 생산한 여러 사회적 해법 가운데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해법들이 조화롭게 담겨 있는 것이죠. 시장의 분배기능을 회복하는 자유시장주의적 해법과 재분배를 통해 사회의 활력을 되살리는 평등한 사회민주적 해법이 '중부담 중복지'에 조화롭게 담겨있습니다.

누가 정답을 말하고 있는 지는 자명합니다. 할 수 있냐 없냐의 수준에서 따져볼 수는 있지만, 더민주다 자유당이 정답을 말하는거 아니냐 하는 수준의 논의는 그것은 논의가 아니고 팬심이고 덕질 뿐이 안됩니다. 더욱이 할 수 있냐 없냐의 토론도 윤똑똑이 토론이지 반드시 해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해낼 수 있냐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에 고리가 되는 중부담 중복지라는 중도이념입니다. 지금 지역주의적인 갈등이 마지막 저항을 합니다. 그 저항도 의미가 있습니다. 오래된 갈등이니까요. 그러나 호남과 영남의 갈등은 실체가 없습니다. 영남과 호남이 갈등하고 혹은 경쟁해서 성취할 수 있는 사회적 목표가 있습니까? 그런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 갈등하고 경쟁하지 말아야죠. 그런데 갈등이 있는 것처럼 조작하는 것입니다. 누가 조작합니까.

그 조작하는 일들이 옛날정치, 구정치죠. 그 갈등을 치유하고 국민 다수의 보편적인 행복을 도모하는, 문제를 직시하고 해법을 내놓은 정치를 하는게 '새정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