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신심과 기독교의 믿음 [1]

고등학교 때까지 친구따라 교회에 다녔습니다. 보통 교회 한 번 안 가본 사람 없지요. 초딩때인가 중딩때인가 주일성경학교 선생님이 히메나 선생님 닮아서 참 예쁘고 친절하고 따뜻한 여자분이셨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생정도 되셨지 않나 싶습니다.

하루는 창세기를 공부하는데, 히메나 선생님께 손들고 질문했던 기억 납니다. 아담의 후손 중에 한 분이 어딜 갔는데, 거기에도 사람들이 있다는 그런 구절 이었는데요, '선생님!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만 만들었는데, 다른 곳에는 어떻게 사람들이 있는 건가요?' 라고 물었죠.

지금 집에 성경책도 없고해서 찾아본게 아니라 기억에 의존하는 거라 맞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질문하고 히메나 선생님으로부터 '믿음'에 대한 설명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성경의 기록을 믿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린 마음에 내 질문은 합리적인데, 선생님 답변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 받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워낙 아름다운 선생님이셨기 때문에 그 정도 의심 따위는 신앙생활에 큰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고딩때 비로서 불교를 접하게 됐습니다. 제일 처음으로는 동국대 총장하셨던 백성욱 선생님을 알게 되었어요. 당시 이미 돌아가셨던 터라, 백 선생님 제자분인 김재웅 법사께서 쓴 책 '닦는 마음 밝음 마음'과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이 두권이 저의 첫 불교 입문서가 됐습니다.

백성욱 선생의 수행법은 신심발심해서 부처를 시봉하고, 올라오는 모든 마음을 '미륵존여래불'하면서 부처님께 바쳐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믿는 마음을 내서 부처님을 잘 모시고, 미래세에 출연할 미륵부처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악심이든 못난 마음이든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그 생각을 바치는 수행이었습니다. 뭣도 모르고 그 때 참 열심히 했습니다. 고딩이 뭐 그렇게 인생이 괴로웠나 몰라도 괴로운 일이 참 많았고, 하루 마칠 때,

'신심 발심해서 부처님 시봉 밝은 날과 같이 밝게 잘 하기를 발원'하며 원세우고, 여러 복잡한 생각들에게 '미륵존여래불' 광명을 쬐어서 없애고 바친다는 마음으로 미륵존여래불을 외웠습니다. 그리고 금강경을 독송했습니다.

그리고 20대에는 대행스님을 평생의 스승으로 삼고 정진했습니다. 한마음선원은 졸업후에 청년법회로 잠시 다녔고, 방황할 때 청년부 담당 스님에게 가서 출가하고 싶다고 했다가 혼만나고 했던 기억 납니다. 대행스님의 수행법은 '놓아라'하는 것이었습니다. 백 선생께서 '바쳐라'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좀 달랐어요.

불교에서 '경계'라고 하면, 내가 삶에서 겪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순경은 좋은 경계, 역경은 나쁜 경계 이렇게 구분하기도 합니다만, 어찌됐든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 인간관계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들이 '경계'입니다.

대행스님의 수행법은 '관'법이라고 합니다. 살아가며 닥쳐오는 모든 경계를 주인공(내 안에 부처)에게 몰락 놓는 것입니다. 일체가 부처아님이 없기 때문에, 나도 내가 겪는 경계도 불성의 나툼이므로 그 나온 자리에다가 다시 돌려 놓으면, 인과성, 세균성 이런 업보들이 모두 녹아내리고 나를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대행스님께서도 이것을 '신심' 즉, 믿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도 부처라는 믿음으로 놓는 것이고, 내 안에 불성이 일체와 둘이아닌 주인공으로서 찰나찰나 고정됨 없이 나투며 나와 세상을 만들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 놓고서 내가 믿고 놓았다는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다가오는 경계를 대처해나가는 것이 또 진짜 믿음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대행스님의 이 방법은 참 쉬웠습니다. 반응도 즉각적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종교적 간증을 하기는 그렇습니다만 다른 종교의 신자들처럼, 또 한마음 선원의 여러 신도들처럼 저 역시 많은 경험들을 했습니다. 몰락 놓고 지켜보면 역경이 순경이 되고, 순경 마저도 놓고 나면 그렇게 홀가분 할 수가 없었지요.

그러다가 문득, 이 '신심'에 대해서 어릴 적 의문과 함께 이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에 믿음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느꼈던 느낌과, 고딩때 신심발심이라는 수행을 했던 것, 그리고 믿고 맡기는 한마음 선원의 관법(觀法) 수행까지, 그 모든 삶의 경험을 꿰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의 정체가 궁금해진겁니다.


불교는 철학이고 이성과 오성의 이해영역이라 생각했고요, 관념적 이해가 체화되는 과정을 수행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므로 믿음이라는 비합리적 행위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고 생각해왔던 것이죠. 뭐.. 고딩때 '신심발심'하며 수행했지만 그게 뭔지도 그때는 몰랐던 것입니다. 그냥 불교적 미사여구정도 된다고 생각하고 책에 그렇게 외우라고 하니까 외운 거죠.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