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이 글의 후편으로 계획했던 글인데, 주제를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내려 제목을 바꿨다.

앞선 글에서 친노들이 호남의 정치 성향을 지역주의로 라벨링하면서 어떻게 악질적으로 이용해먹고 있는지를 설명드렸고, 이번에는 호남의 몰표를 지역주의라고 부르는게 정말 맞는건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선 이 글은 김대중노선과 마르크스주의의 일부를 동시에 긍정하는, 그러니까 김대중노선을 한국 사회의 가장 올바른 정치 노선으로, 마르크스를 사회 분석의 도구로 삼는 소위 '닝구 좌파'의 시각으로 쓰인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를 부정하는 분들에게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는 분석일 수도 있다. 그러니 관심없는 분들은 패스.

어떤 사회에 대한 자본의 지배는 매우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그 모습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대부분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숨어있고, 미처 느끼지도 못하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가령 믿어지지는 않겠지만 등교를 위해 어린 학생의 아침잠을 깨우는 어머니의 따스하고 자상한 손길속에도, 무자비하고 냉정한 자본의 지배는 숨어 있다. 사시사철 정해진 시간에 의무적으로 잠에서 깨어나 종일토록 노동이든 뭐든 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어릴 때부터 훈련시키고 육체를 적응시키는 작업이 아침마다 각 가정에서 벌어지고 있는것이다. 하물며 그럴진데, 각종 정치사회적 현상과 사건들이 마치 자본의 지배와 그것에 저항하는 계급투쟁과 무관하다는 생각은 무모한 지적 만용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계급모순과 무관한 사회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의 지배가 그토록 은밀하고 셀 수 없이 다양한 형태라면, 그것에 대응하는 계급투쟁의 모습 역시 그러하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느 회사 노조사무실에서 단협안을 준비하는 노동자들의 토론이 바로 계급투쟁이다. 인터넷 모 사이트에서 우리 사회의 진보를 걱정하는 어느 논객의 글쓰기도 계급투쟁이다. 비록 계급이 뭔지 먹는건지 당체 몰라도, 선거날 '자본가계급정당 반대'에 한 표 꾹 찍고 나오는 어느 호남에 사는 촌로의 투표도 계급투쟁이다. 계급투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불현듯 '계급의식으로 각성한 노동자계급의 목적의식적인 반자본투쟁' 이라는 사전적 어의만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한참 못 배워도 못 배운거다. 이거 인정못하겠다는 분들을 설득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 수준에 어디가서 제발 지젝 찾고 보들리야르 찾으면서 좌파지식인 코스프레 좀 안했으면 좋겠다.

지난번  호남 시민사회 노동 이라는 글 에서 필자는 자본이 사회를 지배하는 형태는 매우 다양하지만, 크게 3가지 정도의 범주로 정리된다고 말한 바 있다. 바로 이데올로기적 지배, 정치적 지배, 경제적 지배이다. 그 중 이데올로기적 지배는 정치적 지배를, 정치적 지배는 자본가들 궁극의 목적인 경제적 지배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물론 그런 선후 관계는 존재하지만, 3가지가 각각 별개인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동시에 진행되며,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 이러한 각각의 지배 형태에 대응하는 반자본 계급투쟁들의 형태가 바로 시민사회 지식인그룹, 범야권정당들, 노동자조직이다. 자본가진영과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립 관계가 바로 우리 사회 계급투쟁의 주요 전선인 것이다. 

그 중 새누리당이라는 자본가정당의 정치적 지배에 맞서서 가장 첨예한 정치적 계급투쟁을 수행해 온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가?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조직화조차 필요없는 이심전심의 강력한 결속력으로 자본가정당의 정치적 지배에 순종하지 않고 싸워온 사람들이 누구인가? 바로 호남 민중들이다.

그들이 무슨 진보주의와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 사람들 각자가 저마다 무슨 생각으로 무슨 사연으로 자본가정당에 반대표를 던지는지 그것은 알 필요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오로지 다른 지역과는 확연히 다르게, 일관되고 흔들림없이 자본가정당을 반대해 왔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그 사람들을 따로 특별히 우대하고 존중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러기는 고사하고 그 사람들을 감히 지역주의 운운하면서 비웃고 폄하하는게 말이 되는가? 그것도 다름 아닌 진보개혁을 자처하는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너희들은 정말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한다. 너희들은 민주주의의 적이고, 분열주의에 물든 계급의 적일 뿐이다.

호남 민중들의 특수한 정치적 행동을 각자 저항적 지역주의라고 부르든, 유사인종주의적 차별에 대한 저항이라고 부르든, 필자처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모순이라는 물질적 토대로부터 촉발되는 계급투쟁의 특수한 정치적 현상 형태라는 졸라 길고 어려운 말로 부르든 현실에 아무런 영향이 없으면 어차피 상관은 없다. 계급투쟁을 굳이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고 해서 계급투쟁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파업이라고 부르든 노동자 계급투쟁이라고 부르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미 부정적인 어의로 굳어버린 지역주의라는 단어를 굳이 고수하면서 사용해야할 까닭도 없다. 더구나 고집스럽게 그 명칭에 집착하는 목적이 자본가정당의 정치적 지배에 투항한 영남지역민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저항하는 호남민중들을 멸시하는 근거로 쓰이고, 나아가 친노라는 정치양아치들이 지역주의의 부정적인 어의를 이용하여 '호남 지역주의론'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를 만들고, 그것을 이용하여 권력투쟁까지 감행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명칭의 변경을 심각하게 고려해야만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애초에 지역주의는 없다. 자본의 정치 이데올로기적 지배에 협조하며 계급을 배반하는 사람들이 유독 영남에 많이 살고, 저항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유독 호남에 많이 살고 있을 뿐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객관적 팩트이고, 나머지는 모두 추정이고 심증이다. 유권자 개개인들이 각자의 이유와 판단과 사연으로 투표한 결과의 집계를 놓고, 지역감정때문에 혹은 지역주의에 홀려서 투표했다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그저 지역주의라고 부르는게 알아듣기 쉽고 그럴듯하니까 별 생각없이 그래왔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래야할 이유가 없다. 또한 그래서도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