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을 근무한 회사에 사직서를 내는 순간부터 업무인계인수 및 남은 개발업무를 마무리하는 현재까지도 나의 마음 속을 지배하는 것은 '후련함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떨림'.


"다 늙어서, 그리고 생판 모르는 곳에 가서, 기술도 달려, 시장동향도 어두워, 인맥도 없는 곳에서 과연 나는 잘 할 수 있을까? 아니, 생존이나 할 수 있을까?"



제자리에 있으면 법으로 정해진 은퇴연령보다 더 오랜 기간을 근무할 수 있음에도 나는 '무모한 선택'을 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무모한 선택을 내가 사회생활하는 동안 두번 했었다.


첫번째는, 몫돈이 손에 쥐어지자 엔지니어링계를 은퇴하고 예술가가 되겠다면서 세상을 주유하던 시절. 그리고 그 시절의 끝은 '나의 능력으로는 예술가가 절대 될 수 없다'라는 결론이었다. 물론, 그 결론은, 예술가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검증이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보다 훨씬 짧은 기간이기 때문에 현실과의 타협이었겠지만 추호의 미련도 없었다.


무모한 선택이었음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나는 엔지니어링계에 복귀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하고 웃음이 나올 정도로 일말의 후회도 그리고 미련도 없다.



두번째는, 근무하던 직장에서 직무를 바꾸어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음에도 묵살 당했을 때 내가 했던 무모한 선택은 사직서 제출.


큰 조직에서의 나의 요구를 묵살한 것은 당연한 일. 맡고 있는 직무에서 엄청난(?) performance를 내고 있는 직원을 직무를 바꾸는 멍청한 짓을 하는 조직은 없으니까. 그리고 개인은 조직에서 소모품에 불과하니까.


그 상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직무를 바꾸어달라고 요구한 것은 나의 미래에 대한 생존전략. 맡고 있는 직무 때문에 연봉이나 인센티브 등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지만 그 직종은 아무리 낙관적으로 보아도 사양산업.


그래서 나는 당시 연봉에서 30%나 깍이는 굴욕을 견디면서 이직을 했다. 사실, 굴욕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 회사 사장이 선배여서 그나마 나를 봐준다고 입사허락을 한 것이니까. 30대 후반에, 동종 엔지니어링 경력이 없는 엔지니어를 입사시키는 것은 조직에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되니까.


지금은 보편화된 기술이지만 당시에는 첨단업종이어서 엔지니어들의 평균연령이 낮았고 그래서 나보다 나이 어린 연구소장과 수석연구원을 상사로 모시면서 인고의 시절을 보내야 했다. 


와신상담의 고사에서, 자신에게 적대적인 부차 앞에서 구천이 목숨을 구걸하기 위하여 부차의 똥을 먹는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면.......... 아마 나는 견디지 못하고 퇴사를 했을 것이다. 폼생폼사는 나의 인생관 중 하나니까. 그런데 나에게는 아주 다행히도 연구소장과 수석연구원은 나를 위하여 업무 상으로 많은 배려를 했다.


나보다 훨씬 더 어린 연구원들에게 내가 얕잡아보이지 않도록 하는 배려는 물론, 내가 업무를 감당할 수 있게 개발업무의 난이도를 아주 쉬운 것부터 천천히 높여갔다. 연구소장과 수석연구원은 나의 '기술의 속성'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나의 '인생관의 일부'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전통적인 성악설 신봉자였는데 성선설 신봉자로 바뀌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후에 몇 번 '뒤통수를 세게 맞은 적이 있는데도' 나는 성선설 신봉을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도 나는 성선설을 견지한다. 아마, 다른 성격의 연구소장이나 수석연구원을 상사로 모셨다면 나는 지금도 성악설을 견지하고 있었겠지.



어쨌든, 당시의 그 무모한 도전은 성공적이어서 지금까지도 내가 엔지니어로서 밥을 먹고 있을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이 두번의 무모한 선택을 할 때는 어떤 떨림도 없었다. 후회는 커녕 미련도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사양직종이라고 판단했던 그 직종은 지금 화려하게 부활했고 그래서 당시 대기업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을 때 그에 응했더라면, 승승장구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그 때의 무모한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이번에 내가 한 '무모한 선택'은 미래에 나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킬까? 그런 생각을 하면 '떨림'이 멈춰지지 않는다. 지금 근무하는 회사에 있었다면, 특별히 산업계가 요동치지 않는다면, 법정 근무 연령을 넘어서도 근무할 수 있고 이런 상황은 아무나 가지는 혜택(?)이 아니니까. 반면에 '무모한 선택'의 결과, 나는 무일푼의 실업자가 되고 그 결과, 국민연금 수령 연령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늙기는 늙었는 모양이다. 성공할 가능성은 많다. 이미 그 가능성을 실재시켜 주었으니까. 그동안 생각했던 아이디어들이 프로젝트화 되거나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반영이 되었으니까. 공부도 순조로운거 같다. 새로운 것을 공부하는데는 남다른 소질이 있으니까. 그럼에도 떨림이 멈추지 않는 것은 아마 나이 탓일 것이다. 어쩌면 먹은 떡그릇 수에 비례되는 자존심의 크기, 그래서 꼰대라고 불리우게 되는, 그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떨릴지도.


"나이 처먹어서 이게 뭔 망신?"


운동이나 가자. 운동할 때만큼은 잡념이 사라지니까.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