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금양털과 사금?

콜키스의 나라에서는 산의 급류를 타고 사금이 내려온다고 한다. 그래서 야만인들은 자디잔 구멍이 뚫린 물받이와 양털가죽을 가지고서 금을 채집하며, 이것이 황금 양털의 기원이라고 한다.

                                       - 스트라본(strobon), BC1세기

근대 인류학의 기본적인 접근 방법 중 하나는 합리적 이성적 접근이다. 지금 보기에 다소 황당해 보이는 전통도 그 본질과 기원을 추구해보면 합리적인 요인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아랍이나 유대인의 돼지고기 터부나 인도인의 소신성화, 한국인의 금줄 등등도 따지고 보면 합리적인 요인을 지닌 채 시작된 전통이라는 것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마빈 해리스의 대중 문화인류학서적은 대부분 이런 가설에 기반을 둔다.

이와 대조되는 또 하나의 접근법은 인류의 집단 심리에 기반한 접근이다. 인류는 세계 어떤 문화 속에서도 비슷한 심리적 사고회로를 지니고 있고 그 인간 특유의 집단 심리가 환경적 지리적 경제적 요인과 부딪혀 각 민족의 특수한 문화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프레이저의 저서가 이런 가설을 대표하고 있으며, 후대의 일리언 미르샤크(일리야 야크플레비치 미르샤크)의 유물론 사관에도 이런 맥락이 흐르고 있다. 또 현대 진화심리학의 일부 가설이 이 이론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성적 합리론적 접근의 시작은 예상보다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헤로도토스나 투키디데스의 사관에서도 그런 시각이 보이지만 스트라본은 신화의 기원에 대해서도 지극히 실증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BC1세기의 지리학자였던 그는 황금양털의 기원이 콜키스지방의 사금채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파악한다. 양털로 물에 흘러내려오는 사금을 받다보면 양털이 금빛으로 번쩍일 것이고 그 황금으로 번쩍이는 양털이야말로 자연스럽게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된 것이 아니겠냐고 추정한 것이다.

마이클 우드는 <신화추적자>에서 스트라본의 이 주장을 다시 되풀이한다. 그러나 이아손 신화의 출발점이 된 케이론(이아손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가서 켄타우로스의 현자이자 의사인 케이론에 의해서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된다)의 전설을 조사하면서 그는 이 신화에 보다 오래된 기원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아킬레스를 가르치는 케이론, 케이론은 영웅양육의 달인이다>

펠리온 산 정상에는 케이론의 동굴이라는 동굴 하나와 제우스 아크라이오스의 사당이 있다. 천랑성이 뜨는 계절, 즉 열기가 가장 심한 계절에 한창 나이인 시민 대표들은 동굴로 올라간다. 그들은 사제에 의해 선발되며 세 번 깍은 새 양가죽을 두른다.
                                                          - 헬레니즘시대의 작자미상의 글

마이클 우드에 따르면 이아손이 자랐다는 펠리온 산정에 신들의 왕인 제우스 아크라이오스(높은 곳의 제우스)의 사당이 있고 케이론이 살았던 동굴이 있으며 그곳에서는 사제들이고대에는 인간을 제물로 바쳤다는 음산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위의 작가가 쓴 것처럼 황금양털의 전설이 회자되던 시절에는 숫양을 제물로 바치고 그 갓 벗겨낸 가죽을 덮어쓰는 제식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황금양털의 기원은 콜키스의 사금채취라는 합리적 이성적 기원보다는 더 오랜 신화적, 신비적 기원을 지닌 것이고, 현대의 황금양털기사단들이 따르는 제의 역시 그 기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2. 성배, 그리고 황금 양털

뒤이어 나타난 소녀는 아름답고 단정하고 참한 차림새로, 그라알graal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녀가 그라알을 들고 지나가니 홀 전체가 어찌나 밝아지던지, 촛불이 빛을 잃는 것이 마치 해가 뜨면 달빛과 별빛이 희미해지는 것과도 같았다. 그 뒤에는 또 다른 소녀가 근으로 된 도판을 들고 나타났다. 그라알은 지극히 순수한 금이며, 땅과 바다에서 나는 가장 귀하고 값진 여러 가지 보석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크리티앵, <페르스발Perceval> 1190년

              

                  <페르세발의 성배 탐색-Martin Wiegand의 일러스트레이션>

그레이엄 헨콕은 <신의 암호>에서 성배와 성궤가 같은 것임을 주장한 적이 있다. 그에 대한 학계의 평가, 혹은 그 책에서 주장하는 여러 주장들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잠시 잊어버리자. 여기서는 그의 주장이 적어도 상징적으로는 옳다는 것에 초점을 두자.

인간은 이 세상에 어떤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영웅-한 집단의 영웅이던지, 혹은 개인적 영웅이던지-은 반드시 그 신비로운 힘의 원천을 담긴 어떤 물건을 되찾아 오는 사람이다. 어떤 영웅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 잃어버린 “해”를 다시 떠오르게 만들고, 어떤 영웅은 자신의 민족을 선민으로 만들기 위해 초월적인 존재와 만나 십계명을 받아오고, 어떤 영웅은 브리튼 민족을 구할 상징으로서 예수의 피를 담았던 잔을 구해온다. 그리고 이아손은 세계의 끝으로 나아가 용을 무찌르고 왕위를 상징하는 황금양털을 찾아서 귀향한다.

이 모든 신화에는 죠셉 캠벨이 원질신화(monomyth)라고 부른 기본적인 양식이 숨어 있다. 영웅은 자신이 속한 세계로부터 <분리>되었다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입문>하게 되어 세계의 또 다른 존재방식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고 그리고 세계의 끝, 흔히 이승과 저승을 건너가는 여행(콜키스는 역사적인 도시 콜키스라기 보다는 세계의 끝, 혹은 저승을 의미하고 있다)을 하거나 초자연적인 존재와의 투쟁에서 승리를 하게 되고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은 후 마침내 자신이 속한 곳으로 <회귀>하게 된다. 성궤, 성배, 황금양털이 상징하는 것은 결국 이 모험 과정에서 얻은 신비로운 힘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신화의 과정은 현대의 신화나 동화, 혹은 문학에도 반영되어 있다. <연금술사>에서 산티아고는 징조(omen)을 느끼고 멜키제덱을 통해 <입문>혹은 <분리의 권유>을 경험한 후 자신이 속한 세계인 유럽에서 아랍으로 <분리>되었다가 그곳에서 연금술사에게 다시 한번 진정한 <입문>을 받은 후 자아의 신화를 완전히 깨닫게 되고 마침내 보물을 얻고 <회귀>한다. 혹은 <회귀>하여 보물을 얻지만 산티아고가 얻은 보물은 물질적인 금화라기보다는 자아의 신화, 혹은 진정한 자아실현이므로 자아라는 보물을 찾은 후 <회귀>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3. Agnus Dei 신의 어린양

   건너기 어려운 날카로운 칼날

    시인은 노래 했거니, 이것이 험로라고
                                                   - Katha Upanishad

이제 좀 더 깊은 신비로 내려가 보자. 황금양털을 고대 신비주의자들은 어떤 것으로 생각했을까? 마이클 우드가 묘사했다 시피 양털을 입고 그 양털로부터 치유와 신비로운 힘을 얻는 제식은 청동기시대 혹은 그 이전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추정된다. 고대인들은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양털을 입거나 만지는 사람은 자신에게 위협을 주는 병이나 악을 쫒아내고 모든 불결함과 악한 영향력으로부터 해방된다고 믿었다.

황금양털은 일반적인 양가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바쳐진 성스러운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 희생을 통해 인간과 그 인간이 속한 집단은 악한 것을 정화하고 속된 것을 성스러운 것으로 변화시키는 변용의 힘을 얻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양털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변용의 힘을 얻을 수 있는 제식과 정결한 의식을 통해 변용의 힘이 희생에 깃들고 그 희생제의에 참여한 사람은 그 희생물의 성스러운 힘에 의하여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의 진정한 의미를 꿰뚫어 보는 사람은 희생제물의 힘에 의하여 자신과 사물을 변용시키는 힘을 얻게 된다.

이 상황을 현대인들은 흔히 미신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고대인들은 이 세계 자체가 초월자의 주관과 그 주관의 변형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만물속에 내재된 신성한 힘을 깨닫는 사람은 만물에 내재된 필멸의 과정(하강 katodos)을 극복하고 자신을 변용시켜 더 높은 어떤 것에 이르는 과정(상승anodos)을 실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나, 아무것도 죽지는 않는다. 영혼은 여지 저기를 방황하다 마음에 드는 뼈대를 취한다....... 따라서 한번 존재한 것은 다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존재하게 된다.

                                   - 오비디우스, Metamorphoses 

                               
                                      <오비디우스, B.C. 43 ~ A.D. 17>

오비디우스가 신비주의의 입문자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오비디우스는 사람의 핵심이 여러 변형을 거쳐 마침내 최고의 존재에 이르게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강하는 물질적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자, 기꺼이 죽음의 공포에 맞설 수 있는 자만이 입문할 수 있고 입문자만이 변용의 힘을 얻는다고 믿었다.

고대인들은 그 변용의 힘, 혹은 상승의 힘을 의미하는 것을 여러 가지 상징으로 불렀다. 그리스인들은 황금양털로, 오비디우스 시절의 미트라입문자들은 황소의 피로,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예수, 즉 신의 어린양의 피로, 그리고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철학자의 돌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마크 헤드슬은 이야기한다.

그것이 황금양털이었던 것은 그것이 영적인 양털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르고의 항해를 모방할 각오가 되어 있는, 그리고 숲속의 용 라돈을 죽일 용기가 있는 모든 연금술사들이 바라는 것이었다.
                                 - 마크 헤드슬, 젤라토르

용 라돈이 상징하는 것은 우리 내면의 어두운 힘이다. 이 힘은 인간의 중심이자 세계의 중심인 나무를 휘감고 있다. 이 나무는 세계의 축을 상징하지만 소우주인 인간에 비유될 때에는 척추를 상징한다. 이 척추 아래에 잠들어 있는 어두운 힘인 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용을 잠재우거나 정복하여 숲속(숲과 미로는 인간의 뇌를 상징한다)의 가운데에 있는 나무위의 황금양털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그 양털을 가진 자는 불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미하엘 마이어의 아틀란타 푸기엔스,(중세 연금술 및 신비주의 연구의 중요한 책자) "용은 여자를 파멸시키고 여자는 용을 파멸시킨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물론 여기서 용은 라돈과 같은 상징을 가지고 있다>

이 몽뚱이는 죽어 없어지지만, 이 몸 속에 와 계시는 실재(Self, 아트만)는 영원하며, 불멸이며, 무한이니라.

              - 바가바드기타 2:18

과거에는 영혼을 치료받기 위해서 황금 양털에 손을 대려고 했다. 장미십자회원들 같으면 그리스도의 손길에 닿는 것이 치유책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손이란 ‘어부왕’의 손이며, 이것은 쌍어궁시대를 나타내는 두 마리(또는 한 마리)의 물고기로 상징되고 있다.

                            - 마크 헤드슬, 젤라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