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outsideonline.com/2255971/very-old-man-wolf?utm_medium=email&utm_campaign=Dispatch-10312017&utm_content=Dispatch-10312017+Version+A+CID_62be227acbe1f5d9716afa8317902acf&utm_source=campaignmonitor+outsidemagazine&utm_term=The+Wondrous+Life+and+Unceremonious+Death+of+OR4

번역해봤는데 원어보다 감흥이 훨씬 떨어지는 건 왜일까요. 에잉.. 그치만 번역한 것이 넘 아까우므로..  제대로 번역이 된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구글을 쬐금 참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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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는 본래 광범위하게 움직인다. 2살이 되면 암수 둘 다 가족을 떠나 독립 해, 짝을 찾거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수 백 킬로미터를 돌아다닌다. 이유가 무엇이든 늑대가 움직일 땐 목적이 있으며 움직임도 빠르다. 인간은 그 동선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늑대의 선택은 상당히 중요하다. 

2005년인가 2006년의 어느 날 아이다호에 있던 흑발의 한 늑대녀석은 서부로 가기로 작정을 했다. 스네이크 강을 건너 당시 검은 늑대의 서식지에서 판이하게 먼 오레곤 주로 간 것이다. 오레곤 주에 입성하면서 무명의 늑대는 일약 지역의 스타로 등극했다. 그는 부단한 경쟁을 이겨낸 사냥꾼이자 애비이자 생존자였으며 가축들을 무자비하게 습격한 악명높은 녀석이었다.   

녀석은 아이다호에서 장거리를 여행해 온 은회색빛 암컷을 오레곤에서 만난다. 아이다호 주 생물학자들이 암컷에 이미 추적기를 목에 달아 놓았으며 암컷의 이름은 B300이었다. 암컷은 아이다호 북쪽에서 팀버라인이라 명명된 무리에서 났으며 1996년에 오레곤 주가 공식 재도입시킨 늑대가 그 조상이었다. 암컷의 조모뻘은 B23이라 불리우는, 흑발의 늑대로 북 브리티시 콜롬비아에서 나서 북풍이 부는 숲에서 새끼 무스나 순록을 잡아 먹고 자랐다. B23은 생포되어 1996년 1월 아이다호의 Dagger Falls로 옮겨졌다. 녀석이 송아지 한 마리를 죽인 대가로 2001년에 연방야생동물관리원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까지 번식시킨 새끼는 거의 30마리에 달했다.  

2006년 여름, B300의 목에 추적기가 채워졌을 당시 녀석은 이미 불안정한 상태였을 것으로 보인다. 9월에 같은 무리의 늑대 두 마리가 양과 개를 죽인 후 야생동물관리원에 의해 총에 맞아 죽었다. 늦가을에 이 암컷 늑대는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작정한다. 녀석 또한 서부로 향했으며 스네이크 강을 건너기까지 아직 다른 늑대와 짝을 짓지 않은 상태였다. 

흑색 수컷 늑대와 B300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2006년 아니면 2007년 12월 경 처음으로 짝짖기를 한다. 둘이 정착한 곳은 왈로와 산지의 높은 고목이었는데 소나무와 야생꽃과 소 분비물이 Joseph and Enterprise 농경 커뮤니티 주변에 구불구불 울타리를 치고 있는 곳이었다. 녀석들은 쓰러진 거대한 소나무 고목에서 눈도 제대로 못 뜨는 가녀린 1세대 새끼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모두는 오레곤에서 60년 만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늑대무리를 형성했다. 
   
이 흑색 늑대와 B300의 선례가 되는 늑대 몇 마리들이 이미 오레곤에 있었을지 모르나 무리의 기초에서부터 번식에 이르기까지 근본을 완성한 이들은 녀석들이 처음이다. 1991년에 수컷늑대 한 마리가 발견되긴 했지만 늑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 어리둥절했던 나머지 주정부 관리원들은 녀석을 잡아다가 우리에 집어넣어 아이다호로 도로 보내버렸다. 당시 늑대를 쫓아내는 것이 답은 아닐 거란 것은 알고 있었다. 늑대들은 회귀하게 마련이다.   

결국 오레곤 주 해양생물 및 야생동물 관리부(ODFW)는 야생동물 관리자이자 라 그란데 지역인인 생물학자 러스 모건을 고용해 늑대이방인들을 다루기로 했다. 검은 늑대 녀석이 새끼들을 부양하느라 왈로와 산에서 엘크사냥에 열중일 때 모건은 녀석들을 찾아 암흑속에서 하울링을 흉내내며 동부의 오레곤 밤길을 운전하고 다녔다. 

모건은 54세로 야생동물 추적자이자 사냥꾼이며 진심을 다하는 직업인이었다. 그는 Bend 지역  외곽에서 비비건으로 도마뱀을 쫓아다니며 자랐다. 그가 나고 자란 생태계는 중부 오레곤 고지대 사막의 향나무와 샐비지풀이 자라는, 자연의 방법을 배우기에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루 종일 숲을 돌아다니다가 향나무로 뒤덮힌 채 저녁을 먹으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모건에게 사냥은 살상이나 승리가 아니라 자연의 재화이자 수고였다. 그에게 사냥은 스포츠가 아니었다. 숲으로 갈 때는 상당한 배려와 집중과 침묵이 같이한다. 그는 보통 긴 화살로 엘크를 사냥하며 화살은 직접 만든다.   

오레곤은 한명의 늑대 추적자에게는 광활한 지역이었다. 모건이 늑대 무리들을 따라잡았을 무렵 늑대들은 이미 두 번째 라운드의 번식을 마친 상태였다. 새끼가 나면 한 달 정도 굴에 두는데 처음에 나약하기 짝이 없고 미숙해 보이다가도 금방 대담해지고 장난이 심해진다. 엄마늑대는 바짝 붙어 새끼들을 보살피고 서식처의 청결을 위해 새끼들이 바깥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의 똥오줌을 먹어치운다. 그동안 아빠늑대가 엄마늑대를 먹여 살린다. 암수부모는 사냥에서 돌아오면 뱃속에 있던 뜨끈하고 걸죽한 고기를 게워내어 새끼들을 먹이는데 생물학자들은 이것을 ‘반추형 먹이공급’이라고 한다.

세 달이 지나면 새끼 늑대들은 부모와 형제들에게서 사냥의 기본을 익힐 준비를 한다. 9개월이면 가장 모험심이 강한 놈들은 떠날 채비를 한다. 다른 녀석들은 최대 4-5년까지 가족과 지내며 독립하기 전까지 무리의 사냥을 돕거나 어린 새끼형제들을 돌본다. 본질적으로 늑대무리들은 한 가족이다. 거기에는 삼촌, 고모, 이모, 조부모 등 몇 세대에 걸친 후손들이 혼합되어 있다.  

2009년에 해양생물 현장답사팀이 모건에게 늑대의 짖는 소리와 하울링 기록을 담은 휴대폰 녹음을 보내왔다. 모건은 늑대소리를 인지하고 현장으로 가서 무리들의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곧 흑색 암컷을 잡아 VHF 라디오 트랜스미터를 장착할 수 있었다. 아이다호의 B300은 오레곤의 OR2가 되었다. 모건은 트럭에 편안히 앉아 왈로와 지역을 운전하며 무리들을 모니터할 수 있었다.      

암컷 OR2에서 2는 오레곤에서 두번째로 추적기를 단 늑대라는 의미이다. 몇 달 앞서 OR1이었던 수컷늑대는 베이커 동부 지역에서 추적장치를 달고 있었는데 형제늑대로 보이는 동반자와 같이 다녔다. 추척장치에 붙어 있던 소음기 같은 사냥방해기기가 작동하지 않게 되자 두 마리는 농장가축들을 살상하기 시작했고 한 밤에 최소 20마리의 양을 죽이는 바람에 야생동물 관리부측이 제거해야만 했었다.

이 시점에서 늑대 사냥은 전적으로 해당 대행사가 결정권을 가진다. 모건은 ODFW 문서에 의거해 늑대 보전 및 관리 계획팀에 연락을 취했다. 뗏목이 있고 등산객들이 있는 강가며 가축, 목재, 암벽등반가들이 있는 경관에서, 돌아온 야생의 상징물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풀어낸 관청 청사진에 근거한 행동이었다. 

암컷 OR2가 닉네임과 추적기를 달고 약 한 달이 지나서 녀석은 예의 검은 수컷 늑대 그리고 새끼들과 함께 Hells 계곡에서 12킬로 떨어진 Grouse 강에 반쯤 잠겨 있는 엘크의 시체를 뜯고 있었다. 이 강은 오레곤과 아이다호를 가르는 꽤 깊은 강이다. 늑대들은 고지에서 지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고 모건은 이런 녀석들을 ‘능선 보행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녀석들의 길고 지루한 추격은 남쪽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어서 많은 먹잇감들이 계곡 아래에서 축축하고 지칠대로 지친 상태로 운명을 맞이한다.   

모건과 친구 한 명은 강 아래로 내려갔고 모건 왈 ‘늑대무리의 완전해체’라고 하는 장관을 목격하게 되었다. 암컷늑대와 새끼들은 피신했으나 큰 수컷늑대는 엘크시체에서 30미터 안 되는 곳에 멈춰 고개를 돌려 사나이들을 응시했고 하울링하고 짖고 으르릉댔다. 녀석은 젊음의 전성기에서 별 한 점 없는 밤하늘같이 새까맣게 있었다. 

“빛이 났죠." 모건은 상기한다. “얼마나 소리가 크던지 제가 생각하는 걸 들을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모건은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몇 장 찍었고 늑대는 사라졌다.

인간과 늑대는 몇 번 조우하곤 했었다. 모건은 때로 새끼 수를 세고 마취총을 가지고 녀석을 좇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총탄을 싣고 다니기도 했다. 7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같이 회색빛으로 늙어갔다. 

2010년 2월 처음으로 조우한 뒤 6개월이 지나 흑색 수컷늑대녀석은 추적기와 닉네임을 얻게 되었다. 모건은 암컷 OR2의 신호를 이용해 헬리콥터로 늑대무리를 추적했다. 일전의 엘크사체 현장에서 몇 킬로 떨어져 있는, Grouse 강 하류의 Road 계곡의 바위투성이 협곡 사이를 따라다니다가 만난 예닐곱 마리의 다 자란 늑대 성체들 사이에서 모건은 알파수컷을 골라내야 했었다. 암컷 OR2를 찾기는 쉬웠다. 암컷 가까이에서 나란히 다니는 하나가 있었는데 그 녀석이 알파늑대임을 알 수 있었다. 

늑대들은 굉장히 빠르다. 시간 당 60여 킬로를 달릴 수 있으며 우사인 볼트보다 열 배 빠르다. 모건이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알파늑대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마취총을 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동안 헬리곱터 조종사도 녀석들을 따라잡느라 애를 썼다. 갑자기 그 큰 검은 늑대는 덤불을 가로지르며 공중제비를 굴렸다. 녀석은 우연히 몸뒷면이 가려진 상태에서 자세를 바로 잡고는 앉아서 짖기 시작했고 헬리곱터에 대고 하울링을 했다. 

“몸이 뒤집어질 때 헬리곱터 날개바람이 녀석의 털을 쓸어내리는 것을 봤죠.” 모건은 말했다. “녀석은 절망적이었습니다. 추격당할 때면 매우 절망적이 되곤 합니다.” 마침내 늑대는 일어났고 모건은 한 방을 쏘았다. 마취총에 맞고 몸이 느슨해진 채 녀석은 눈 속에서 잠이 들었다. 지형이 너무 가팔라 조종사는 헬기를 계곡에 낮게 낮추었고 모건이 장비를 들고 뛰어 내렸다. 헬기가 이륙했고 모건은 의식을 잃은 알파늑대와 조우의 순간을 맞았다. 무게는 52킬로그램으로 오레곤 기록상 가장 큰 늑대였다. 모건은 샘플혈액을 채취했고 태그와 추적기도 달았다. 검은 야생늑대는 공식적으로 OR4로 명명되었다. DNA가 채집된 야생동물이 된 것이다.

OR2는 이 모든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암컷은 모건이 작업하는 동안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쉴새없이 하울링을 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왈로와 계곡은 한 때 the Wallowa band of the Nez Perce의 고향이었고 두 주요 공동체 중 하나는 Joseph였으며 이 이름은 추장 Joseph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도시에는 추장 Joseph의 동상이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딴 로데오도 있고 후손들은 워싱턴 주의 동부에 있는 콜빌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 11개의 다른 부족들과 정착해 살고 있다. 그들은 1877년에 미군에 의해 강제 이송되었고 대신 백인들이 들어와 가축을 길렀다.  

“우리는 사슴이었고 그들은 회색곰 같았다.” 추장 Joseph가 자서전에 남긴 말이다. “우리는 작은 나라를 이루고 살았고 그들의 나라는 거대했다. 우리는 the Great Spirit Chief의 뜻대로 모든 것을 보존하며 만족하고 살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아서 산과 강을 이치에 맞지 않게 바꾸었다."

백인들은 도로, 광산 및 제분 공장을 건설했다. 그들은 임대된 연방토지를 방목용으로 분배했다. 오늘날 Wallowa 카운티의 1/4은 농업이나 토목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관련작업의 대부분은 가축을 기르고 건초를 만드는 일이다. 20세기 초반 수십 년 동안 목축업자들은 회색곰과 늑대를 뿌리 뽑아 가축의 땅을 안전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알려진 회색곰은 1938년 서쪽 Wallowa 산에서 발견되었다. 1947년에는 늑대 현상금이 오레곤에서 마지막으로 지급되었다.

60년은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다. 왈로와 카운티의 평균 목축업자의 나이이다. 그렇지만 200년이 걸렸다면 돌아온 늑대들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지금은 겨우 두 세대가 지났을 뿐이다. 늑대학살자들의 자녀와 손자들에게 늑대의 재입성은 모욕일 수 있다. 그들에게 늑대는 그들의 전통이 잘못된 것이며 늑대를 몰아낸 것이 실수라고 말하는 것이 된다. 

OR4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목축커뮤니티의 반목의 편에 놓여 있었다. 그 지역 Imnaha강의 이름을 따 Imnaha무리라고 명명된 이 늑대그룹이 가축뼈를 쌓아 놓고 사는 인간 근처로 접근한 것이 도움이 됐을 리는 만무하다. 
 
목축업자들은 가축뼈나 시체를 쌓아놓고 산다. 땅에 묻으려면 중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0년에 Imnaha 늑대무리들이 이 근처를 배회하며 다리뼈를 물어 뜯고 아늑한 공기에서 부패해가는 동물사체를 거나하게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들에게 평화로이 안주하고 사는 소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엘크를 좇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덜 위험하고 먹이의 발길질에 턱이나 갈비뼈가 나갈 염려도 덜한 것들이었다.

OR4와 OR2는 2010년 4월에 세 번째 라운드로 추정되는 번식의 시기를 거쳤다. 적어도 네 번은 거쳤을 것이다. 새 생명들은 대략 8마리에 이르는, 성체가 되어 활발하게 사냥을 하는 다른 형제늑대들과 합류했다. 무리는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옐로우스톤 지역의 자료에 의하면 늑대 한 마리는 겨울이면 한 달에 평균 두 마리의 엘크를 사냥한다. 두 세마리의 늑대들이 협동해서 엘크 하나를 죽인다. 늑대의 이빨은 상당히 둔해서 보통 대량출혈을 유도해 살상을 한다. 쿠거는 먹이를 강하게 물어 목을 순간적으로 부러뜨리거나 목동맥을 끊어 죽이지만 늑대는 먹이가 쓰러질 때까지 추격하여 죽을 때까지 턱힘으로 공격한다.   

엘크가 쓰러지면 물었던 걸 풀고 맨처음 심장, 허파, 간, 창자, 지라, 콩팥을 먹는다. 그리고나서 본격적으로 다리살코기를 뜯는다. 늑대 한 마리는 하루에 최소 대략 3킬로그램의 먹이를 소비한다. 따라서 규모가 좀 있는 무리들은 엘크를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죽여야 한다.

이러한 소비는 고통을 수반한다. 2010년 봄 어느날 인생의 전성기에 있던 OR4는 서식처에서 53킬로 떨어져 있는 곳에서 엘크를 사냥하고 6시간을 달려 새끼들을 위해 뱃속을 가득 채운 고기를 게워냈다. 즉 중간에 격렬하게 엘크를 사냥한 것은 물론, 거친 야생길을 왕복 106킬로미터나 달렸다는 이야기다.

봄과 여름, 눈은 이미 녹고 엘크가 언덕을 떠나버린 계절에 늑대는 식단을 다양화해 사슴이나 쥐 또는 다른 먹을만한 것들을 먹기 시작한다. 계곡 아래 거부하기 힘든 가축뼈들을 제외하면 선택지가 부족하다. 초봄이면 새끼들은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고 먹잇감의 대부분은 저지대의 평원에서 발견되는데 거기엔 소들이 풀을 뜯는다. 늑대무리는 2010년 5월에 송아지 한 마리를 처음으로 죽였다. 오월 말에 다섯 마리를 더 죽였다.

ODFW가 지역 목축업자들에게 현장에서 발견된 가축살상 야생동물에 대한 총격을 허락하고 미 농업부의 야생동물 서비스센터에 연락해 해로운 짐승이나 문제의 포획자들을 살상하도록 조처했던 시기와 맞물려 늑대무리는 전략을 바꿔 산속으로 후퇴했다. 한동안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OR4의 추적장치신호가 죽었다. 눈도 한 차례 왔다 갔다. 더 많은 새끼늑대가 태어났다. 

이듬해 2011년 5월, 15마리로 불어난 늑대무리는 다시 송아지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ODFW는 OR4가 먹여 살려야 하는 새끼들 중 두 마리를 죽이기로 결정했다. 직원들이 덫을 놓고 총을 가지고 사냥을 하러 갔다. OR4의 새끼 중 수컷새끼는 덫에 걸려 죽었고 암컷새끼 하나는 총에 맞아 죽었다. 

이즈음 모건은 OR4만의 특이한 발자국을 알아보았다. 녀석의 왼쪽 뒷발에는 부러진 발톱이 90도 각도로 튀어 나와 있었다. 모건은 이 발자국을 발견하고 바로 위에 덫을 놓았다. 예상한대로 OR4가 잡혔다. 주요번식체였기 때문에 생포를 하였고 모건은 수면침으로 녀석을 기절시켜 GPS가 장착된 추적기를 달았다. 오레곤 주는 OR4의 거취를 하루에 네 번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 5년 동안 ODFW는 녀석이 100미터 반경범위로 정확하게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OR4가 추적기에 무리한 힘을 가할 때면 소식이 끊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아마 사냥 중 바위나 나무에 추척기를 강하게 부딪쳤다거나 엘크의 뒷발에 목을 차이거나 했을 것이다. 어떤 때는 추적기가 한달도 안 가는 경우도 있었다. 

서부지역에 걸친 목축업자들의 원성을 가라앉히기 위해 야생동물보호단체들은 1987년에 재단을 세워 가축을 야생동물에 희생당한 농장주들에 보상금을 지급했으나 주정부의 대행사가 가축살상이 야생동물에 의한 것임을 인정할 때만 보상금 지급이 가능했다. 나중에 오레곤 주가 직접 나서 재단을 설립했다. 

모건은 이 시스템에 합류되었다. 그는 농장주가 그의 조사결과물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후 야생약탈 현장조사에 대한 공식보고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OR4의 파일은 점점 더 두꺼워져 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업량이 너무 많아지면서 Morgan은 고급 데이터 분석에 열정을 지닌 조직적이고 능력있는 현장 생물학자인 Roblyn Brown을 인력으로 썼다. 그녀는 늑대 코디네이터로 그의 후임자가 되었다.

때로 모건이 현장에 불려나가 조사했던 가축학살은 사건이 오래된 경우였다. 특히 살상당한 동물이 공공방목지대에서 풀을 뜯고 있는 경우가 그랬다. 한 보고서는 “가축사체 대부분은 늑대나, 곰, 코요테 등에 의해 먹힌 것으로 보이며 사체에는 주로 뼈와 큰 가죽조각이 있었고 근육은 머리와 목, 다리 하체에만 남아 있었다”라고 보고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살상된 가축이 아직 신선한 상태였으며 증거는 명명백백했다. 2012년 12월 아침, 한 농장주가 모건이 건네 주었던 추적기리시버의 경고음을 듣고 그에게 알려주었는데 OR4추적기를 들여다 볼 필요도 없었다. 그는 늑대들이 하울링하는 소리를 들었고 죽은 암소 한 마리를 발견했으며 시체는 아직도 따뜻했다. 녀석은 당하기 전에 반 마일을 도망갔다. 피와 반추물이 흘러 나와있었고 풀, 털뭉치, 근육에 핏자국이 있었으며 풀과 땅이 파헤쳐져 있었다고 모건은 기록했다. 늑대의 소행이라고 결론내렸다. 

어떤 경우는 모호했다. 2011년 9월의 사건에서 동물사체는 거의 손 댄 흔적이 없었고 뼈가 부러졌다든지와 같은 손상의 흔적이 없었다. 수많은 구더기가 현장에 있었고 코요테가 뒤진 것 같은 정황이 사체의 오늘쪽 머리와 둔부에 눈에 띄였다. 포획자의 공격으로 보이는 증거는 없었다. 그 소의 죽음은 사인이 규명되지 않았지만 포획자의 공격도 원인이 아니었다.

모건이 조사한 내용이 무엇이었든 그리고 늑대소탕이 가축수명에 끼치는 영향이 아주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농장주들의 분노는 가시지 않았고 이는 늑대들에 타격을 입혔다. 모건은 현재는 아내가 된 야생동물 비상 코디네이터였던 데이나와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화살을 만들고, 잠을 청하고 다음날 아침 작업장으로 향하는 내내 한 마디 말도 않곤 했었다.

모건은 야생동물의 가축약탈행위를 단순히 조사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다방면의 예방책을 모색했다. 농장주들에게 OR4 위치신호를 수신받을 수 있는 경고시스템을 설치해서 가축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원격측정기를 가지고 계곡의 언덕에서 밤낮으로 상주하며 늑대들을 계곡쪽으로 쫓아냈다. 2010년에는 쌓아놓은 가축뼈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해 오늘날 왈로와 카운티매립지에서는 가축사체를 무상으로 묻어준다. 

 
 
 

"Somewhere unwritten poems wait, like lonely lakes not seen by an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