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하여 관객을 오도하고 이념을 상업화 하여 장사하는 영화들


                                                              2017.11.13



서해순(김광석 부인)이 김광석을 타살했고, 그의 딸도 죽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은 경찰의 재조사 결과 모두 사실무근으로 밝혀졌고 서해순은 무혐의 처리되었습니다. ‘김광석’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어 서해순이 김광석을 타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이상호는 사과나 반성은커녕 ‘영화에서의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무고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것 같습니다.

이상호는 세월호 사고 때도 다이빙 벨이 24시간 잠수하여 구조작업을 할 수 있다며 다이빙 벨을 투입하지 않은 정부를 맹비난했고, JTBC의 손석희도 이에 가세해 여론을 부추기는 바람에 정부도 어쩔 수 없이 다이빙 벨을 구조 현장에 투입했지만, 다이빙 벨은 구조는커녕 구조에 혼선만 주고 말았지요. 다이빙 벨을 투입한 결과가 처참하게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호는 그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정부가 다이빙 벨 구조를 방해했느니 하면서 나중에는 ‘다이빙 벨’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어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습니다. 정부가 ‘다이빙 벨’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방해했다며 또 한바탕 난리를 치기도 했지요.

이상호 같이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자신의 생각과 이념이 항상 옳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타인의 인권이나 명예는 아랑곳하지 않거나 국민의 혈세를 쏟아붓게 하고도 한 치의 가책도 없는 인간들이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특히 특정 세력들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해 목적성과 이념성이 강한 영화들을 제작, 개봉하는 경우가 최근 10년 사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영화는, 특히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객관적 사실에 벗어나 허구를 가미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영화는 어차피 픽션 아니냐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요즈음의 영화는 미디어의 기능도 겸하고 있어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고 국민들의 역사의식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에 따라 여론이 변하고 정책이 결정되는 것을 우리는 최근에도 경험한 바 있습니다.

영화 ‘판도라’를 보고 눈물을 흘린 문재인은 탈원전을 선언하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서 60%가 건설 재개에 찬성했지만, 여전히 당초의 탈원전 로드맵을 강행하겠다고 합니다.

영화 ‘판도라’는 그마나 비과학적이며 비현실적이긴 하나 실제 사건이 아니라 픽션이라는 것을 관객이 알 수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픽션과 현실을 구분 못하고 과학적, 이성적 검증은 내몰라라 하고 자신이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대로 한 나라의 에너지 정책을 결정합니다. 이러니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에서 픽션을 일부 가미해 왜곡한 영화들을 본 관객(국민)들이 해당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보다는 감독이나 제작자들이 의도한 바대로 왜곡해 받아들이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영화판을 들여다보면 히틀러나 스탈린이 영화를 통해 대중들을 선동했던 모습이 오버랩 됩니다.

90년대 구소련이 해체되고 공산주의(사회주의) 실험이 허망하게 끝나자, 국내의 종북주의자(주사파) 운동권 세력들도 멘붕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들이 믿었던 주체철학을 더 이상 내세우기 힘들어지게 되자 이들은 국내 정치판을 종래의 좌-우 혹은 민주-독재 구도에서 반일-친일 프레임으로 전환합니다. 그리고 5.18을 성역화 함으로써 5.18에 대해 학문적으로 재조명하거나 그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을 억압합니다. 또 상대방의 실수나 실책을 극대화시키거나 상대(자유민주진영)를 거악(巨惡)으로 대중들에게 인식토록 함으로써 자신들은 상대적으로 도덕성이 낫다고 선전합니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이 전교조를 통한 교육현장과 영화판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을 바로잡고자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를 비합법화하고 국정교과서를 만들려 했던 것이며, 반체제적 작품을 만드는 사람과 단체에 대해 정부의 지원을 삭감하거나 중단했던 것입니다. 이런 박근혜 정부의 조치가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으로 매도당하고 급기야 탄핵으로 이어진 것이죠.


교육현장이 얼마나 좌편향되어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꼴통 좌파들이 영화를 가지고 얼마나 국민들을 오도하고 선동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김어준의 ‘더 플랜’

‘더 플랜’은 김어준이 제작한 영화로 원래는 오는 12월에 있을 19대 대선 직전에 개봉하려 했으나 박 대통령 탄핵으로 5월에 19대 대선이 조기 확정되자 부랴부랴 4월에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김어준의 주장은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측이 자동개표분류기를 조작해서 미분류표를 많이 발생하게 하고 그 미분류표에서 박근혜 유효표를 많게 만들어 박근혜가 당선되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김어준과 ‘더 플랜’은 18대 대선을 부정 선거라고 단정하지 않았지만 그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18대 대선이 조작에 의한 부정선거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이 남긴 감상평이나 댓글, 인터넷이나 언론들의 평론을 보면 ‘더 플랜’의 내용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90%가 넘었다는 것은 김어준과 ‘더 플랜’의 의도가 관철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김어준과 ‘더 플랜’은 개표한 분류표에서의 박근혜와 문재인의 득표수, 그리고 미분류표에서의 박근혜와 문재인의 득표수를 산출해서 그 비율을 계산했습니다. 그 값(K)이 1.5로 나타났고  또 K값이 정규분포를 이룬 것을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K 값은 정상적이라면 1이 나와야 하며 정규분포를 이룰 수 없다고 하면서 이는 조작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18대 대선의 개표 부정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제가 K값이 1.5가 나오는 이유는 박근혜와 문재인의 지지 연령층이 다른 것에 기인하고, 박근혜 지지층이 60대 이상에 몰려 있기 때문이라고 김어준의 주장의 문제점을 사례를 들어가며 반박했습니다.

60대 이상의 노령층은 손 떨림과 약한 시력으로 인해 기표란에 제대로 기표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칸에 정확히 기표되지 않아 자동개표분류기에서 미분류표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미분류표 중에는 박근혜 지지자의 표가 상대적으로 문재인 지지자의 표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분류표 중 최종 유효표로 처리된 표는 당연히 박근혜 표가 많을 수밖에 없고, 박근혜는 분류표에서 얻은 득표률보다 미분류표에서 얻은 득표률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K값이 1.5로 나오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K값이 정규분포를 이루는 것도 각 후보의 지지층이 지역과 연령층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짐에 오는 것으로 이것 역시 정상입니다. 

이렇게 김어준과 ‘더 플랜’의 주장이 엉터리임을 증명하고, 당시에 김어준과 ‘더 플랜’ 감독과 제작진에게 재개표를 해서 누구 주장이 맞는지 확인하여 틀린 측이 재개표 비용을 부담하자고 이메일을 통해 제안했지만 반응이 없었습니다


아래는 뉴스타파가 19대 대선의 개표결과를 분석한 내용입니다.

http://newstapa.org/40171

위 뉴스타파 기사를 보면, 19대 대선에서 미분류표는 4.16%로 나와 18대의 3.6%보다 높게 나왔고, 홍준표와 문재인의 K값도 1.6으로 18대의 박근혜와 문재인의 K값 1.5보다 더 높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18대와 같이 K값이 정규분포를 이루었음을 보여줍니다. 19대도 18대와 같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죠.


김어준은 자신의 주장이 잘못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들을 현혹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그에 따른 응분의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요?

김어준은 황우석의 조작 논문을 쉴드 쳤고, 세월호도 국정원(정부)이 고의로 침몰시켰다고 주장했으며, 이번에는 18대 대선이 부정 선거였던 것처럼 ‘더 플랜’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어 국민들을 기만하고 선동했습니다.

이런 인간이 버젓이 교통방송에서 한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공중파(SBS)까지 진출해서 국민들을 농락하고 있으며 깨시민들은 이런 인간을 따르며 그의 말에 환호하고 있습니다.

김어준 같은 인간이 버젓이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사회는 가망이 없습니다. 김어준이 자진해서 사라지지 않으면 강제라도 그를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합니다.


<제가 쓴 ‘더 플랜’ 비판 글>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page=1&st=userid&sword=enkyryu1&nid=4494358

     

2. 정지영의 ‘천안함 프로젝트’

저도 천안함 사고가 났을 때 피로절단설, 암초 좌초설에 무게를 두고 많은 의혹을 제기했었습니다. 그러다 천안함 항적이 공개되고 천안함 양단이 솟구쳐 올라와 있는 형상을 보고 제 주장을 접었습니다. 그 이후 천안함 사고 원인에 대해 이스라엘 잠수함과 충돌설, 장천항 사고설, 멍게 유생설 등의 음모론을 제기했던 사람들과 논쟁을 하게 되었죠. 이 사람들은 천안함 사고의 진실 규명보다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자신들의 주장에 유리한 정보나 증거만을 내세우고 자신들의 주장에 반하는 증거들은 무시하더군요. 대표적인 인물이 신상철인데 당시에 민주당 추천의 조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사퇴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이스라엘 충돌설과 멍게 유생설을 제기했던 사람으로 정지영은 신상철의 주장을 바탕으로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를 제작했습니다.

정지영과 신상철이 얼마나 엉터리 주장을 하는지는 제가 아래에 링크하는 영화 ‘천암함 프로젝트’를 비판한 글에서 자세히 설명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제 글에서 링크를 걸어둔 글들을 보시면 더 자세한 것을 알 수 있으니 시간이 되시는 분은 그 글도 함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지영은 미국의 헐리웃 영화의 국내 잠식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스크린 쿼터를 주장할 때 헐리웃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에 뱀을 풀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렇게 스크린 쿼터를 주장하던 인간들이 CJ나 롯데에 의해 배급이 독점되는 문제나 독립 저예산 영화들에 대한 홀대, 열악한 영화 제작 환경에 대한 개선에 대해서는 말이 없습니다.

이런 작자들이 국민들을 선동하는 영화를 만들어 오도해 놓고 자신들의 주장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져도 사과나 반성은커녕 또 다른 왜곡 영화로 국민들을 오판하게 만들지요. 


<제가 쓴 ‘천안함 프로젝트‘ 비판 글>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page=1&st=userid&sword=enkyryu1&nid=2979705


3. 정지영의 ‘부러진 화살’

‘부러진 화살’은 성균관대 김명호 교수가 재임용 탈락에 불만을 품고 소송을 제기한 사건을 맡은 박홍우 판사를 석궁으로 위해한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정지영은 실제 사실과 완전히 다른 내용을 담아 마치 김명호가 억울하게 당한 것처럼 묘사하고 박홍우 판사나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한 경찰과 검찰을 파렴치한으로 매도했습니다. 한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보다는 국민들에게 공분을 일으켜 정부나 사법부의 불신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명백했죠. 그 과정에서 박홍우 판사나 경찰과 검찰의 인권과 명예는 망신창이가 되고 그 가족들마저 함께 매도당하는 일이 벌어졌죠.

이와 관련해 제가 썼던 글을 역시 아래에 링크합니다.

<정지영의 ‘부러진 화살’은 오조준되었다>

http://theacro.com/zbxe/?mid=free&search_target=nick_name&search_keyword=%EA%B8%B8%EB%B2%97&page=22&document_srl=508612

<영화 ‘부러진 화살’은 ‘부러진 진실’이다>

http://theacro.com/zbxe/?mid=free&search_target=nick_name&search_keyword=%EA%B8%B8%EB%B2%97&page=22&document_srl=511610


4.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 ‘아이 캔 스피크’

저는 우리 국민들이 위안부에 대한 인식이 매우 잘못되었음을 누차 이야기해 왔고, 그 원인 제공자가 정대협과 이용수 할머니라고 말했습니다.

정대협의 문제는 김정란의 논문에도 나오고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정대협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아래에 발췌해 올리는 김정란 논문(본군 '위안부' 운동의 전개와 문제인식에 대한 연구 : 정대협의 활동을 중심으로)의 초록 일부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대협의 활동은 초기부터 제3기에 이르기까지 민족차별과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라는 두 개의 관점에 의해 견인되어 왔다. '위안부' 이슈는 국내에서는 주로 민족수난의 생생한 사례로서 공감되어 왔고, 국제적인 장에서는 현재에도 지속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로 제기되어 왔다. 정대협은 이 두 가지 관점을 모두 견지하고 있었으나 우선적으로 민족문제로서의 인식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후자의 문제인식은 다분히 국제적 연대의 필요적 차원에서 견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가 일차적으로 민족의 문제로 상정됨으로써 다음의 두 가지 결과가 도출되었다. 우선 피해자들은 입을 열 수 있었으나, 목소리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민족적 공감을 야기하는 이미 마련된 특정 세팅 안에서만 경청되었다. 그들은 강제로 끌려간 순진한 조선의 처녀로 전형화되었다. 민족적 피해의 역사적 청산이라는 더 우선적인 과제 앞에서 그들의 구체적 경험과 입장은 주목되기 어려웠다. 다음으로 '위안부' 문제가 일본이라는 가해국에 책임을 묻는 한일간의 민족문제로 인식됨으로써 한국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여러 여성차별적 관행과 계급적 차별의 문제는 제기되기 어려웠다. 가해국 일본과 피해국 조선이라는 민족적 대립의 설정은 '위안부' 이슈의 핵심적인 문제 즉 가부장적 성규범과 여성의 성적 대상화, 상품화의 문제, 거기에 얽혀있는 계급차별적 상황이 충분히 도전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단적인 예는 일본인 '위안부'와 조선인 '위안부'를 구분하는 정대협의 관점이다. 초기부터 견지된 이러한 관점은 전자를 매춘여성으로 규정하는 한편 후자를 성노예제의 피해자로 간주함으로써 조선여성의 피해를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이는 피해자들의 성적 피해에 대한 이해의 한계와 동시에 성매매에 대한 정대협의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준다. 한국 사회에서 '위안부' 이슈는 민족적 정서를 바탕으로 제기되고 공감되어 왔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기본적으로 피해자 여성들의 인권의 문제로서 이의 해결은 '위안부' 당사자들이 겪었던 개인적인 피해의 경험에 대한 천착과 아울러 그들을 그러한 상황으로 몰고 갔던 한국과 일본의 상황에 대한 구조적 이해를 필요로 한다. 여성억압의 내외적 원인과 이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도전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지난 10년 넘게 싸워온 투쟁의 노력과 성과는 실질적인 효과를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이 연구는 정대협의 '위안부' 운동에 대한 평가를 통하여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아직까지 매우 강력한 효력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동시에 민족주의가 내포할 수 있는 성차별적 성격에 대한 경계와 도전이 지속적으로 시도되어야 함을 드러내었다. 여성들에 의해서 주도된 여성운동에서 조차 민족주의적 관점에 의해 여성의 경험이 주변화 되는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민족주의가 사회적 약자의 경험과 목소리를 비가시화 하는 억압적인 이념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번 트럼프 방문시 만찬장에 초대되어 트럼프를 먼저 껴안는 퍼포먼스로 독도 새우와 함께 일본을 자극했습니다. 북핵에 대응해 한미일 공조가 시급한 때에 방한 직전에 미일 동맹 강화를 위해 일본을 다녀온 트럼프 앞에 독도 새우와 위안부 할머니를 등장시켜 외교상 심각한 결례를 저지르는 미친 짓을 하는 문재인 정부도 문제지만, 자신이 뭐라도 되는 듯 정치판에 안 끼어드는 데가 없는 이용수 할머니도 큰 문제입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성주에 가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며 ‘미국년놈들’이라는 소리로 미국을 맹비난해 놓고 트럼프를 먼저 껴안는 이중성을 보였지요.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도 나오고 미국 청문회에서 위안부 관련하여 증언도 하고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과연 이 분이 위안부 할머니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분이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주인공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에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증언의 일관성도 없고 그 증언을 증명해 줄 아무런 물적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용수 할머니의 말만 있지 관련 주변 사람들(가족들)이 나타나지도 않으며 이들의 보충 설명도 없습니다. 단지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만 있을 뿐인데 이 분의 최근 증언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의 최초 증언(1993년)을 보면, 친구 어머니가 친구와 함께 이용수 할머니를 업자에게 팔아 넘긴 것으로 보이며, 좋은 옷에 혹해서 업자들을 따라 나섰다가 대만에서 약 10개월 정도 위안부 생활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용수 할머니의 2000년대 들어 최근까지 증언은 180도 바뀝니다. 일본 군인에게 강제로 잡혀가 대만으로 가는 배에서 일본군 300명에게 집단 강간 당하고, 폭력에 시달리고 그 폭력에 다른 위안부들이 배 안에서 죽어 나갔으며, 하루에 70명의 일본군을 받는 등 처참한 생활을 했다고 증언합니다.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블로그를 아래에 링크합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kdgur201&logNo=220597321959&proxyReferer=&proxyReferer=https%3A%2F%2F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과 같이 신빙성이 결여된 증언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정대협에 의해 강요되다시피 알려지고, 이런 증언들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져 국민들이 위안부문제를 잘못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귀향’, ‘아이 캔 스피크’와 같이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들에서 묘사되는 내용들이 실제 사실인 것처럼 관객들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도 꼴통 좌파들의 의도된 장난질이라고 저는 봅니다.


5. 반일감정을 부추키는 영화와 뮤지컬들

최근 부쩍 반일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덕혜옹주’, ‘박열’, ‘군함도’, ‘대장 김창수’ 등이 1~2년 사이 줄줄이 개봉되었지요. 이 중에 ‘박열’은 제가 보지 않아 논평하기 곤란하지만, 나머지 영화들은 객관적 역사적 사실을 많이 왜곡해 국수적 반일 감정에 기대 영화 장사 하려는 속셈이 많이 보입니다.

이 영화 중에 제가 ‘군함도’와 ‘대장 김창수’에 대해 비판한 글을 아래에 올립니다.

<또 하나의 역사 왜곡 ‘군함도’>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page=1&st=userid&sword=enkyryu1&nid=4531710

<살인 강도범을 의인으로 미화한 ‘대장 김창수’>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page=1&st=userid&sword=enkyryu1&nid=4568290

영화 ‘덕혜 옹주’는 완전히 사실을 날조한 영화인 반면, 연극 ‘덕혜 옹주’는 그나마 사실에 기반해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 볼 만 했습니다. 혹시 연극 ‘덕혜 옹주’를 촬영한 것이 유튜브에 있다면 꼭 찾아서 한번 보시고 영화 ‘덕혜 옹주’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 말고도 뮤지컬에서도 반일감정에 편승한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명성황후’인데 이 뮤지컬은 반일감정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 구한말의 역사를 잘못 알게 하는 엄청난 악영향을 끼친 작품입니다. 하지만 조수미의 ‘나 가거든’이라는 노래와 함께 민비가 일본인에게 무참하게 희생된 조선의 국모로 그려지고 있죠. 백성의 고혈을 빨고 매관매직으로 아들의 건강을 빈다며 무당을 불러 들여 금강산 1만2천봉에 막대한 돈을 낭비하고 심지어 임오군란으로 피신할 때 자신을 욕한 마을 주민들을 권력을 다시 잡은 뒤에 모두 몰살시킨 희대의 악녀가 민비입니다. 자신과 왕가만을 위해 일본, 중국, 러시아를 줄타기 하며 망국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어떻게 조선의 국모로 칭송되는 뮤지컬의 주인공이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뮤지컬 ‘영웅’은 반일 문화 작품 중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긴 하지만 이 뮤지컬 역시 문제가 많아 보이더군요. 제가 뮤지컬 ‘영웅’을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이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정성화 분)은 이등박문을 살해한 이유 15가지를 일일이 나열하고 ‘누가 죄인인가’라고 묻습니다. 이 ‘누가 죄인인가’를 묻는 장면에서는 출연 배우 모두가 반복적으로 합창하여 엄숙하고 웅장한 느낌을 자아내고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안중근과 이등박문을 선악으로 대비시킴으로써 일본에 대한 감정의 정당성을 부여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안중근이 말하는 이등박문을 살해한 이유 15가지는 타당한지에 대해 여러분들은 따져 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안중근의 거사(?)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이 15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15가지 중 몇몇은 이유가 된다고 생각되지만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살해한 이유 15가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하나, 명성황후시해 죄.

둘, 고종황제폐위 죄.

셋, 을사 5조약과 정미 7조약강제 죄.

넷, 무고한 한국인학살 죄.

다섯, 정권강탈 죄.

여섯, 철도, 광산, 산림, 천택(川澤)강탈 죄.

일곱, 제일은행권(지폐)유통 강요 죄.

여덟, 군대해산 죄.

아홉, 민족교육방해 죄.

열, 한국인 외국유학금지 죄.

열하나, 교과서 압수 및 분서(焚書) 죄.

열둘, 한국인이 일본인 보호를 원한다는 허위사실유포 죄.

열셋, 한일 분쟁과 살육이 계속되는데 태평무사하다고 천황을 속인 죄.

열넷,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열다섯, 일본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


이등박문이 조선 통감으로 약 5년간 재직했으니, 이 시기에 일어난 고종황제 폐위(둘째), 을사조약 및 정미조약 강제(셋째), 정권강탈(다섯째), 군대해산(여덟번째)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첫 번째인 명성황후(민비)를 시해는 1896년에 일어났으며 이등박문과 하등 관련이 없습니다. 이 사건을 일본에 책임을 묻는다면 일본을 대표하는 천황이나 시해사건이 일어난 시기인 일본 내각이나 시해에 관여한 최고 결정권자에게 물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중근은 오히려 일본 황실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대하고 있고 일본 주도의 동양평화론을 주장하고 있으니 이를 이등박문 살해 이유로 드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조금 더 황당한 이유는 일곱 번째 ‘제일은행권 유통 강요 죄’입니다. 이것을 보고 저는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당시 조선 왕실은 돈(당오전)을 마구 발행하여 인플레이션이 극심해 민초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고종은 전환국에서 돈을 마구 찍어내어 왕실의 내탕금으로 쓸 뿐 국정 운영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중앙은행 제도 없이 돈만 마구 찍어 자신의 돈처럼 사용하면 시장에서 인플레이션은 필연입니다. 따라서 당오전 발행의 부작용을 해소하고자 일본(이등박문)이 중앙은행 역할을 했던 제일은행권을 발행했던 것은 죄가 아니라 조선 민중을 위해 잘 한 것입니다. 근대적 체계와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조치로 민생에 도움이 되는 것인데 이를 이등박문의 살해 이유로 든 것은 조선 왕실 중심적 사고가 아니라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홉 번째 ‘민족교육 방해죄“나 열 번째 ’한국인 유학 금지 죄‘, 열 한번째 ’교과서 압수 및 분서죄‘도 황당하기 마찬가지입니다. 이등박문은 조선인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통감 재임 5년간 막대한 자금을 투하하여 조선에 국민 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5천개나 설립했습니다, 이등박문은 조선의 근대적 교육체계를 확립하고 조선 민중의 교육에 열의를 다한 사람입니다. 당시는 합병되기 전이었고 이등박문은 조선의 역사성을 존중하여 합병을 반대한 인물인데 저 시기에 이등박문이 민족교육을 방해하고 한국인의 유학을 금지했으며, 교과서 압수 및 분서를 했다고 무슨 근거로 저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시에 조선이 무슨 민족교육을 시킨 것이나 있었으며, 교과서다운 서적이라도 발행한 적이 있었나요?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시기였고 민중들은 ’민족‘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시기였습니다. 성리학이 민족교육의 중심이고 향교와 서원이나 서당의 유림들이 민족교육의 주체였고 사서삼경이 교과서였다는 말인가요?  맹자왈 공자왈 하는 서당이 민족교육의 본산이라 일본이 서당을 없애버렸다는 말인가요? 일본이 조선에 근대적 교육기관으로 소학교를 만들어 갈 때 서원의 땅을 내주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 유림들이 민족 교육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인가요? 신분제 폐지에 반대하고 양반과 상민들이 같은 책상에 앉아 공부할 수 없다고 소학교 설립을 강력히 반대한 사람들이 당시의 양반들과 유림계층이었습니다. 이런 데도 이등박문을 우리의 교육을 황폐화시킨 주범으로 몰아가는 것이 가당키나 합니까?

열다섯번째 ‘일본 천황의 태황제를 죽인 죄’에 이르면 더욱 황당해져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죽인 이유가 의심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하도 말이 되지 않으니까 우리 측에서는 태황제는 고종을 이르는 말이고 고종은 아직 죽지 않았으나 폐위 시킨 것에 대한 책임을 한번 더 강조한 것이라고 강변하거나 번역과정에서 오역된 것이라고 우기지만, 어떤 설명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태황제는 메이지 천황의 전대 천황으로 고메이를 지칭하는데, 이 고메이는 개방을 반대하고 근대화에 부정적인 인물이라 개방과 근대화를 추진하던 막부세력이 독살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안중근은 이 고메이를 물러나게 하고 죽인 것에 이등박문이 관여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를 볼 때 안중근이 일본 황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조선 황실(왕실)에 대한 인식도 어떤지 알 수 있죠.

대한 제국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국 국제’의 내용 중에 “대한국의 정치는 만세 불변의 전제 정치이다.”, “대한국 대황제는 무한한 군주권을 누린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한 제국의 국체는 전제군주국이고, 모든 권한은 황제에게 있는 전근대국가라는 말이지요. 이런 대한제국과 조선 황실의 유지가 안중근의 목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조선을 일본과 같이 근대화시켜 신분제를 타파하고 삼권분립의 근대 민주국가로 만들고자 했던 이등박문을 안중근이 살해한 것은 역사의 후퇴이고 반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상기에서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살해한 이유 15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만, 저는 안중근의 이등박문 살해 동기나 목적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안중근을 민족의 영웅으로 각인시켜 놓고 그의 언행과 행위를 아무런 검토나 비판 없이 무조건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 안중근의 행위와 언행을 냉정하게 따져보고 그의 행위를 평가하는 것은 반민족 처사가 되는 것입니까?

안중근은 아버지와 함께 동학농민군을 토벌하였고, 자신의 ‘동양평화론’에서 동학농민군을 쥐새끼에 비유하며 경멸했습니다. 그 동학농민군의 수 만의 잔여세력들은 일진회에 자진해 가입하고 그 중추가 되었지요. 하지만 우리 역사 교과서에는 이런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역사는 이런 것입니다. 역사는 복잡 미묘하고 이해당사자의 관점이 얽히고 설켜 하나의 일면만 보고 평가하는 것은 자칫 승자의 관점만을, 혹은 현재의 득세한 자들의 관점만을 반영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당대의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무시하고 현재의 시각으로 재단해서 곤란합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우리가 3.1절을 기념하는 이유를 단순히 일제 강점에 항의하여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3.1운동의 진정한 의미는 기존의 조선이나 대한제국과 같은 전근대국가로 회복하거나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3.1운동을 시점으로 주권이 사회구성원에게 있는 민주공화국으로 독립을 지향하게 된 점이 더 큰 의의라고 보지요. 우리 헌법 전문에 3.1운동을 처음 언급하고 우리나라의 시발점으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라는 것을 국민들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안중근은 조선 황실, 즉 전제군주국의 회복을 목적으로 한 ‘복벽주의’적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것 역시 민족 독립운동임으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 지향점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겠지요.  


6. 5.18을 실제와 다르게 묘사하고 성역화하는 영화들

최근 5.18 관련한 영화인 ‘택시 운전사’가 개봉되어 1천만이 넘는 관객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는 사실을 많이 왜곡해 5.18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고착화 하는데 일조를 했다고 봅니다.  일례로 ‘택시 운전사’의 실제 인물 김사복은 영화에서 처럼 우연히 힌트 페츠를 택시에 태운 것이 아니라 이미 힌트 페츠와 알고 있었고 김사복도 함석헌 등 당시의 재야 인사들과 교류하고 있었으며, 힌트 페츠를 계획적으로 광주에 데려간 것입니다. 영화 ‘택시 운전사’와 그 주인공인 김사복이 얼마나 다른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김대령’이 쓴 아래의 글을 보기 바랍니다.

http://kookbocounty.blog.me/221091181743

김사복이 힌트 페츠와 함석헌과 찍은 아래의 링크한 기사에 나오는 사진을 보십시오.

http://v.media.daum.net/v/20170905113104648

그리고 SBS 'Y 이야기‘에 나오는 김사복과 김사복이 운전(운영)한 차량을 보시고.

http://blog.naver.com/choebuja?Redirect=Log&logNo=221087937787

광주 시청의 시민의 숲에 전시된 ‘택시 운전사’의 택시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696447&code=61121111&cp=nv

영화 ‘택시 운전사’의 예고편도 보기 바랍니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46469&mid=35198#tab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46469&mid=34877#tab

광주까지 운전한 사람은 김사복이 아니라 김사복이 고용한 20대 청년으로 보인다는 기사입니다. 차를 타고 간 사람은 힌트 페츠, 김사복, 20대 청년, 3명이었습니다. 왜 김사복은 운전사가 있는데도 굳이 광주를 따라 나선 것일까요?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7090701071527104001

김사복과 힌트 페츠가 광주까지 타고 간 차량은 문세광이 육영수 여사를 저격할 때 국립극장까지 타고 갔던 차량으로 보입니다. 문세광을 태워 주었던 기사는 김사복이 고용한 스페어 운전사 황수동이고요.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4081700209206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4-08-17&officeId=00020&pageNo=6&printNo=16271&publishType=00020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2207721#IE002207721


여러분들은 영화 ‘택시 운전사’가 실제 사실과 얼마나 같다고 여겨지며, ‘김대령’의 글이 허무맹랑하다고만 할 수 있다고 보여자는가요?

김사복은 왜 힌트 페츠와 사전에 약속하고 함께 조선호텔에 묵었으며, 함석헌 등과 함께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힌트 페츠와 함석헌 등 다수의 사람들과 산 속에서 야유회를 하는 듯한 사진은 5.18 이전인지, 이후인지 모르겠으나, 왜 김사복은 이들과 함께 했을까요?

단순한 택시 운전사가 아니라 호텔 택시 등 3대를 운영한 운수 사업자인 김사복인데 영화에서는 왜 그렇게 그려졌을까요? 이미 힌트 페츠의 수기는 KBS의 ‘푸른 눈의 목격자’에서 소개되었고, 그 수기에는 김사복이 처음부터 힌트 페츠를 공항에서 마중 나가고 안내하면서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고 나오는데, 영화는 왜 마치 아무 것도 모르는 단순한 택시 운전사인 것처럼 묘사했을까요? 영화를 만들면서 최소한의 검증(고증?)도 안 했는지 궁금합니다.


‘김대령’이 올린 힌트 페츠의 아래의 수기 내용이 무얼 의미할까요? 각자 판단해 보기 바랍니다.


Outside, our driver, KIm Sa-Bok was waiting for us. We greeted each other, then sped off toward the Chosun Hotel in downtown Seoul. As we drove, Kim briefed us on the situation. It was too late to set out for Gwangju - several hundred kilometers to the south. We stayed the night at the hotel in Seoul.



5.18은 이미 한 세대를 지난 37년 전의 사건으로 물론 우리가 잊어서도 안 되겠지만, 이제는 용서와 화해를 위한 작업을 모색할 때이지 5.18을 들추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자제해야 합니다.

국회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법제화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비방, 왜곡, 날조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발의했고, 이 법안이 문재인 정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저는 이런 법안 발의와 동조 움직임은 비민주적 전체주의적 발상이며,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다면적 역사 해석을 봉쇄하고 획일적 규정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보아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저는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보지만, 그렇다고 이런 나의 해석을 절대화하거나 남에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5.18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폭동으로 보는 견해마저 있지요.

5.18과 관련한 사실이 국민들에게 잘못 알려진 것도 많아, 한 일방의 일방적인 규정이 법적으로 강제되는 것은 자칫 사실관계가 왜곡되고 과장된 상태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굳어질 우려도 있어 국민들이 5.18을 제대로 평가하는 데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5.18의 실체적 사실 규명이나 재해석의 연구마저 원천 봉쇄할 수 있는 이런 법은 반민주적이며 양심과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법 뿐만아니라 5.18을 한 쪽의 시각을 통해 실제와 다르게 일방적으로 묘사하여 국민들이 5.18의 실체를 잘못 알게 하는 경우도 있죠. 바로 영화입니다.

앞서 말한 ‘택시 운전사’ 뿐아니라 ‘26년’, ‘화려한 휴가’ 등 5.18을 다룬 영화에서 나타나는 계엄군들의 모습은 거의 학살자로 표현됩니다. 이들 영화에서 보여주는 계엄군들이 대오를 형성해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군중들에게 일제 사격하는 장면은 사실과 완전히 다르지요. 시위대들이 버스를 몰아 계엄군과 경찰에 돌진하여 수 명의 경찰과 계엄군이 사망하고 수 명이 중상을 입는 과정에서 계엄군이 자위적 차원에서 발포한 것이 실제 사실입니다.

5.18에서의 사망자는 민간인 166명, 군인과 경찰 27명, 총 193명입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 대부분은 수 천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고, 심지어 민주당 의원들도 2천명이 넘게 사망했다고 국회에서 떠듭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사망자 수에서도 잘못 알게 된 배경에는 5.18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저런 식으로 사실과 다르게 계엄군 행위를 왜곡해 묘사했던 것도 한 요인입니다. 

민간인 사망자 중에는 캘빈 소총으로 사망한 사람이 26명이 됩니다. 총기 종류를 확인할 수 없는 총상 사망자가 80여명이 넘습니다. 이는 무얼 의미할까요? 캘빈 소총을 사용한(계엄군은 M16만 사용) 시민군의 오발이나 유탄에 의해 시위대들이 많이 사망한 것이죠. 그리고 사망자 중에는 시위대들이 계엄군과 대치 과정에서 죽은 경우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5.18의 혼란한 틈을 이용해 개인적 원한에 의한 살해도 사망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계엄군의 일제 사격 장면 외에 5.18 관련한 영화들이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는 것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어린 아이가 아버지 영정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은 5.18하면 떠오르는 사진이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품에 들고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 말입니다. 저는 저 사진을 볼 때보다 5.18 당시의 슬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 같아 울컥 했었습니다. 이 ‘오월의 꼬마 상주’의 이름은 조천호이고, 영정의 주인공은 1980년 5.21에 사망한 조사천입니다. 이 사진은 전세계의 언론을 탔었고, 5.18의 비극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5.18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 <26년>에서도 조사천의 죽음이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밀린 임금을 받으러 금남로로 아들과 함께 나왔다가 계엄군의 총격에 사망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그려진 것이 객관적 사실일까요?

1980년 5.21 광주 금남로로 돌아가 보지요.


<1980년 5월21 오후, 광주 금남로를 따라 금남로 3가에서 2가 방향으로 장갑차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 장갑차의 열려진 헤치로는 웃통을 벗은 남자가 머리에 흰 머리띠를 두르고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장갑차가 동구청 앞에 잠시 머물렀을 때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며 이 남자의 머리가 푹 고꾸라졌다. 장갑차 위에서 꼬꾸라진 남자는 조사천으로 ‘오월의 꼬마 상주’가 들고 있는 영정의 주인공이었다. 이 남자의 사망 원인은 총상으로 시민군의 캘빈 소총에 의한 것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영정의 주인공 조사천이 계엄군의 M16 소총 총격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5.18 관련 어느 단체도 이런 사실을 제대로 기술하지 않고 있어 계엄군이 조사천을 사살했다는 누명을 여전히 쓰고 있지요.

진압군도 학살자가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었으며 형제였고 아들이었고 그들도 얄궂은 시대적 상황과 군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본의와 무관하게 5.18 현장에 투입된 죄 밖에 없습니다. 그들 역시 시대의 희생자이니 학살자의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은 억울하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그런데 왜 5.18 관련 영화들은 저렇게 계엄군을 학살자로 묘사하고 국민들의 분노를 계엄군에게 쏟게 만들가요?


문재인 정부 들어서 5.18 실체를 규명한답시고 별별 짓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된 헬기 기총 소사도 전일빌딩에서 헬기 기관총 탄흔이 발견되었다고 법석을 떨지만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시민군에 의해 전일 빌딩 옥상을 향해 사격한 흔적일 뿐 헬기가 쏘았다고 보기에는 설명이 되지 않은 것이 많지요. 국과수는 56mm(소총 구경), 72mm(기관총 구경)인지 확정하지도 못했고 탄흔으로 보아 기관총 사격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기관총 탄흔이라고 발표할 뿐입니다. 이런 발표를 하고 난 뒤에는 제대로 규명했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jtbc는 연일 5.18 당시 공군이 광주를 목표로 출격 대기를 했다는 보도를 하고 정부도 출격 대기에 대해 조사를 한다고 난리를 쳤지만, 국방부 조사위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그런 사실이 없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jtbc는 국방부 조사위의 조사결과는 보도하지 않지요.

최근에는 광주 교도소에 암매장된 시위대 시신이 있다고 혈세를 들여 발굴 작업을 했지요. 역시 수일간의 발굴 작업을 했지만 시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언론들은 5.18 당시 계엄군이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겼거나 훼손했을 것이라고 아무 근거 없는 소설로 기사를 마무리합니다.

    

영화가 5.18을 실제와 다르게, 혹은 과도하게 표현하는 이유가 무얼까요? 그리고 이런 영화들이 왜 선거 때에 맞춰 개봉되고 특정 세력이 다른 특정 세력을 공격하는데 사용될까요? 그리고 현 문재인 정권은 5.18에 대해 왜 이토록 집착하며 5.18의 비극을 더욱 극대화 하려 안달일까요? 남의 불행이나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가슴에 되새기기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확장하거나 상대방을 공격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한다고 이들을 비난하는 것이 과도한 것이라 생각되는지요?



저는 거짓으로 신화를 만들고 그것을 성역화해서 그것을 비방, 날조, 왜곡한다는 이유로 학문적 연구를 차단하거나 다른 관점에서의 접근을 방해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거짓으로 만든 신화가 사실로 고착되고 그것을 토대로 역사의 평가를 받아서는 곤란합니다.

또 가치 판단 이전에 사실 판단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념과 가치는 사실(Fact)에 기반하여 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진실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에 유리한 것만 취사 선택하거나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에 반하는 증거들은 애써 무시하는 것은 남을 속이는 것이며 자신도 기만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아가 사회를 좀 먹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더욱이 자신의 이념이나 신념, 그리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여 대중들을 기만하고 선동하는 짓은 악이며 범죄이고, 이런 자들과 세력들은 척결되어야 할 사회의 암적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신들의 주장이 틀렸음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지부조화나 자기합리화의 덫에 빠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대중들도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영화계나 언론이 정치적 편향된 것에 대해 시정해 줄 것을 그들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이념, 철학, 가치관에 따른 정치적 경향성은 인정합니다만, 작품이나 기사에서만은 사실을 바탕으로 표현하거나 서술해 줄 것을 당부할 뿐입니다.

소통은 사실을 기반으로, 사실을 공유한 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거짓으로 점철된 기사나 왜곡된 영화를 바탕으로 생산적인 토론이 될 수 없을 뿐아니라 소통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다만 상호간에 불신과 증오만 증폭시킬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