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닉스님이 담벼락에 '핀란드 역사'를 거론하셔서>

나도 핀란드의 역사를 책으로 읽은 적은 없다. 단지, 내가 예전에 '공돌이 한그루가 세상을 이해하는 세 개의 곡선'(글 전문은 여기를 클릭)에서 언급한 핀란드의 극심한 좌우대립에 대하여 언급한 적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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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읽은 적은 없지만, 현대 시대의 핀란드에서 극심한 좌우대립의 역사를 설명한 만화를 읽은 것을 바탕으로 언급한 것이다. 당시 핀란드의 좌우대립은 분열까지 염려할 정도로 극심했던 것 같고 그 시대가 불과 1980년대라고 하니(독립 전후의 좌우 대립과는 또다른), 핀란드의 사례를 생각한다면, 복지국가 만드는 것은 반드시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복지국가의 모델을 핀란드로 삼는 것은 부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원천 배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부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대한민국과 핀란드를 매핑하여 대한민국의 복지 모델로 삼으려는 시도 때문이지 응용력을 발휘한다면 핀란드 모델을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보여진다.


지금, 핀란드는 '사회임금'에 대하여 실험을 하고 있다. 특정 계층을 바탕으로 실험 중인데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이 약속했던 사회임금(이 부분은 내가 지지했다가 아크로 어느 분의 지적을 받아 '여전히 해당 공약은 지지하지만 재원 마련에는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과 같다. 문제는 이재명의 공약이 파격적인 것을 넘어 '실현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느끼게 한 반면 핀란드는 아주 조심스럽게 사회임금을 실험하고 있다.


정책의 수립, 실천의 신중함이 돋보이는 핀란드의 사회임금 정책에서 흥미로운 것은 사회적 강자일수록 찬성률이 높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추측하건데, 사회적 강자의 도덕률이 높다는 것과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도 자신들의 사회적 자존감을 중시 여긴다는 반증 아닐까? 물론, 사회적 강자와 사회적 약자의 찬성률 차이가 크지 않지만 말이다.(5% 정도인 것으로 기억한다)



핀란드의 역사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제목과 같이 대한민국으로 치면 '친일파가 집권하여 복지국가를 만들어 존경받는 사회'인 셈이다. 스웨덴 식민지 시대를 오래 거친 핀란드에서 스웨덴에 부역(?)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강자였고 막상 그 사회적 강자가 독립을 하면서 집권을 한 후 복지국가를 만들어 존경받는 사회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는 좌우대립으로 내전이 있었고 대량학살을 야기시켰단 상황에서 스웨덴에 부역했던 인간들이 집권하면서 발생된 결과인데 그렇다면 핀란드 국민들은 민족의식이 약한 탓일까? 저 유명한 크림반도 전쟁에서 핀란드 민족의식이 싹텄는 바 우리나라의 민족의식이 시작되었다는 31운동과 시점이 비슷한데 어떻게 이렇게 판이한 결과가 나타났을까?



핀란드 연구를 한 책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겠지만, 적당히 읽을만한 책이 없어서 추론으로만 생각해 본다면, 스웨덴 점령 시절, 핀란드는 기근으로 국민의 1/3이 죽었다는 엽기적인 역사의 사실, 그리고 당시에 스웨덴은 그런 사실을 방치한 역사의 사실에서 핀란드 사람들은 그 가혹한 역사의 교훈에서 '대립보다는 공존의 미덕'을 스스로 배워온 것은 아닐까? 물론, 이런 나의 추론은 '그 이후에 발생한 극심한 좌우대립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데?'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대답이 궁해 무너지겠지만 말이다.



'사회적 타협'으로 불리워지는 핀란드의 이런 역사를 위키백과에서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핀란드에 새로이 형성된 타협은 핀란드의 의회민주주의를 더욱 안정화시키고 폭넓게 만들었다. 이렇게 타협이 이루어진 이유는 1918년 내전에서 적군이 패배했고, 그렇다고 백군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독-러 외세가 핀란드를 떠나자 적핀란드와 백핀란드의 전투적 분파들은 뒷배를 잃게 된 반면, 핀인들 사이에는 1918년 이전의 문화적 국민적 통합과 페노마니아의 유산이 깊게 각인되었다. 1차대전 이후 독일과 러시아가 모두 약해진 것은 핀란드의 평화에 더욱 기여함으로써 핀란드의 국내정치와 사회 안정이 가능할 수 있었다. 화해는 느리고 고통스러웠지만 꾸준히 진행되어 국민통합을 이루었다. 1917년에서 1919년까지의 권력공백과 공위기는 핀란드에 대타협이라는 길을 열었다. 1919년에서 1991년까지 핀인들의 민주주의와 주권은 극우와 극좌의 도전, 제2차 세계 대전의 위기, 냉전 때 소련의 압력을 모두 이겨내고 끄떡없이 유지되었다.
(출처는 여기를 클릭)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핀란드의 역사를 탐구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전사에도 언급되지 않았던 러시아의 핀란드 점령 시절 있었던 '거대한 분노(Greater Wrath /핀란드 어: isoviha)'는 한번 자료를 찾아 읽어보고 싶다. 이 전쟁도 러시아와 스웨덴의 전쟁이고 핀란드인들은 일방적인 학살의 대상이었으니 읽기는 마득치 않지만.



대한민국으로 치면 '친일파가 해방 후 집권하여 복지국가를 만들어 존경받는 사회'였던 핀란드. 문득, 이승만이 아니라 진짜 친일파들이 집권하여 대한민국을 통치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한반도 역사에서 엘리트들이 왕조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보여주었던 '국가니 민중보다는 사적이익 탐닉'을 했던 것과는 달리 신분상승 욕구가 컸고 그래서 친일파가 되었던, 그 친일파들은 어쩌면 조선시대의 불공정한 사회에의 분노를 누구보다도 더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었고 그 불공정한 사회를 타파하기 위한 범민족적인 타협을 이끌어 냈을 가능성이 0%는 아니니까.


물론, 회의적이기는 하다. 왜냐하면, 조선 그러니까 한반도에 살았던 민중들은 우습게도 중국에게는 굽신대면서 일본은 업신여기는 풍토가 있었는 바, 그 민중들은 사회의 불공정성에 대한 항의로 인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 내기보다는 친일파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을 거부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을테니까.



어쨌든, 이 대조되는 역사를 보면서 생각나는 표현...................................................... 역사는 흐른다.



핀란드를 좀더 이해하시라는 의미에서(뭐, 나도 잘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지만)EBS의 지식e채널 '유럽의 문제아' 1부 및 2부를 아래에 링크한다.


http://www.ebs.co.kr/tv/show?prodId=353&lectId=1187054 (유럽의 문제아 1부)

http://www.ebs.co.kr/tv/show?prodId=353&lectId=112850 (유럽의 문제아 2부)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