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얼의 반례

1: 존은 스미스에게 ‘이제 나는 당신에게 5달러를 지불할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2: 존은 스미스에게 5달러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3. 존은 스미스에게 5달러를 지불할 의무 아래 자신을 두었다.
4: 존은 스미스에게 5달러를 지불할 의무가 있다.
5. 존은 스미스에게 5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John R. Searle의 「How to Derive 'Ought' from 'Is'」를 읽어보지 못했으므로 alleviate님과 칼도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제 생각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써얼은 “존이 스미스에게 5달러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사실 명제에서 시작하여 “존은 스미스에게 5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라는 당위 명제를 이끌어냅니다. 써얼에 따르면 이 당위 명제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어떤 다른 당위 명제도 근거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자연주의적 오류를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어떤 당위 명제도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사실 명제들에서 시작하여 당위 명제를 이끌어대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써얼은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개념 자체를 붕괴시킬 만한 반례를 제시한 것입니다.



내적 당위와 외적 당위

이미 다른 학자들이 쓰는 용어가 있겠지만 제가 잘 모르는 관계로 일단 “내적 당위”와 “외적 당위”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사용해 보겠습니다.

외적 당위란 법률이나 관습과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법 조항을 보면 “~해야 한다”, “~하면 안 된다”와 같은 당위 명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관습의 경우에는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같은 형식입니다. 즉 당위 명제들입니다. 종교 율법을 비롯한 온갖 사회 규범이 모두 외적 당위에 포함됩니다.

그럼 내적 당위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개인이 받아들이는 규범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내적 당위를 개인적 당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며, 외적 당위를 사회적 당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내적 당위 명제들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며 항상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동성애는 죄악이므로 동성과 성교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외적 당위 명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어떤 개인이 그런 명제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왕이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라는 외적 당위 명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어떤 개인이 그런 명제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자연주의적 오류와 내적 당위

외적 당위는 사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회 A에서는 동성애를 금지한다”라는 명제는 사실 명제입니다. 따라서 사실 명제에서 외적 당위 명제를 이끌어내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써얼이 보여준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외적 당위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문제는 자연주의적 오류 개념은 외적 당위가 아니라 내적 당위에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써얼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규범이 외적 당위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약속을 했다면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만약 존이 “왜 내가 약속을 존중하라는 사회적 규범에 따라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써얼은 할 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즉 외적 당위를 내적 당위로서 인정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써얼의 논변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도덕 철학은 근본적으로 내적 당위를 다루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즉 “정말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가?”라는 질문을 개인 수준에서 던지는 것입니다. 외적 당위를 다루는 분야는 도덕 철학(규범 윤리학)이 아니라 도덕 심리학(기술 윤리학)입니다. 도덕 심리학에서는 “왜 대다수 사람들이 어떤 규범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문제를 다룹니다. 저 같이 전투적인 적응론자는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보는 입장이고, 극단적인 빈 서판론자들은 문화적 구성물일 뿐이라고 볼 것입니다. 결국 외적 당위의 문제는 사실의 문제이며 과학의 교권에 속합니다. 반면 내적 당위의 문제는 도덕 철학의 교권에 속하기 때문에 과학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저는 내적 당위의 문제는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취향의 문제라고 봅니다.

어떤 외적 당위 예컨대 “정당한 이유 없이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가 인간 본성에서 나온 것이든 문화적 구성물이든 어쨌든 외적 당위입니다. 그 외적 당위를 내적 당위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저는 외부인 경멸이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인간 본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믿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멸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저는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에 반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