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도둑놈이 아니야" 라고 할 때, 그 말은 두가지 의미로 쓰일 수 있다. 그 사람이 결백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고, 절도와는 종류가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결백한 사람을 도둑놈이라고 부르는 것도 웃기지만, 강간범이나 살인범을 겨우 도둑놈이라고 부르는 것도 속보이는 짓이다.

영남과 호남의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을 뭉뚱그려 "영호남 지역주의"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속내에는, 분명 그런 측면이 있다. 호남에게 누명을 씌우고 싶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영남의 형량까지 줄여주려는 일석이조의 고약한 의도랄까? 민정당과 조중동이 그러고 싶어했고, 그들의 주문에 맞장구치며 '지역주의 망국론'으로 널을 띤게 바로 비호남 개혁진영이라는 작자들이다. 그 첨병이 노무현과 유시민이었고, 오늘날의 문재인과 친노들이다. 여기까지 폭로되어야 지역주의 논쟁은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지역주의라는 단어는 근대적 정치질서에 반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는 있지만, 이념적으로는 무색무취한 용어이다. 애초에 이념으로 분석되어야할 어떤 정치 성향에 지역주의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그 이념적 정체는 흔적없이 사라지고 마치 중립적인 그 무엇인 것으로 바뀌어버린다. 지역주의라는 단어 아래 호남의 진보성은 사라져버렸고, 마찬가지로 영남의 수구성도 숨어버렸다. 오히려 호남은 가장 강력한 지역성을 드러내는 문제 집단인 것처럼 낙인찍혔고, 영남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는" 희망의 땅이 되어버렸다. 지역주의라는 이름 아래 이념과 가치는 전도되어버렸고, 호남은 무장해제를 당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현상에 가장 크게 웃는 자들이 과연 누구이겠는가? 친노들에게 '부역'이라는 딱지가 괜히 붙은게 아니다. 

단순하게 이해하기위해, 시야를 서울로 좁혀보자. 강북지역주의, 강남지역주의라고 부르는게 과연 적당할까? 혹시 굳이 강북지역주의라고 불러야만 하고, 강남패권주의라고 부르면 절대 안되는 말못할 속사정이라도 있다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호남은 물론이고 영남에도 지역주의는 없다. 그저 자본의 정치적 지배 전략에 협조하고 순응하는 것이 가장 이익이라 여기는 국민들이 굉장히 적게 살거나, 많이 살고 있을 뿐이다. 그 자본의 정치적 지배 전략이 바로 '영남패권주의'이다. 영남지역주의는 이념적으로 무색무취하겠지만, 영남패권주의는 절대 그렇지 않다. 영남패권주의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냉전논리 남북대결주의 색깔론 성장제일주의 학벌주의 연고주의 가부장적질서 영남우선주의 호남차별주의 반인권 반지성 등등 자본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즉 정치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동원하는 모든 이데올로기적 도구들의 집합체다.

그런데 왜 굳이 영남패권주의라고 불러야만 할까?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한국이 1인 1표제라는 민주적인 방식이 아니고, 배정되는 투표권의 숫자가 재산의 크기에 따라 다른 사회였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가령 재산 상위 20%에게 80%의 투표권을 주고, 나머지 80%에게 20%의 투표권을 배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전경련 회장단 회의가 국회가 되고, 대통령도 뽑는 세상이 될 것이다. 만약 그런 세상이라면 굳이 자본이 복잡하게 영남의 유신공주 박근혜를 불러오고, 영남중심산업화의 상징인 이명박을 부르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건희는 정말로 황제가 되어있을 것이고, 이재용은 황태자 수업을 받고 있을거다. 그러나 1인 1표제에서는 절대 그럴 수가 없다.

따라서 자본에게는 표셔틀을 해줄 강력한 정치적 동맹군이 늘 필요하다. 그 대상은 종교일 수도 있고, 인종일 수도 있고, 그 사회의 역사에 따라 다양하다. 한국에서는 지역이고, 바로 영남이다. 만약 한국의 자본과 기독교가 결탁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기독교패권주의라고 부르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때는 자본의 논리 + 기독교의 논리가 그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을 것은 자명하다. 한국은 당연히 자본의 논리 + 영남우선의 논리가 사회를 지배한다. 그 실체가 바로 영남패권주의이다.

그것을 영남지역주의라고 단순하게 부르는 것은, 면죄부도 그만한 면죄부가 없다. 백주대낮에 벌어진 학살극을 "오죽하면 공수부대들이 그랬겠냐"로 합리화하고, 살인마를 기념하는 공원에 무신경한 것은 그들이 절대 지역주의라서가 아니다. 기독교신자들이 십자군학살에 무감각하듯이, 그들은 광주의 학살에 무감각하다. 단지 그 뿐이다. 그들은 자본과 패권적 동맹을 맺었고, 이제는 자본이 곧 영남이고, 영남이 곧 자본인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영남패권주의다.

이름은 늘 정확히 불러주어야한다. 결백한 자에게는 결백한자로, 도둑질한 자에게는 도둑놈이라고, 강간을 한 자에게는 강간범이라고 말이다. 있지도 않은 영호남지역주의를 어떻게 해보겠다며 개삽질만 하다가, 정작 호남을 무장해제시키고 영남패권주의에 아부하며 투항한 자가 바로 노무현과 그 일당이다. 그런데 그런 자들을 추앙하며 떠받드는 인간들이 아크로 런닝맨들을 수구라고 부르다니 이 얼마나 웃기지도 않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