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 운전사'를 '마침내' 관람했다. 그 영화는 부채의식처럼 내 마음 속에 자리잡아 있었던 하나의 과제였다.

광주가 섬처럼 고립되었던, 그러나 해방구였던 1980년 5월 어느날, 이십대 초반이었던 나는 1979년에서 1980년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서울의 봄'을 군홧발로 짓밟은 전두환을 향한 분노에 치를 떨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봄을 완전히 잃어버릴까 염려스런 안타까움에 택시 운전사 김사복처럼 시위의 과격화 역시 일정 부분 비판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언론을 통해 '폭도 운운'하는 광주 '소식'을 듣게 되었고, 혼란스런 시국을 더욱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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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광주의 진실'에 눈을 뜨게 된 것은 김수환 추기경을 통해서 일 것이다. 물론 그 전 1970년대 중반부터 외삼촌 신부님으로부터 받아본 광주가톨릭신학대 발행 '신학전망'지를 통해 보다 진보적인 교계 움직임에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있었기에 언론조작에 휘둘리지 만은 않았다. 그 당시 내가 존경하던 교계 지도자가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광주대교구 윤공희 대주교였다. 하필 그 분이 속한 지역에서의 비극이었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고, 그 '광주의 진실'을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알아내려고 몸부림쳤었다. 거기에다 내가 오랜 시간 길벗처럼 깊이 사랑했던 CBS 기독교방송 보도기능조차 죽이는 언론탄압 사태까지 벌어져 비탄에 빠지고 격분하기도 했다. 이른바 동토의 왕국 전두환의 5공화국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장애로 인한 육체적 한계 때문에 조직적 활동은 엄두를 내지 못해 비록 '외로운 늑대'였었지만 군부독재정권을 향한 전의를 스스로 불태우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시국 관련 모임과 강연회에 휠체어를 몰면서 참여하면서 '외로운 늑대'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었다. 그 당시 결성된 부산민주화추진협의회와 서신을 주고 받으며 함께 하는 등 보폭을 넓혀나갔다. 당연히 '광주의 진실'에도 한걸음씩 가까이 다가갔다. 그 모든 '진실'은 아픔으로 내 가슴 속에 새겨졌다. 영화 속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동영상을 접한 것은 6월항쟁 이전 그 당시였을 것이다. 부산교구 주보 '가톨릭부산' 장대골에 시국 관련글들을 익명으로 싣기 시작한 것도 그 당시였다. 마지막으로 준비해 게재하려던 글이 '광주의 진실'을 다룬 것이었는데 하필 6월의 혼란 그 뜨거움 속에서 아마 장대골란이 사라지면서 실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 내용인즉, 광주 희생자들의 시신 암매장과 불법처리 의혹 관련된 것이었다. 그 당시 광주 학살의 희생자가 천 명은 넘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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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그날, 나는 부산가톨릭센터에 있었다. 위르겐 힌츠페터의 그 동영상을 보고 또 보고, 참상을 담은 전시회 사진들을 가슴에 담으며 저녁 6시 대행진 시작 종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부산가톨릭센터 소극장에서는 시국강연회가 열리고 있었지만, 강사도 관객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강연회장으로 최루가스 냄새가 순간순간 스며들고 있었던 까닭에 자극을 받아서였다. 시간이 되자 가톨릭센터 셔터가 내려지고 모두들 거리로 나섰다. 나 역시 휠체어를 굴리며 대청동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와 국제시장 쪽으로 달려갔다. 당시만해도 6.29.선언은 예상도 못했기에 군정종식을 위해 절대권력을 반드시 무너뜨리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그야말로 '죽을 각오'였다. 거기 '광주의 아픔'은 바로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독재 저항의 끄지지 않는 불꽃이었다. 하지만 이번 광화문광장 촛불시위를 비롯해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모든 혁명이 그러하듯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는 우리들의 가슴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기대감으로 신명나 있었다. 시위장소는 늘 해방구였다.

그 당시 내 일기장에도 적었지만, 광주항쟁의 의미는 군홧발로는 더 이상 민중을 꺾을 수 없다는 사실, 그 호된 맛을 권력에 확인시켜준 것이다. 그 후 문민정부에서 YS가 '하나회'를 해체시켰지만, 이미 군부 쿠데타는 사실상 1980년 이후 그 실현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물론 그 이후로도 권력은 얼굴을 달리하고서 민중 지배와 통제에 나섰지만, 또 그것은 슬프게도 늘상 성공하고 있지만, 그럴지라도 피플파워는 불가역적으로 증강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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