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친노들 뿐만이 아니다. 새누리당과 조중동은 물론이고, 진보정당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일부 호남인들까지 모두가 사실인 것처럼 알고 있는 어떤 신화적인 명제가 하나 있다. 바로 '호남의 몰표는 지역주의다!' 라는 것이다. 물론 그 명제를 이용하는 방식은 진영에 따라 각기 다르다. 새누리당은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면죄부와 호남 멸시의 근거로, 진보진영쪽은 자신들의 지지율이 낮은 현상에 대한 핑계거리로, 일부 호남인들과 정치인들은 친노들에게 끌려다니는 자신들을 합리화하는 명분으로 삼는다는게 다르다. 

여기서 그 명제를 가장 악질적으로 사용하는 집단이 바로 친노들이다. 다른 진영들과는 달리 아예 친노들의 모든 정치 행위들은 '호남 지역주의론'에서 출발한다. 즉 '호남 지역주의론'이 바로 친노의 알파요 오메가이고,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것이 무너지면 친노들의 존립 근거 또한 모두 무너지는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호남 지역주의에 대한 친노들의 인식을 살펴보면 얼핏 호남에 매우 호의적인 것도 같고, 근거도 있고 합리적인 것도 같다. 그런데 그래서 사실 더 문제다. 가장 악질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고 심각한 피해를 한국 정치판에 끼치고 있는데도, 막상 그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 어떤 국민의 투표 행위를 평가할 때, 계층적 정책적 판단에 의한 투표를 가장 이상적인 롤 모델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 못하고 외모 성별 종교 학연 혈연 지역등의 기준으로 이루어지면 그 결과로 정치가 왜곡되고 정책의 생성과 실행을 비효율적으로 만든다는 것이 또한 정설이다. 특히 한국 정치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지역주의는 '망국병이자 치유해야 할 고질병'으로 취급되고, 정치 발전을 저해하며 불신하게 만드는 근본 이유인 것처럼 묘사된다. 지역주의는 정책을 훼손하고 왜곡시키며, 특정 정당의 손쉬운 당선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주의 투표를 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집단은 뭔가 비정상적이고 의식 수준이 낮은 것으로 치부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지역주의에 대한 그런 묘사와 영호남 지역주의 양비론은 조선일보가 최초로 유포한 것이고, 새누리당의 중요한 선거 전략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개혁진영 내부 호남을 제외한 모든 그룹들이 이견없이 수긍하고 있다는건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그런데 친노들의 호남 지역주의에 대한 인식은 사실 조중동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심지어는 '호남 지역주의'는 나쁜게 아니다, 오히려 정당하다는 나름 진일보한 이야기도 한다. 가뜩이나 80~ 90% 라는 망측하기 짝이 없는 몰표 덕분에 손가락질 받는 호남인들의 입장에서는 솔깃하고 고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은 악마의 유혹이라는걸 아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어제 코지토님과 '호남 지역주의'에 대해서 난상토론을 벌었다. '호남 지역주의' 에 대한 그 분의 인식은 친노들의 그것과 한치도 다를 바가 없는데도 그 분 스스로는 '나는 친노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시니 믿어줄 수 밖에. 어쨌든 호남 지역주의에 대한 친노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른게 없는 그 분의 주옥같은 말씀들을 몇 개 음미해보자. 

지역주의라는 것이 무슨 절대악인양 인식하는 거 같으신데요... 지역주의는 지역자치주의의 기본 이념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각 정당이 정책과 상관없이 자기 지역내의 이익만 내겠다고 몰두하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지역의 비난하면서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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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는 인정받아야 합니다.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와는 분명히 구분 지어야 합니다. 이를 똑같이 병치하는 손호철 같은 인물은 비판 받아야합니다. 노무현시절에도 만일 그같은 발언을 한 인물은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호남 지역주의에 대한 매우 전향적인 말씀에 감사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이 정도면 호남의 친구로써 정말 손색이 없다. 이런 분을 핍박하다니 닝구들은 나쁘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계속 그 분의 말씀을 따라가보자. 
 

(노무현의) 호남에서도 한나라당 찍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이렇게 와전 된 것으로 압니다. 이 말은 어떤 당이든 지역적 지지보다는 정책적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말을 한 거 아닌가요?  

 지역이 아니라 정책적 지지가 더 올바른거 아니냐는 당연한 말씀인데, 살짝 본색을 드러내셨다. 지역주의는 사실 그렇게 좋은 건 아니거든? 하시는거다. 계속 따라가보자.


물론 계파정치가 가능한 것은 한 지역에서 한 정당이 무조건적 지지를 받으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비정상적 지역주의를 타파하자는 것이 노무현의 주장이긴 했어요. 

이 역시 당연한 말씀이다. 하시는 말씀 모두 다 맞는 것 같은데, 근데 뭔가 이상하다. 어어 하다보니 노무현은 비록 방법이 틀렸어도 지역주의에 대한 인식 자체는 정당하고 옳았다는 이야기가 되는거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맞다. 호남의 몰표를 지역주의라고 인정해주는 순간, 나머지는 논리적으로 지당한 코스라는 거다.

간단하게 그 분의 말씀을 요약해서 정리를 해보자.

1. 호남의 지역주의는 정당하다.
2. 그러나 (계층적) 정책적 지지를 하는 것보다는 안 좋다.
3. (특정 지역에서의 손쉬운 당선으로) 계파정치등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이 글 세번째 문단의 굵은 글씨를 다시 보시라. 이제 감이 잡히시는가? 호남의 지역주의는 정당하고 문제없다고 하셔놓고, 지역주의의 나쁜 점과 문제점들은 또 빠짐없이 열거하고 계신다. 바로 2번과 3번때문에 지역주의를 극복의 대상 타파의 대상으로 보는건데, 이 분은 자신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건지 알고는 계실까? 정당하지만 바람직하지 않고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왜 그러실까 이유가 정말 궁금해진다. 조금 더 파해쳐보자. 여기서 '호남 지역주의론'을 이용한 친노들의 전략이 정체를 드러내니까 잘 읽어보시라.

1. 호남의 지역주의는 정당하다. 
이 말을 듣고 호남의 지역주의를 눈물겹게 변호해주는거라 생각하면 커다란 착각이다. 그저 호남의 지역주의와 협력하는 자신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그들의 표를 받는 자신들의 정치 행동에 대해 명분을 주기 위해서이지 다른거 없다. 

2. 그러나 (계층적) 정책적 지지를 하는 것보다는 안 좋다.
영남을 포함한 전국정당론, 그러니까 영남에 아부하여 의석 몇개 얻는 것을 지역구도 완화라는 업적으로 포장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다.

3. (특정 지역에서의 손쉬운 당선으로) 계파정치등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당연히 뭐겠는가. 호남물갈이론 호남토호숙청론 호남기득권양보론 등등과 영남후보론 호남후보비토라는 친노들의 기본 전략을 정당화해주는 논리다. 사실 이게 핵심이다.  (그런데 계파정치는 모든 정당에 다 있다. 심지어 진보신당 안에도 있다. 이 분은 그것마저도 호남 지역주의의 책임이라는 놀라운 인식을 보여주신다.)

이제 그 분이 끝까지 "호남에 지역주의가 없다니 말이 돼?" 라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 감이 잡히시는가? '호남의 몰표 지역주의론' 이 무너지는 순간, 친노들의 모든 정치 행동들을 떠받드는 논리들도 정당성을 상실하고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쩍 이런 말씀도 하신다.

노무현의 전국정당론........ 지역갈등극복.. 선거구제 개편... 뭐 하나 이룬 게 없는 정치인이죠. 실패한 정치인이라고 봐야 합니다.

노무현의 삽질은 실패했다고 흔쾌히 동의하면서도, 현재 친노들이 노무현 당시와 똑같은 논리로 민주당을 접수하고 양아치질을 일삼는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씀이 없다. 대신 이런 말씀은 하신다.

바그네는 괜찮다? 박그네의 면면을 다 이야기 하자면... 그들이 과연 친노보다 나은 놈들인가요?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일단 실정을 하고 나쁜 짓을 한 정당은 일단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하죠. 

이른바 호남의 영원한 적인 새누리당을 박멸할 때까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친노로 대동단결!

이미 느끼신 분은 느끼셨겠지만, 이 분은 친노들이 '호남 지역주의론'을 이용해 할 수 있는 말의 모든 것을 종합선물세트로 시전하신거다. 그래도 본인은 '내가 무슨 친노? 내가 친노들도 비판하고 노무현도 비판하는거 안보이셈?' 이라며 친노로 불리기는 극구 거부하신다. 그런데 그거 아시는가? 수꼴들도 때로는 이명박 욕하고 조중동 욕하고 박근혜도 욕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수꼴인 이유는 그들의 의식이, 말과 행동이 수꼴이 아니고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분이 호남의 몰표는 지역주의 때문이다에 대해서 근거를 제시한 적은 없다. 되려 나더러 호남의 몰표는 지역주의가 아니라는 근거를 요구한다. 입증의 책임은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에게 있다는 것도 모르시나보다. 친노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 그 분은 그저 '호남에 지역주의가 없다니 상식으로 통용되는 이야기를 하세요'라고 반박하는게 전부. 그러다가 말이 딸리면 '호남에 정말 지역주의가 0%도 없다니? 한명이라도 있으면 어떻할래요?" 라는 식의 토론의 맥락과는 한참 동떨어진 드립까지 치신다. 이런건 뭐 그 분의 개성이니까 넘어 가고. 

다음에는 '호남의 몰표는 과연 지역주의가 맞는가?' 에 대해서 이번에는 정밀하게 한 번 써볼 참이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