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이야기하리라. 영웅들의 이름과 가문을, 망망대해를 건너가는 그들의 항해와 그들이 방랑에서 얻은 모든 것을........
                                                             - 아폴로니우스

<아르고나우티카>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나 <아르고나우티카>는 황금양털신화의 최초본이 아니라 최종본에 가깝다. 황금양털의 이야기는 BC1000년경에 시작되어 BC250년경에 최종본이 만들어 졌고 중세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주되어 왔다.

   
      <용이 지키는 황금양털의 조각, 그런데 황금양털이 아니라 그냥 양같은데...^^;;>

이야기의 얼개는 간단하다. 정당한 왕권의 계승자인 이아손은 숙부 펠리아스(항상 삼촌이 문제다)에게 이올코스의 왕위를 물려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어익후 조카 왔구려. 얼른 왕위를 물려 주리다. 옛소. 여기 왕관이오.”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될 리 만무하다. 펠리아스는 왕위를 물려주되 조건이 있다고 말한다. 황금양털를 구해 오라는 것.



                         
                          <토르발센(Bertel Thorvaldsen)이 조각한 이아손>

이야손은 황금양털을 구하기 위해 탐험대를 조직하고 온 그리스의 영웅들이 이아손을 돕기위해 아르고호에 오른다. 처음에는 몇 안되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점차 불어나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50명, 최종본에 이르면 100여명으로 늘어난다. 그리스 신화의 인간영웅들은 대거 참여한 것이다. 그야말로 그리스신화의 드림팀이 꾸며진 셈이다. 누구나 알만한 인물들인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테세우스, 아스클레피오스등도 이 드림팀의 일원이다. 오디세우스는? 이 이야기의 시대 배경이 트로이전쟁 이전인지라 오디세우스의 아버지 라에르테스가 참여한다.                                      

이들은 여행지는 어디였을까? 황금양털은 콜키스에 있다. 콜키스는 오늘날 그루지야의 콜히다(Kolkhida)로 알려진 도시다. 그리스인들의 바다인 지중해를 건너가 이스탄불의 좁은 해협을 지나서 흑해를 가로질러야 도착하는 도시다.
 
                         
           <그리스 도자기에 그려진 이아손과 황금양털, 펠이아스왕에게 양털를 건네고 있다>


콜키스는 BC6세기경 그리스의 식민지로 편입된 곳이다. 처음 아르고호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BC1000년경에는 그리스인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세계의 끝이다. 아르고호의 신화는 이 세계의 끝을 찾아가는 모험담인 것이다.

       
      <드레이퍼가 그린 황금양털, 메데이아가 자신의 동생을 바다에 버리는 장면이다>

이야기는 어떻게 끝나냐고? 더할나위 없는 비극으로 끝맺는다. 이아손은 왕위를 차지하지 못한다. 황금양털은 손에 넣었지만 메데이아가 펠이아스를 잔인하게 죽였기 때문에 왕위에 오를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코린트로 망명한 이아손은 코린트의 왕 크레온의 딸과 결혼하려고 한다. 분노한 이아손의 아내이자 마녀의 신화적 원형인 메데이아는 크레온의 딸에게 옷을 선물하고 그 옷을 입은 그녀는 화염에 휩싸여 죽는다(혹은 독 때문에 죽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낳은 세명의 아이를 모두 죽이고 떠나간다. 이아손은 괴로움에 못이겨 자살한다(혹은 아르고호 아래에 망연자실해 있다가 배가 넘어져서 죽었다고도 한다).



2. 황금양털 기사단(Order of the Glden Fleece)

1613년, 그녀(제임스 1세의 딸 엘리자베스공주)의 신랑인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도 행렬에 참가하여, 가장 당당한 마차에 가면을 쓰고 올라탔다. 그는 이아손으로 가장하고, 황금양털을 찾기 위한 쉰 명의 승무원들과 함께 아르고선을 타고 있었다.
                                                                                        - 마크 헤드슬, 젤라토르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황금양털의 신화는 중세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특정계층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1430년 필리프는 황금양털기사단을 만든다. 신비주의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 단체야 말로 후대의 장미십자회의 모체가 되었거나 영향을 미친 단체라고 주장한다. 신비주의비밀결사의 계보를 보자면 황금양털기사단(그리고 이와 관련되어 있는 성당기사단)-장미십자회-프리메이슨의 계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세간에 떠도는 프리메이슨음모론과는 비슷하지도 않은 이야기다. 하이델베르크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 역시 장미십자회 단원이자 황금양털기사단의 단원이었다. 프리드리히5세는 장미십자회의 신비지식에 심취하여 하이델베르크를 17세기 신비주의지식의 중심지로 만든다.


   

<1517년경 카를로스 5세가 제작하여 제식에 사용한 황금양털단의 문장이 들어가 있는 목걸이, 현재도 기사단의 소유물이다>


황금양털기사단은 또 흔히 원탁의 기사단을 모방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더왕 신화의 마지막 부분인 성배탐색은 크리스티앵의 미완성작인 <페르스발(혹은 퍼시발)>에서 처음 등장한 후 전 유럽의 상상력을 사로잡게 된다. 그리고 가터기사단 및 성당기사단, 황금양털기사단 등의 비밀결사를 결성하는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 역사가들의 해석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된다. 원탁의 기사들은 성배탐색을 한다. 물론 이건 하나의 전설이자 문학이자 신화다. 그리고 이아손은 아르고호를 타고 아르고나우트들과 함께 양털을 찾는다.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물건을 찾는데 왜 부르고뉴의 황금양털기사단은 원탁의 기사단과 연관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걸까? 게다가 후대의 신비주의 결사와의 연관성이 있다는 주장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우리가 아는 시인 예이츠와 이름이 비슷한 근대의 역사학자이자 신비주의 연구가 예이츠교수(Frances A. Yates)역시 황금양털 기사단과 장미십자회의 연관성을 주장한 바가 있다(The Rosicrucian Enlightment, 1972). 이 모든 수수께기는 황금양털이 무엇인가, 혹은 당시사람들에게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는가를 알아야만 풀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