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아래 기술 중에 CPU=마이크로프로세서라고 보면 되고 기술적인 부분은 축약적으로 쓰느라 일부 어긋난 부분도 있겠지만 굳이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회색으로 마킹을 했다.


1. 만일, 당시 모토롤라의 한 영업사원이, 당시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던, 'MC68000 CPU의 데이터북과 CPU 샘플을 가져다 달라'라는 IBM사의 엔지니어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면 오늘 날, 우리가 쓰고 있는 개인용 컴퓨터에는 'Intel inside'가 아니라 'Motorola Inside'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모토롤라가 저렇게 힘없이 해체되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모토롤라가 해체되는 것을 넘어, 당시에는 반도체 회사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회사였던, 최초로 i4004라는 4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CPU의 축약형)를 발표하고 힛트를 쳤으나 다음 시장인 8비트 시장에서 i8080 및 i8085의 상대적 선전에도 불구하고 인텔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나가 새로 설립한 자이로그사에서 발표한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황제인 Z80 때문에 매출이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야심적으로 만들었던 32비트 CPU가 시장에서 참패했으나 인텔사에서도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16비트 프로세서인 i8086이 IBM-PC에 탑재되지 않았다면, 인텔이라는 반도체 회사는 아마도 반도체 역사에서 한페이지를 장식하는 회사로 그 종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당시 인텔이 EPROM 등의 메모리 장치에서 넘사벽 매출을 하고 있고 한 때는 플래시 메모리에 강자였으니 딱히 망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모토롤라의 그 영업사원에 대한 일화는 그 영업사원이 '약속을 깜박 잊고 안 갔다 주었다'라는 썰과 우리나라로 치면 삼성 중앙연구소도 아닌 지방의 공장에 있는 연구소에서의 요구였기 때문에 '그 요구를 묵살했다'는 썰 두가지로 나뉘어져 주장되는데 내 생각에는 '묵살을 했다'라는 점에 더 무게를 둔다. 당시 IBM은 Bread Board 타입의 CPU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중대형 컴퓨터에 탑재하였고 Personal Computer 시장이라고는 Apple사의 Apple Classic이 전부였던 시절이었으니 IBM에서의 16비트 CPU 샘플 요구는 모토롤라 영업사원에게는 말 그대로 '엔지니어가 뭔가 테스트 용으로 만들려는 것'이고 그래서 양산과는 관계없을 것이며 자신의 판매실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 판단했을테니까.


이 이야기는 8,90년대에 한국 엔지니어에게는 필독 잡지였던 일본의 トランジスタ技術 잡지(이 잡지의 모양은 여기를 클릭)에서 언급되었던 내용으로 이 잡지에서 매달 특집으로 연재되는 내용은 2~3개월 후면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잡지에서 실렸는데 특집 이외에 읽을거리가 많아 매달 정기구독을 했던 잡지였다.


모토롤라 영업사원이 '약속을 잊었던' 아니면 '요구를 묵살했던' 관계없이 당시 이 トランジスタ技術에서는 몇개월에 걸쳐 MC68000과 i8086(Intel의 16비트 CPU. 실제 최초의 데스트탑에는 가격의 문제 때문에 내부는 16비트로 돌아가지만 외부의 버스는 8비트인 i8088이 탑재되었다)의 아키텍처에 대한 토론이 연재되었다.


당시 MC68000은 아직도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산업용 VME BUS에서 맹위를 떨쳤었고 (아마)그 수요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낯설디 낯선 PC 시장은 쳐다보지도 않았겠지만 당시 학생의 신분으로 VME BUS로 프로젝트를 한두번, 그리고 IBM-PC Add-In-Card를 만들고 그 S/W를 작성했던 내 입장에서는 '둘다 불만족'이었다. 그 이유는 MC68000은 입출력 장치를 만들기 위하여 별도의 Decoder H/W를 설계해야 했는데 입출력 장치의 주소가 메모리 장치의 주소와 동일 공간에서 배치되기 때문에 성가신 일로 대두된 반면 i8086은 메모리를 페이지 단위로 관리하는데 이 페이지를 바꾸는 부분에서 종종 심각한 오류를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뭐, 이 페이지 개념이야 C언어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Compiler가 다 알아서 해주지만 당시에는 C 언어는 세상에 없고 C 언어의 proto type인 B 언어가 막 선을 보였던 시대이고 Assembler 언어 이외에 High Level Language라고는 cobol이나 pascal 정도가 전부인데 H/W를 콘트롤하는게 만만치 않아서 Assembler 언어로 작성하니 일일히 페이지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콘트롤 해줘야 한다)


당시 トランジスタ技術에서의 토론은 MC68000 우세. 'i8086이 낫다'라고 주장하는 진영은 'i8086의 페이지 개념이 소프트웨어 공학이 발전하면 오히려 더 유리한 입장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 토론은 지금 생각해보면 hardware-oriented 사고방식을 가졌던 일본 엔지니어들, 그래서 전자산업에서 software-oriented된 미국에 번번히 참패했던, 그런 일본의 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된 그런 토론이었다. (뭐, 한국은 한 때 하드웨어도 제대로 못했으니까...)


기술적 부분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게 아니니까 각설하고,


만일, 당시에 모토롤라 영업사원이 IBM사 엔지니어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IT의 역사는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토롤라가 저렇게 패망하여 해체되는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산업의 역사야 비일비재하니 이제는 이야기감도 안되겠지만 내가 모토롤라를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대한민국 정부에서 매년(중소기업청) 또는 5~10년 주기로 발표(어딘지 조직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하는 기술 로드맵(technology load map)의 원조였기 때문이다. 1988년(으로 기억한다) 새로운 개념의 문서를 하나 받았다. 바로 모토롤라가 작성한 기술로드맵이다. 나름 대외비였기 때문에 상세는 생략되었지만 모토롤라의 기술 로드맵에 기술된 '앞으로 모토롤라는 이렇게 기술을 발전시키고 구현할 것이다'라는 문서를 보고 한 엔지니어로서 심장이 쿵쾅 뛰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2. 이 기술 로드맵을 처음 발표한 모토롤라

그리고 기술로드맵은 미국의 유수회사에서 채택이 되어 선택과 집중을 명료하게 하고 그 결과 비용은 줄이고 매출은 늘어나게 했으며 무엇보다도 소속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가 크게 향상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그런데 이 기술로드맵에 충실했으면서도 패망한 회사가 있으며 (겉으로 보기에는)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파악 못하여 패망한 회사이 있다. 그리고 도대체 왜 패망했는지 이해가 안되는 회사.


전자의 대표적인 회사는 코닥사. 그리고 두번쨰의 대표적인 회사는 최근에 워크아웃을 신청한 레고를 만드는 레고사. 그리고 마지막 회사는 기술 로드맵을 만든 모토롤라의 몰락.



내가 가입한 각종 헤드헌터 기업들에서는 주기적으로 연구소장급의 직원 채용 소식을 알려온다. 그리고 보름에 한번 정도 나는 한국의 종합 취업 사이트인 work..go.kr에 가서 어느 직종의 엔지니어들을 많이 뽑는지 그 추세를 살펴본다. (참조로 work.,go.kr에는 jobkorea.com, incruit..com, saramin.co.kr 등 한국의 대표적인 취업정보사이트의 직원 채용을 종합적으로 제공한다. 혹시 취업을 하실 분은 번잡하게 여기저기 사이트를 가지 마시고 work.go.kr로 가보시기를 권장드린다 ^^)


연구소장과 엔지니어 채용의 추세를 보면 현재 산업현장의 추세가 그대로 반영이 된다. 특히 연구소장 채용 공고에는 중소기업청에서 새해 벽두에 발표하는 기술로드맵과 싱크가 제법 일치한다. 기술로드맵은 그 특성 상, 앞으로 시장에서 대세가 될 기술요소들을 발표하는 것이고 (들은 바에 의하면) 중소기업청에서 발표하는 기술로드맵이 향후 2~3년 안에 시장에서 상품의 대세가 될 가능성이 70% 이상이라고 하니 기술로드맵은 단순히 paper working 수준이 아닌, 한국 아니 세계 시장의 향후 시장의 판도를 가름할 수 있다는 것이고 연구소장급 채용 소식의 높은 싱크로율은 그 기술 로드맵이 한국의 석학들이 고심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기술로드맵을 만들어 낸 모토롤라의 몰락은 (아마도) 경직성

전술한 것처럼 모토롤라가 왜 몰락을 했는지는 나조차도 이해불가이지만 하나 추론할 수 있는 것은 핸드폰이 대세로 떠올려지던 시대에 이리듐 산업을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삼성이 도끼처럼 생겨서 싸움을 할 때 유력한 무기로 사용할만큼 덩치크고 볼품없던 핸드폰을 개발할 당시 모토롤라는 외이셔츠 주머니에 쏙 들어갈만한 크기의 핸드폰을 만들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 모토롤라가 아리듐 산업을 포기하고 핸드폰 산업에 주력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들은 그들의 기술로드맵에 있었던 이리듐 산업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도 당시 모바일 통신(핸드폰)에서 원천기술들을 다수 보유했던 모토롤라의 자존심이 이리듐 산업의 포기를 쉽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NO. 1'이라는 자존심에서 어쩌면 미래의 패망의 단초가 될 수 있는 것을 수정하지 않고 밀어부친 결과가 모토롤라의 몰락의 이유일 것이라는 이야기다.



4. 경영자가 무시했던 코닥의 기술 로드맵

코닥의 몰락은 경영자가 코닥사의 그 유수의 엔지니어가 만들어낸 디지탈 카메라 기술들을 상품화 시키지 않고 사장시켰다는데 있다. 따로 정의된 마케팅 용어가 있는데 기억은 나지 않고 '미래 기술과 현재 시장의 갭(gap)' 사이에서 경영자들은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고 코닥사의 경영진은 그 경향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코닥이 패망하고 워크아웃을 신청했을 때 일각에서는 '코닥이 보유한 특허기술만 팔아도 코닥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을 정도로 코닥의 디지탈 카메라 기술은 패망 당시에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술적 경쟁력은 코닥의 유수한 엔지니어들이 쌓아 올린 실적이었다. 그러나 경영진에서는 이런 기술들을 상품화시키는 것을 게을리 했다. 이미 필름 시장에서 일등을 오랜 기간 동안 유지한 코닥사의 경영진은 '불투명한 미래에 투자하느니 현실에 안주하겠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결국, 코닥의 몰락을 모토롤라의 몰락에 비유하자면, 'NO 1'의 자존심이 모토롤라를 패망에 이르게 했다면 코닥사는 'NO 1'에서 안주하겠다는 경영진이 패망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5. 자신의 장점이 무엇이었는지 몰랐던 레고사

레고사의 몰락은, 요즘 아이들이 긴 경기 시간에 질려 야구 관람이나 시청을 등한시하는 추세'처럼 아이들 역시 빠른 것을 선호하는 추세로 가며 따라서 '한가하게' 레고 블록을 쌓고 앉아 있지 않다는 것을 간과한 결과이다.


그런데 레고사의 경영진이 자신의 장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저렇게 허무하게 패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로 레고사의 장점은 정밀기계 가공 기술. 레고블록을 쌓다보면 그 구조에서 레고 블록끼리 오차가 거의 없이 '아구가 맞아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레고 블록 가공 기술은 왠만한 회사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기술이다. 기계 기술에 대하여는 상대적으로 문외한이지만, 만일 레고사의 경영진이 자신들이 오랫동안 경험으로 축적해 온 정밀 기계 가공 기술이 자신들의 장점이라는 것을 파악했다면 저렇게 허무하게 패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레고사의 내부 의사 결정 과정을 잘 알지 못하지만,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자신의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데는 상술한 'NO. 1 포기'를 주저한데 있지 싶다. 상기 두 회사와는 다르게 업태마저도 바꾸어야 할 자존심 상할 결정 앞에서 어쩌면 경영진은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레고사가 보유하고 있는 정밀기계 가공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PC공법(Precast Concrete)은 현대건축시장에서 주요한 기술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그들의 기술을 바탕으로 '왼쪽으로 세클릭 옮겼다'면 레고의 허망한 패망은 없었을 것이고 아마도 레고사는 현재보다 더 규모가 큰 회사로 발전했을지 모른다.


 
6. 한국 재벌들은?

산업 역사에서 유수기업들의 패망을 길게 이야기한 이유는 바로 한국 재벌에 대한 양태를 언급하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재벌에 대한 시각은 크게 두가지, 첫번째는 '무조건 재벌 찬양, 두번째는 '재벌에게는 닥치고 징벌적 조치가 내려져야 한다'로 나뉘어져 있다.


무조건 재벌 찬양의 극명한 예는 바로 전경련에서 주장한 '재벌은 해외에 진출하느라 기업 투명성을 국제 수준에 맞춘 반면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경영 상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텍스트 상으로는 맞다. 그런데 그 기업 투명성을 해외에서는 잘 발휘하는데 왜 대한민국 내부에서는 그 기업 투명성을 발휘를 못하는가? 그에 대한 비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조금만 생각하면 전경련의 주장이 얼마나 재벌친화적인 것인지 아니 재벌친화적인 것을 넘어 재발 아부적이어서 결국 재벌들을 내부에서 썩게 만드는 주장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그리고 '재벌에게는 닥치고 징벌적 조치가 내려져야 한다'라는 시각은 통계 상의 결과를 정권들에서 잘못 활용한 결과이다. 몇 번 통계 상으로 증명했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팽배한 이유는 바로 '재벌 총수들의 전횡 떄문'이다.


그렇다면, 재벌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교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바로 그 것은 투명성 제고이다. 그리고 그 투명성 제고는 바로 제도의 투명성이다. 법인세의 경우에만 보아도 한국의 법인세율은 미국 등에 비하여 턱없이 낮다. 실효세율을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사회의 기여도에 대한 부분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법인세가 낮다고 법인세를 올리는 것이 해답이 되지 않는다. 전경련 주장에 의하면(이 부분은 전경련 주장이 맞다) '세금 더 내겠다, 그러나 간접세 등 불투명한 부분의 조세를 투명하게 해달라'는 것이 일관된 주장이다. 그리고 이런 투명성에 대한 논란이 바로 최순실 사태로 이어졌으며 현재 문재인 정권에서도 이런 조세의 투명성 제고는 도외시하고 국민들의 재벌 총수에 대한 반감 여론을 이용한듯한 법인세 인상만이 정치 시장에 결과물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유수기업들의 패망 역사에서 보듯, 대한민국 대기업들은 그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행동을 하기도 전에 정치 시장에서 먼저 옥죄어 온다는 것이다. 정치가 기업에 대하여 할 일은 바로 투명성 제고와 시장경쟁의 공정성만 확보해 주면 된다. 혹자는 문재인 정권에 대하여 이런 심한 비난까지 해댄다.


"실력도 없는 것들이 감히 남을 가르치려 드니 웃기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런 투명성 제고에는 대기업 스스로 자초한 면도 있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법에 대하여 '공정거래법을 위반하여 얻는 이익이 위반하여 내는 벌금보다 크다, 따라서 공정거래법은 개뿔'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대기업들은 극심한 경쟁 시대에서 그들의 미래의 생존에 대하여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찬양으로 그들의 내부 의사결정 구조를 왜곡하게 만드는 것이나 징벌적 조치들로 여론을 달래는 짓은 대한민국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의 팽배한 대립되는 의견 속에서 한국의 대기업들은 다른 나라의 경쟁에서 핸디캡을 앉고 싸우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기업들이 좀더 경쟁력을 갖추는데는 딱 한가지만 있으면 된다. 바로 국가적 투명성 제고. 그들을 얼토당토 않게 비호하는 작태나 또는 비난은 대기업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장래를 위해 기술로드맵 만드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플 것이다. 한국 경제를 좀더 성숙하고 발전적인 미래를 내다보는데 필수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발전과 패망은 그들 스스로의 의사에 맡기면 되고 그들이 미래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바로 '국가 투명성 제고'일 것이다.


반칙은 반칙을 낳는다. 정권 차원에서 반칙을 한다면 기업들 역시 반칙으로 응대할 것이다. 그런 상호 간의 반칙의 악순환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핍박적인 환경을 초래할 것이며 이런 반칙의 악순환을 극소화시키는 것은 바로 제도의 투명성일 것이다.


그런데 아직 일년도 안지났지만, 문재인 정권의 양태는 이런 제도의 투명성 제고는 도외시하고 여론을 무마시키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기업들에게 필수적인 제도의 투명성 제고는 솔까말, 박근혜 정권보다 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