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래 댓글에서 albina님께서 각국의 정치 현상에 대하여 중요한 언급을 하셨길래 albina님의 쪽글에 대하여 문단 단위로 답변을 드리며 한마디 더하고 갑니다.


2. 우선 깨어져야 할 신화는 바로 '양당제일수록 정치적 안정도(political stability)가 높다'라는 것입니다. 아래는 그렇지 않다는 통계입니다.


Political stability - country rankings (챠트는 여기를 클릭)

이 챠트에 보시면 다당제를 실시하는 뉴질랜드의 political stability index가 가장 높습니다. 그리고 양당제를 택한 미국의 political stability index는 0.70으로 중위권. political stability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nation's politics fit on a spectrum between those two extremes"

뜻인즉, 국가정치가 양극단 사이에서 (정치적)스팩트럼을 얼마나 적합한지의 비율이므로 미국의 경우 양당제가 국민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입니다. 정치적 안정성이란 결국, 국민들의 뜻(정치적 의사)을 얼마나 많이 정치권에서 반영하느냐에 달려 있으므로 다당제의 출현은 필연적입니다.


3. 여기서 제가 박정희 정권 때의 긴급조치에 대하여 언급했던 내용을 강준만의 코멘트와 합쳐 다시 언급합니다.

"당시, 긴급조치의 필요성은 시대상을 반영했을 때 필요한 것일 수도 있지만 과연 긴급조치가 최선의 조치였는지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긴급조치는 국민의 열망이었던 민주화에 대하여 국내정치가 불안정하게 전개되자 취해졌던 조치로 거꾸로 긴급조치 때문에 정치적 안정성은 더욱 낮아져서 결국 박정희는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최근에 한 여론조사에서는 '사회적 극빈층' 중 40% 가까이 '한반도에 전쟁이 나도 관심없다'라는 응답을 했습니다. 당연할겁니다. 경제적 위기에 내몰린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극빈층으로 사나 북한의 체제 밑에서 사나 크게 차이가 없을테니까요. 따라서, 그들은 한국의 정치적 안정성에서 '폭탄'과 같은 존재이며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그들의 정치적 의사를 현재 양당제도에서는 반영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정치적 안정성은 양당제로 인한 기계적인 안정이 아니라 국민의 정치적 욕구를 얼마나 많이 정치적으로 반영이 되느냐?에 달려 있고 따라서 세계의 추세는 다당제 채택입니다.


4. 미국은 양당제인가? absolutely no!

한국에서 양당제를 주장하는 논자들은 미국의 양당제를 거론하면서 정치적 안정도에는 양당제가 필수라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 정치사에서 집권을 잡은 정당은 공화당과 민주당 두 당 밖에 없지만 실제 미국에서는 정당등록을 마친 정당이 20개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주에서는 지역정당이 집권을 하여 의회를 장악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사례를 들고와서 '미국은 다당제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이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정치학 정의상 다당제는 국가 의회에 의석이 있는 정당수기 기준이고 따라서 국가 의회에는 공화당, 민주당 두 당 밖에는 의석이 없기 때문에 양당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안정성으로 보면 미국의 20개에 달하는 정당의 존재는 양당제에서 유권자들의 정치적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이런 다당제의 존재는 거꾸로 미국의 정치적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입니다.


트럼프의 등장 역시, 대선 때 공화당에 비토를 당했던 그 트럼프를 상기시킨다면, 미국의 유권자들이 양당구도에서 내려지는 정책들에 대한 불만 표출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양당제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성이 트럼프를 당선시켰다는 것입니다.



5. albina님의 주장 중 '정책을 선택하는 유권자들은 고정지지층을 형성한다'? 는 거짓(false)

대통령지지율 때문에 미국에서 공화당 대통령이 민주당 정책을 추진하지는 않죠. 그 반대의 경우도 없구요. 미국의 경우 유럽에서 볼때 양당모두 보수적이긴하지만 정당자체에 선명성이 나름대로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정책을 지원하는 think tank 들도 노선이 분명하죠. 예를들어 Heritage Foundation 이 민주당 정책을 만든다던지 민주당이 Heritage 의 정책을 체택한다던지 하는건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때문에 정책을 선택하는 유권자들은 고정 지지층을 형성합니다. 정당은 또 그들을 믿고 소신있는 정책을 할수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albina님 말씀대로 공화당, 민주당 양당이 보수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고 정당 자체에 선명성이 나름대로 분명합니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정책을 선택하는 유권자들은 고정지지층을 형성한다...라는 주장은 false입니다. '양당제가 정치적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잘못된 신화의 파생논리입니다.


albina님의 주장을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저는 지금 정당 간의 노선 차이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정당들이 내선 정책들의 유권자들의 coverage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책을 선택하는 유권자들은 고정지지층을 형성한다


미국 대선 관련하여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공화당을 지지했기 때문에 나도 공화당 후보에 투표를 했다"

"옆집이 민주당을 지지했기 때문에 나도 민주당 후보에 투표를 했다"


예. 미국의 경우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층이 20%라고 합니다. 실제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아버지가 공화당을 지지했기 때문에 투표하는 것이고(전통적 가치=보수) 옆집이 민주당을 지지했기 때문에 투표하는 것입니다.(환경=진보)


강준만도 비슷한 주장을, 만사지탄이지만, 했습니다. 그동안 인물론을 주창하다가 노무현으로 인하여 논객으로서 잃을 것을 다 잃은 강준만은 25%의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정치적 층을 키워야 한다...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 보십시요. 미국의 소위 레드넥 층이라는 '피부만 하얄 뿐 경제적으로 상대적 빈곤층'인, 한 때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이었던 그들이 왜 공화당을 그렇게 줄기차게 지지할까요? 오죽하면 '미국 공화당 최후의 지지층은 빈민 백인층'이라는 비야냥이 존재할까요? 바로, 양당제로 인한 유권자들의 정치적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에서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거나 민주당을 지지하는 층이 고착되어 있다면 미국은 저렇게 수시로 정권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겁니다. 다문화의 확대로 인하여 최근에는 민주당 고정지지층이 공화당 고정지지층을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만일 이 정책의 지지층이 고정되어 있다면 그동안 미국은 공화당이 계속적인 정권창출을 했어야 했습니다.


20%의,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층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정권교체는 수시로 발생했고 이 20%의 캐스팅보트를 '나에게 투표하기 위하여' 정책들을 계속 발굴하는 것입니다.



6. albina님의 주장 중, '우리나라처럼 분열된 나라에서 북유럽의 정치제도를 바로 도입하는데에는 더 큰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는 I don't think so.


albina님의 북유럽 관련 정치 요약은 충분히 맞는 말씀입니다. 한그루 표현대로 이야기하자면 미국 대선은 '사생결단의 대결'인 반면 유럽의 대선은 '유권자의 축제일'이니까요. albina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유럽(특히 북유럽)의 경우 좌우정당의 스펙트럼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다당제로도 충분히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다당제를 한국에 도입했을 때 어떻게 되느냐?하는 것입니다. albina님께서는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하십니다. 그런데 저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albina님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당과 바른정당 합당 과정에서 합당을 찬성하고(저도 합당 찬성파입니다만) 안철수의 합당과정에서의 언행까지 찬성하시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것은 호남차별과 영남패권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다당제에 반대적 입장을 표명하신 albina님과 (명시적으로)다당제를 찬성하는 분들 공통적으로 호남차별과 영남패권을 외면함으로서 야기되는 정치적 불안정성은 다당제건 양당제건 존속한다는 것입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닝구 진영 몇 분은 국민의 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을 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를 요약하자면, 국민의 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하여(중도건 건전 보수건) 자한당을 저 구석으로 밀어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제가 판단하기에, 호남차별이라는 주제를 놓고 보면 '바른정당은 지지를 할 수는 없지만 참을 수 있을 정도'이나 '자한당은 도무지 참아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물론, 일부이기는 하여 그 것이 전체 호남사람들의 정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안철수의 잘못된 합당 방법 및 정천박 및 동교동계의 '호남을 인질 삼은 행각' 때문에 합당에서 호남차별 극복이 배제되어 결국 다당제의 취지는 퇴색되고 정치적 불안정성만 높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albina님께서는 한국에서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놓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도 주별로 공화당 지지 성향 또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뚜렷하지만 한국은 그 성향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것은 정치 역사적으로 '1971년 대선 이후 고착화된 박정희-김대중 대결 구도', 다른 말로 영남과 호남의 대결구도입니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이 구도는 깨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영남과 호남만 이슈가 되고 다른 지방, 하다 못해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과 수도권은 정치적 선택에서 배제됩니다. 영남패권과 호남차별을 온전히 인정한다고 한들, 과연 이런 구도가 올바른 정치구도입니까? 이런 구도는 정치적 안정성을 현저히 꺠뜨립니다.


결국, 정책의 대결보다는 역사적 감정 대결이 각종 선거에서 표출됨으로서 민의는 왜곡되고 많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욕구는 묵살당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영남지지 기반 정당과 호남지지 기반 정당이 그들의 지지기반을 포기하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add-on을 해야지요. 바로 다당제라는 것입니다.


정치적 정의에서도 정치적 안정성을 높이는 것은 유권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최대한 정치권에 반영하는 것이며 한국의 현실에서도 영호남 대결 구도로 인하여 묵살되는 수많은 정치적 욕구를 이제는 정치권에 반영을 시켜야 합니다.



7. albina님의 주장은 다당제에서 분극적 다당제(Polarized pluralism) 또는 분절적 다당제(Moderated pluralism)를 생각한다면 맞는 주장일 수도, 틀린 주장일 수도 있습니다.

분극적 정당제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 구도 하에서의 정당제입니다. 결국, 히틀러의 탄생을 불러일으킨 분극적 다당제의 최대 단점은 '정책 연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재 분극적 다당제의 대표적인 나라는 바로 이탈리아입니다. 정책 연대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안정성은 낮아집니다. 


분극적 다당제가 생기는 이유는 정당 간의 정책의 차이가 극심하기 때문입니다. 특정 정당의 경우, 정책 연대를 하기 위하여는 정치적 정체성을 훼손시켜야 하기 때문에 정책 연대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분절적 다당제는 정당 간의 정책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정책의 합종연횡이 수시로 발생하며 그 결과에 따라 정권도 바뀝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책의 헙종연횡과 정권이 수시로 바뀌면서도 정치적 안정성은 높아집니다.


이 결과를 거꾸로 양당제에 대입해보면 양당제의 정책의 차이는 정치적 안정성을 낮추는 것으로 작동합니다.


한국의 경우 민주당과 자한당의 정책들은 그 갭이 너무 큽니다. 그 갭은 정책의 조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지층의 성격 때문에 그 갭을 졸일 시도조차 하지 못합니다. 결국, 한 정당이 집권하므로서 최소한 50%의 유권자는 자신의 정치적 욕구가 묵살되는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과연, 이런 정치적 판도가 올바른 것인가요? 아니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양당제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양당제는 정치학적으로도 정치적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만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볼 때 양당제는 정치적 안정성을 떨어뜨립니다.



8. 중요한 것은 안철수 현상이지 안철수가 아니다

좀 뜬금없는 결론이겠습니다만, 안철수 현상은 한국 정치를 쇄신시키고 유권자들의 다양한 정치적 욕구를 반영시키는 것으로 안철수 현상은 반드시 한국정치를 위해 만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안철수 현상이지 안철수가 아닙니다.


안철수 현상을 불러일으킨 안철수는 오히려 안철수 현상을 좀먹는 존재로, 지금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소중히 여기고 신장시켜야 할 안철수 현상을 안철수가 좀먹는 현상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다당제는 필연이고 필수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특히 다당제로 돌아가는 원심력에서 그 원심력을 깰 구심력은 바로 다당제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합당 절차는 구심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원심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요? 그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장에서의 유권자들은 전혀 다른 양태를 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가 3등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뭐, 정신승리를 하겠다는데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여론조사가 가지고 오는 함정을 도외시한 채 여론조사를 합당 절차에 합당화로 쓰는 것을 보면 쓴 웃음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다당제는 필수입니다. 다당제가 정치적 안정성을 해친다는 신화는 깨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현재 합당 추진은 오히려 양당구도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것으로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