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살만하던 서울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지금 40대 후반 이상의 서울 토박이들은 이 글을 읽으면 수긍이 갈 것이다. 1960년도만 해도 서울은 지금처럼 투기와 학군경쟁의 광기나 동네별 빈부차도 거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서울의 갑부들은 산 주변의 녹지대를 선호하였다. 즉, 남산주변의 필동, 한남동, 장충동, 신당동, 북한산이나 삼각산 주변의 청운동, 삼청동, 성북동 등이 부촌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그런 곳은 공간적으로 한정되고 이미 서울토착 부자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거래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또 성북구 쪽의 1 학군과 4대문내의 학교들이 명문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독재자 박정희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역패권적 정치를 하고부터 경상도 출신들이 대거 관, 군, 국영기업체, 언론사 등 공사의 요직을 독점하고부터 영남파가 서울의 신흥 권력 및 경제세력으로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숫자가 증가하는 영남파 들은 이미 지가가 높고 서울 토박이로 자리가 찬 강북지역보다는 지가가 싼 허허벌판의 강남을 개발하여 자리 잡고 강남에 서울의 중심을 옮기려는 시도와 함께 부동산 투기를 시작하였다. 소위 영동이 뜨기 시작한 것이다. 영동(永東)은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서울의 강남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강남의 신설학교 들이 서울 토박이 들이 차지하고 있던 강북의 명문고등학교에 경쟁이 안 되자 강북의 명문고를 자기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강남으로 강제이전 시키기 시작하였다.

(관련기사: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20318111614836)

심지어 정책적으로 사설 학원가를 강남쪽으로 이전시키기 까지 하였다. 땅값과 교육이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택지 개발만으론 땅값이 안 오른다는 것을 간파한 투기정권의 정책이었다.


그 이후 서울 강남은 부동산투기의 광풍이 계속되었고 돈과 권력 있는 자들이 강남에 몰리면서 8학군이 귀족학군으로 뜨고 학군간의 격차가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또 강남에 관청들이 이전되어 오면서 기업이나 상업시설도 강남에 몰리게 되어 강남이 상업중심지로 떠오르며 지가가 더욱 폭등하였다. 그 결과 옛날 전통을 고집하면서 강북생활을 유지하던 서울 토박이 들은 강북지역의 상대적 부동산가격과 학교 수준의 하락으로 2등 시민, 즉 주변부 집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특히 산업화과정과 지역패권주의의 혜택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호남출신과 비영남 출신들은 달동네에 포진함으로써 서울 내에서도 동네별로 빈부차와 지역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런 부조리한 개발과 부동산투기, 독재정권에 불만을 품은 서울토박이들은 공화당 정권을 싫어하여 박정희 때만 해도 서울에서 공화당이 국회의원 당선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영남패권정치와 그에 따른 꾸준한 영남파의 서울진출로 강남을 중심으로 한 영남파 거주지역은 공화당의 후신인 민정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못 사는 지역은 야당을 지지하는 서울시내에서도 지역주의 현상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박정희와 그 후의 영남정권은 동과 서를 지역주의로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수도 서울도 지역주의로 나눠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