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이야기를 하나만 더 올려볼까 합니다. 이번에는 철학적 논제인데 자유의지와 운명론에 대한 매트릭스의 논리, 그리고 제 의견입니다. 매트릭스는 정말 파고들 여지가 많은 텍스트입니다. 기회 닿으면 한번 더 이야기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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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 했지만 매트릭스는 파고 들어갈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지난 번 글에서는 막시즘과 실존주의의 시각에서 매트릭스를 읽어 보았다. 막시즘의 관점으로 본다면 네오는 혁명의 '메시아'가 되어 모든 인간이 포기한 삶의 의미를 '진실의 사막'에서 찾아내었다. 자본주의가 주입한 모든 환상을 뒤로 하고.

그가 메시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재림 할 운명의 메시아임을 예언자(오라클)가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오는 이야기한다.

난 운명을 믿지 않아. 내 운명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데 오라클은 네오가 The One이 될 운명이라고 선언했다. 물론 처음에는 그저 그럴 재능이 있는 인간이지 '그'는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어쩌면 다음 생에서-트리니티의 사랑을 확실하게 얻는다면-네오는 "그"가 될 수 있다고 했다.이말은 글자 그대로 실현된다. 네오는 죽고 다음 생에서 트리니티의 사랑고백을 들은 후'그'가 된다. 영화가 끝난 지금도 네오의 운명관은 여전할까? 여전히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운명론을 싫어할까?


자유의지 VS 운명

예전에 스위스에서 신정정치를 펼치며 인문주의자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신학자마져 박해하신 유명한 종교개혁가 어른이 계신다. 칼뱅이라는 어른인데 이름처럼 좀 꼴통스러운 양반이다. 이 양반의 이름을 사해에 울려퍼지게 만들고 울나라 고딩의 교과서에도 오르내리게 만든 학설이 있다. 이른바 '예정설'.



예정설로 스타가 되신 칼뱅아자씨-그림만 봐도 상당히 물샐틈 없이 완고해 보인다.

"우리는 신의 이러한 영원한 섭리를 예정predestination이라 부른다. 그는 그것에 의해 모든 인간 개개인이 본질적으로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했다. 그들이 모두 비슷한 운명으로 창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삶이라는 운명이 예정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저주가 예정되어 있다."

장 칼뱅, <기독교의 원리 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네오는 자유의지로 빨간약을 택했다. 그리고 기꺼이 매트릭스와 맞서 싸울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물어보자. 만일 그것이 네오의 운명이었다면, 혹은 매트릭스2에서 설쩍 비춘 것 처럼 그것이 매트릭스의 프로그램에 의하여 미리 프로그램된 것이라면 도대체 네오의 자유의지는 어디로 간 것인가?

운명이라는 단어의 뜻과 자유의지는 뜻은 명백하게 상호모순을 이룬다. 만일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고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 全知(그의 운명을 미리 정하고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하다면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고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면 신은 전지하지 않으며 신이 만든 운명과 예정론은 헛소리가 된다. 다시말해 운명과 자유의지는 동그란 사각형처럼 형용모순으로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세계관을 대표한다.

신은 논리적 규정을 확정하는 범위 내에서만 '전능'하다고 일찌기 토마스 아퀴나스 옹께서는 말씀하시면서 슬쩍 이 논리적 모순을 넘어간 바가 있다. 이럴테면 이런 식이다. 신께서 전지하신 것은 신께서 전지하다고 정해진 바 내에서만 전지하시다. 신계서 자유의지를 내리셨다면 그 범위 안에서 신은 모든 것을 아신다. 이 설명이 충분히 납득가능한가? 상당히 미진하기 그지없다. 이럴때 종교인은 흔히 터툴리안의 유명한 격언을 인용하며 자신의 믿음을 다질 것이다.

"나는 모순되기 때문에 믿는다..."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에게 저 명제는 아무 의미없는 헛소리로 들릴 가능성이 높다. 일반인들은 모순되는 것은 논리적 오류라고 생각할 뿐이니까.

그렇다면 매트릭스는 운명론과 예정설을 주장하는 종교적 텍스트일까? 그렇지가 않다. 매트릭스의 텍스트를 보면 운명론이 아니라 훨씬복잡한 이론들이 줄줄 쏟아져 나온다.

예를 들어 테어도어 시크 주니어(Theodore Schick Jr-뮐렌버그 대학의 철학과 교수, 슬라보 지젝등과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Matrix & Philosophy]를 공저함)는 오라클은 결국 미래를 아는 것이 아니라 사물, 프로그램, 네오의 성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미래를 실현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아주 거대한 펀드를 운영하는 유능한 펀드매니저처럼 자신이 가진 정보와 자원을 활용하여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이고 그 가능성을 예측하면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여전히 미진하다. 설마 오라클이 그러한 존재에 불과할까. 네오의 육체적인 삶의 죽음까지 예언하는 그녀의 능력를 펀드매니저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치게 스켑틱한 해석이고 영화가 풍기는 이미지와도 맞지 않다.

테어도어는 에피쿠르스가 예측한 원자의 불규칙적인 방향전환을 현대의 입자론, 혹은 양자론과 연결시키면서 결국 결정론이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오라클은 어떻게 미래를 예언하고 실현한다는 말인가? 양자론, 카오스이론, 불확정성의 원리는 결국 결정론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하게되는데 그렇다면 오라클의 '예언'과 그 신비적인 실현은 뭐지? 영화는 영화일뿐?



양자역학, 그리고 새로운 모형!

지난번에 포스팅한 매트릭스 읽기를 내가 속한 동호회에 다시 포스팅했더니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한다.

매트릭스는 워쇼스키형제의 의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비평가들이 제멋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구. 영화는 영화일뿐인데.... 과연 그럴까?


슬라보 지젝은 매트릭스를 일종의 철학자을 위한 로르샤흐 테스트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정말로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영화라는 이야기다. 실존주의자는 실존주의자대로, 인공지능전문가는 인공지능전문가대로, 지젝은 라캉의 이론으로, 그리고 나같은 좌파는 좌파의 이론으로 이 영화에서 이것 저것을 찾을 수 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워쇼스키형제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이 영화는 이미 복합, 퓨전, 포스트모던적인 텍스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 형제는 그 평자의 생각보다는 상당히 똑똑한 인물들이고 대사들로 볼 때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는 인간들이다. 뿐만 아니라 이 형제들이 의도하지 않았더라고 자신들이 참고한 다양한 텍스트, 기존의 영화들이 이 영화에 녹아있고 그 녹아있는 구성물들은 한없는 해석과 재발견, 그리고 재창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매트릭스의 의미를 다시 찾아 보자.

현대물리학자라면 매트릭스에 나오는 네오의 운명론, 오라클의 예언을 들으면서 쉽게 양자역학의 이론을 떠올리게된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일의 결과에는 관찰자의 시각이 영향을 미치게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관찰자가 보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오라클은 객관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사건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저지기를 원했고 따라서 그렇게 개입했고 그리고 성취했다!

오라클 : "화병은 신경쓰지마."
네오 :"무슨 화분..."(화분을 찾으러 주위를 둘러보다 화분이 깨진다."
네오 : 죄송합니다.
오라클: 신경쓰지 말라고 했잖아. 그보다 궁금한 것은 내가 화병을 언
급하지 않았다면 화병이 깨어졌겠냐는 것이겠지.


오라클-귀걸이가 태극문양이다...그녀의 신비주의적인 이미지를 드러낸다.

물론 그녀가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화병은 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사건의 예언자가 아니라 사건을 이루어지게 만드는 촉발자(initiator)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결정론이 아니라 자유의지, 그리고 운명론이 아니라 미래라는 것은 개척된다는 프래크머티즘적인 시간관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문제일까? 이렇게 본다면 양자론이 개입되어 있다 뿐이지 펀드매니저이론과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영리하다고 해도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네오의 미래를 예언하고 성취하도록 만든다는 것은 불확정성이론으로 볼 때 주사위놀음에 불과했던 것이다. 천문학적인 확률의 위험한 도박에 뛰어들었고(그녀의 정보와 능력으로 보았을 때 일반인보다는 훨씬 더 높은 확률을 가지고 있었겠지만)네오의 재능으로 기적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이루었다는 말인가?

여기 슈뤼딩거의 고양이, 평행우주론, 인과결정론, 연기설, 양자역학을 묶어주는 아주 참신한 모델이 있다. 이런바 게임CD 우주론이 그것이다!

예컨대 이렇게 생각해 보자. 우주 시공연속체(space-time continuum)를 하나의 게임시디라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게임의 플레이어라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일정하게 흐르는 시간, 혹은 트랙리딩에 따라 게임을 순차적으로 클리어해간다.


우주라는 것을 이 한장의 게임시디라고 생각해 보자구...


자 그런데 각 상황별로 당신이 어떤 변수를 선택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프로그램 개발자라고 할지라도. 그런데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결말은 몽땅 시디안에 들어가 있다. 다만 당신은 당신이 택한 선택에 따라 어떤 어떤 결과를 체험하게 되고 어떤 결말은 체험하지 않게 된다. 우주라는 프로그램의 개발자(다른 말로 창조주, 프리메이슨의 용어로 하자면 우주의 건축가), 혹은 매트릭스의 프로그래머, 혹은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환하게 꿰뚫고 있는 오라클은 당신의 어떤 선택을 유도할 수는 있을 테고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는 불 보듯 뻔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다른 선택을 한다면? 그렇다면 그결과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전지'하다. 다만 어떤 체험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들 본인이다. 그것만은 아무도 우리에게 강제할 수는 없다. 유도하거나 추천할 수는 있을지라도. 자유의지를 행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고 신은 우리자신의 결정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그 결정의 결말은 모두 알고 있으며 심지어 결정을 내리지 않은 순간의 모든 경우의 수- 이경우 무한한 경우의 수-의 결과도 모두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 신은 전지하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우리가 택하지 않은 선택은? 우리에게 다가 오지 않았을 따름이지 이 우주라는 시디에는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고양이를 죽일지 살릴지(체험을 실현시킬지 말지는) 우리에게 달린 것이고 그전에는 이 세상 모든것은 존재와 비존재 그 사이의 어떤 형태, 혹은 리딩되지 않은 시디트랙처럼 존재하는 것이다(슈리딩거는 고양이는 상자를 열어보기 전에는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로 존재하다가 관찰자가 상자를 여는 순간 둘 중의 하나의 형태로 결정된다고 말한다).

평행우주론으로 나아가보자. 휴 에버릿은 양자가 나뉘는 것 처럼 우리가 매 순간 결정을 내리면 그 결정에 따라 우주가 쪼개져서 다른 차원으로 존재한다는 기상천외한 이론을 펼친 적이 있다. 매순간 우주는 무한한 경우의 수로 나뉘어져 무한한 차원으로 동시에 물질적인 형태로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황당무계하기 그지 없지만 양자역학이라는 넘이 워낙에 상식을 깨는 이론이므로 이 이론 역시 양자역학의 한 해석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분명히 게임시디이론은 이 평행우주론보다는 훨씬 합리(?)적이다. 물질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매트릭스 2 리로디드를 보면 네오가 아키텍트를 만나는 순간 각각의 모니터에 수많은 네오가 수많은 형태로 아키텍트를 만나는 장면이 비춰진다. 유일 무이한 The One이 아니라 수많은 The One이 각각의 순간에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면서 아키텍트를 만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 세계의 The One인 네오는 결국 이 모든 경우의 수 중 한가지라는 이야기다. 이 놀라운 장면에서 네오는 그다지 경악하지 않는다. 그리고 관객도 별로 의아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이 장면의 함축성이 충분하게 전달되지 않았기때문이다.


아키텍트와 모니터링되는 수많은 네오들....

결국 의미를 실체로서 드러내는 The one은 네오일뿐이지만 수많은 다양한 가능성이 동시에 다른 트랙에는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워쇼스키형제는 관객이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한 인간들임에 틀림없다. 이보다 더 재미있게 평행우주론, 혹은 게임시디 우주론을 제시한 사람은 없었다고 장담하고 싶다.


다시 칼뱅의 예정설 그리고 ....

"우리가 예지를 신의 속성이라고 할 때 그것은 그의 눈앞에 만물이 계속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가 아는 모든 것은 미래이거나 과거가 아닌 현재이다. 즉 그는 만물을 자신의 마음에 형성된 생각들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눈앞에 놓여 있는 것처럼 만물을 정말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러한 예지는 세계 전체, 그리고 모든 피조물에 해당된다."

-장 칼뱅, 앞의 책

어떤 의미에서 칼뱅 아저씨의 말은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새로운 모형에 따라 신을 이해해보면 우주라는 게임의 프로그래머인 신은 모든 시간에 걸쳐, 모든 공간에 속한 모든 피조물의 자유의지가 결정한 모든 결과를 '현재' 속에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라는 게임시디, 혹은 시공 연속체 어디에나 랜덤액세스가 가능한 프로그래머로서 말이다. 칼뱅은 신은 시간과 우주의 외부에서 우주를 관찰하는 전지전능의 절대자로 파악했으니까 이 개념과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다는 말이다. 자유의지를 부정한 측면은 네오도, 현대물리학자도 인정할 수 없겠지만.

물론 게임시디모형도 어디까지나 모형일 뿐이고 진실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칼뱅 아저씨의 완전 예정설보다는 양자역학과 불확정성의 등 현대물리학이론에 좀 더 부합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어쨌거나 매트릭스를 따라 토끼굴에 머리를 들이밀면 세계는 더욱 신비롭고 복잡해 진다. 빨간 약을 택할 용기를 가진 사람에게 세계는 언뜻 언뜻 자신의 신비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젝은 빨간약을 선택할 경우 우리는 "실재의 사막"을 발견한다고 하니 진실은 별로 아름답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빨간약을 선택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