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때문에 마르크스는 철학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철학에서 뛰쳐나와 일상적인 인간으로서 현실성 연구에 몰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라인홀트니버 “맑스-엥겔스의 종교론”, 고승덕, 재인용

마르크스는 독일 관념철학을 비판하면서 이들이 현실을 무시하며 자신들의 관념에 매달리며 이 관념으로 인간 현실 일체를 재단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들 관념론자들은 현실을 철저하게 도치시키고 그 결과 자못 엄숙한 어조로 인간의 의식을 바꾸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전도된 결론을 내리곤 한다고 비꼰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현실에 몰두해야 진정한 유물론자라고 말한다. 하늘에서 노니는 관념론으로는 결코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유물론이라는 말은 존재론적으로 관념, 인식보다 물질이 선행한다는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마르크스는 현실의 살아있는 인간, 살아있는 관계로서의 인간을 연구하는 것만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철학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이고 이런 철학만이 진정한 철학인 유물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후대의 맑시스트는 과연 마르크스가 주장한 유물론자로서 충분히 현실에 천착했을까? 아니면 자신의 관념에 갇혀 오히려 관념으로서 현실을 재단했을까?

스티븐 핑커는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은 “과학적” 원리를 이용해서 사회를 하향식으로 재설계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라고 단언한다. 물론 이러한 권위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신만이 과학적인 사상의 소유자라는 확신을 지니고 있었고 이러한 확신은 권위주의로서 표출되었다.




▲ 말년의 르 코르뷔지에

르 코르뷔지에는 말할 것도 없이 위대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이자 사상가다. 그러나 핑커는 그가 사회주의 유토피아에 적합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무시했다고 주장한다. 코르뷔지에는 건축이 하나의 기계라고 주장했는데 이 기계의 역할 중 하나는 인간의 정신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인간의 정신이 경험에 의하여 창조되는 것이지 본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위해서는 ‘공공의 공간’이 강조되는 건물과 도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사상은 인도 펀잡의 도시 찬디가르와 그의 제자가 입안에 참여한 브라질리아에서 실현되었다.




▲ 찬디가르-인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계획도시

이 두 도시는 ‘공무원들이 지독하게 싫어하는 불모지’로서 악명이 높다고 핑커는 주장한다. 물론 이 두 도시에 대한 관점이 비판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도시가 ‘인간적인 면’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또 코르뷔지에의 인간관에 일종의 권위주의적인 측면이 존재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개조할 수 있다고 믿었고 건축은 이 개조작업에 기여하여야 한다고 보았으니까.


▲ 브라질리아, 과거가 없는 도시, 르 코르뷔지에의 제자인 니마이어가 건축을 담당했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이 철저하게 현실을 관찰함으로써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이론으로 성립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관념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을 재단하려고 하였다. 인간은 결코 아무런 본성없이 존재하는 유기물 덩어리는 아니다. 인간이 인간이라는 종으로서의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인간의 영혼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맑시스트는 인간의 종으로서의 본성을 무시하고 자신의 관념에 걸맞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 유토피아는 혁명으로서만 건설이 가능하다고 믿기도 했다. 이 혁명과업에 인간이 충분히 기능하지 못한다면 이에 걸맞는 혁명적 인간을 창조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에 대하여 동독 정부는 “국민이 더 잘하지 못하면 정부가 그들을 내쫓고 새 국민을 뽑을 것”이라고 말하며 공상당의 권위주의를 비웃었다. 중국 공산당은 국민의 봉건성을 뿌리뽑기 위해 문화혁명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유물론을 완성하기 위해 현실을 치열하게 관찰했다. 그러나 그 역시 자신의 유물론을 완성하지 못했다. 당시의 현실과 현재의 과학이 발견한 현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대의 맑시스트들은 마르크스주의라는 관념론을 받아들이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관찰은 배우지 않았다. 모든 맑시스트들이 유물론적 관념론자는 아니겠지만 많은 맑시스트들이 관념론에 머물렀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마르크스에게 배워야 할 것은 그의 이론이 아니라 그가 삶과 현실을 바라본 태도일지도 모른다. 관념으로부터 뛰쳐 나와 현실을 보아야 한다는 그의 외침. 그 치열한 외침은 시대를 넘어서는 진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