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님이 "박근혜 인기의 비결이 뭘까?" 이런 화두를 던지셨는데,

저도 그동안 막연하게나마 궁금해하던 터라 한번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제 결론은...

현재 대권가도에 접어든 후보들 가운데 제일 덜 미운 놈(년)이라는 겁니다.

박근혜도 만만찮은 팬덤이 있는 정치인인데, 가장 예쁜 놈이 아니라 가장 덜 미운 년이기 땜에 인기가 있다?

좀 이상한 발언 같지만 전 이게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 박근혜가 내세우는 정치적 가치, 지향점이란 건 영 애매모호 막연합니다.

뭘 하겠다는 건지 잘 알 수가 없죠. 시닉스 님이 지적하신, "그래도 나라를 가장 생각하는 정치인 같다"는 느낌이 실은 "내가 싫어하는 짓을 할 가능성이 가장 적은 정치인 같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의 막강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영남의 꼴통들의 지지를 생각해봐도 그렇습니다.

그 사람들이 과연 "박근혜가 이렇게저렇게 해줄 것이다"는 기대를 걸고서 박근혜를 지지하는 걸까요?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에 박근혜가 정권 잡으면 박정희 시대, 70년대 시스템, 유신체제로 돌아가기를 기대하는 걸까요? 저는 절대, 네버, 앱솔루트리... 아니라고 봅니다. 만일 박근혜가 정말 그런 시도를 한다면 아마 영남 사람들부터 나서서 박근혜 몰아내자고 그럴 겁니다.

이 사람들이 박근혜 좋아하는 이유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현실화한, 어찌 보자면 87년체제 당시부터 시작된 그 온갖 꼴불견(그 사람들 입장에서 봤을 때)을 가장 적게 보여줄 정치인이 박근혜일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의 약점이라며 문재인이나 한명숙이 물고 늘어지는 유신공주, 유신 퍼스트레이디, 정수장학회 등... 솔까말 한번 물어보죠. 저런 게 문제라는 생각은 다들 이성적으로는 하시겠지만, 저런 것들 때문에 박근혜가 정말 미워지던가요? 제가 이상한 건지 몰라도 저는 심정적으로 저런 것 때문에 박근혜가 미워지거나 별로 그러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방탕무도하게 논다거나 황음무도하다거나 눈꼴시려운 짓을 많이 한다면 그때는 심정적인 분노나 거부감으로 이어지겠지만, 박근혜가 그런 정도는 아니었죠. 그러면 그냥 이성적인 판단으로 '저건 옳은 재산이 아니다'는 정도에 머뭅니다. 이건 미워하는 게 아니에요. 이성적인 판단은 감정적인 재료가 있어야 불타오릅니다. 앞으로는 어쩔지 모르겠습니다만 박근혜는 아직 그런 감정적인 재료가 충분치 않다는 겁니다.

모든 정치인의 성공 비결이 '미움을 덜 받는 것'이라고까지 비약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정치인 특히 한 나라의 대권을 잡을 정도의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저런 요소에서 합격점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즉, 과락이면 안된다는 거죠.

노무현의 경우는 어떨까요? 노무현이야 워낙 팬덤이 강한 정치인이었으니, 미움을 덜 받은 덕에 성공한 게 아니라 사랑을 많이 받아서 성공한 것 아니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봐요. 노무현이야말로 미움을 덜 받아서 성공한 정치인의 전형에 가깝다고 봅니다.

노무현이 아무리 부산에서 낙선을 거듭하고 노사모가 수백 개 생겼다고 해도 저는 노무현은 실패할 가능성이 컸다고 봅니다. 그런 노무현을 결정적으로 '미움 덜 받는 정치인'으로 만든 것은 '국민의정부의 공과 과를 다 이어받겠다'는 발언이었다고 봅니다. 이회창처럼 무지무지하게 미운 놈이 있는데, 노무현은 그 미운놈을 막아주는 발언을 딱 한 겁니다. 노무현은 이 발언으로 '미운놈 이회창'보다 결정적으로 나은 후보가 됩니다. 그 지지의 핵심은 바로 '덜 미운 놈'이라는 판단입니다. 노무현이 뭘 잘해서가 아니라 미운놈보다 훨씬 나은 놈이기 때문에 그는 지지를 받은 겁니다. 바로 이 점에서 노무현의 발언 "호남이 나 좋아서 찍었나, 이회창 미워서 찍었지"는 진실의 일단을 보여줍니다. 실은, 그걸 알았으면 더 조심해야 할 새퀴가 더 깽판을 친 게 문제였지만 말입니다.

노빠들이 멍청하다는 것도 이 지점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실은 노무현이 성공한 게 '제일 미움을 덜 받은 포지션을 선택한 때문'인데, 이 허접한 시키들은 마치 노무현이 사랑을 많이 받아서 성공했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런 논리의 연장선에서 '노무현을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을 위하여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근, 그 사람들은 바로 자신들이라고 생각하구요. 이러니 노빠들은 도무지 희망이 없는 것이고, 점차 망하는 지점으로 가는 겁니다.

'덜 미운 놈' 공식은 사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등 선거로 당선된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에게 적용된다고 봅니다. 자세히 설명할 여유는 없습니다만. 이 공식은 그리고 왜 대한민국에서 하류층, 서민층이 오히려 새누리당 같은 보수세력을 더 지지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국가권력이 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새누리당은 대한민국에서 서민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들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최소한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퍼포먼스에 게으르지 않았어요. 국가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민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국가권력뿐이에요. 우리나라 서민들, 실제 사회문화적 그리고 제도적인 보호장치에서 가장 소외된 서민들에게 역설적으로 가장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권력은 바로 공권력, 국가권력입니다.

결론이 이리저러 오바하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암튼 급하게 쓰다보니 그렇다고 봐주시고...

암튼 박근혜는 자신을 미워할 사람들, 그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행보를 해왔습니다. 김대중과도 대화하고 사과의 표시도 하고 북한에도 가고 또 박정희로 상징되는 과거사에 대해 나름대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등이 다 거기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이런 퍼포먼스가 누구에게나 그냥 굽신거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은 다들 이해하실 겁니다.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고 판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만한 정치적 상징자산이 있어야 이것이 파괴력을 가집니다. 호남에서 그나마 박근혜 지지도가 높은, 아니 미워하는 정도가 낮은 것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을 갖춘 정치인은 현재로서는 일단 박근혜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한명숙이나 문재인이 아무리 유신공주니 수첩공주니 정수장학회니 공격해도 별 효과가 없을 겁니다. 그거, 오히려 박근혜의 방어력만 키워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