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기 - 억강부약에 대해서


아래 눈사람님 글의 댓글에도 적었지만, 제가 이번 대선에서 가장 좋아하는 키워드가 '억강부약'입니다. 강자를 억제/규제하고 약자를 도와준다.

이것이야 말로 현재의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에 가장 맞는 말이 아닐까 하네요.

저는 이재명이 2017년 대선 본선에 올라오지 못함에 대한 크게 두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첫째, 이재명 vs 안철수의 공약에 대한 1:1 토론을 보지 못한다는 섭섭함은 전에도 여러번 말했으니 중언부언하지 않겠습니다.

둘째는 이 억강부약 (그리고 거기서 따라나오는 공정한 사회)라는 현재 대한민국에 진짜로 필요한 키워드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 버렸고, 진영논리에 이용되기 딱 좋은 적폐청산이라는 구호가 나와서 우리편 vs 적으로 대선 구도를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대선이 온통 네가티브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의 진영논리가 판을 치게 되니 합리적인 주장이 마타도어 당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무조건 좌-우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철지난 색깔론이나 따지고 있고, 그것으로 공방하다보니까 실제 재벌개혁같은 것은 어떻게 하며, 복지는 어떻게 할지, 무너진 기회의 사다리는 어떻게 다시 만들지, 양극화는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미 대선의 중심에서 비껴 나가버렸습니다.

아주 통탄할 노릇입니다. 하.....

좀 서론이 길었는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안철수가 규제프리존에 대한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가 신자유주의, 반노동으로 덤탱이 씌우기를 당했는데, 그에 대해서 합리적인 접근을 해보자라는 뜻으로 쓰는 것입니다. 안철수가 말하는 "규제는 완화하고 감시는 강화한다"라는 말은 사실 대단히 상식적인 발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를 푼다라고 하면, 일단 마타도어부터 하는 것에 대해서 참 걱정스럽습니다. 저 또한 "얼씨구 비행소년 신자유주의자가 된 것이냐"라는 마타도어를 받을 각오를 하고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이런 딱지치기 참 무섭습니다. 글 하나 쓰는 것 가지고, 참 많은 걱정을 하면서 이런 긴 사족을 넣고 시작을 해야되니 말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상식적으로 접근해보자라는 것입니다.


1. 규제와 억강부약의 관계

규체철폐라는 말이 나오면 진보진영에서는 일단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소리부터 지르고 봅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겅 보고 놀란다는 표현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거꾸로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규제를 또는 규제'만' 강화하면 억강부약할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그래프를 하나씩 보여드리겠습니다. 개발로 그렸다고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너그러히 봐주시길....

                                        [그림 1]


그림에서 x축의 규제의 정도는 규제에 대한 사회적합의와 특히 법적인 장치를 말합니다. y축은 강자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에 대한 억제라고 합시다.

흔히들 보통 진보는 [그림 1]이 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있는데, 단적으로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래[그림 2]을 보기 전에, 규제가 전혀 없을 때의 상황과 규제가 수도 없이 많을 때의 상황을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편하실 것입니다.



                                              [그림 2]


잘 아시다시피 규제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을 할 수 없습니다. 무조건 돈많으면 장땡입니다. 따라서, 시장 독점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작은 기업이 아이디어와 실력으로 관련 시장에 들어가려고 하면, 돈많은 대기업이 단가를 낮춰서 판매를 해버리면 땡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갑의 횡포도 저절로 생겨납니다. 한번 금수저는 영원한 금수서, 흙수저는 도저히 뚫고 나갈 길이 없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규제가 무수히 많으면 좋으냐? 아이러닉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규제가 많을 때에도 강자가 유리한 것은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그 규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변호사나 회계사, 그리고 관련 전문가들을 동원해낼 수 있는 대자본가(대기업, 강자)는 그 규제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결국은 만들어 내지만, 그렇지 않은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청년실업가들은 그 규제때문에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을 해볼 여럭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논외지만, 제가 FTA를 반대하는 이유도 이것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국제법이나 관련 FTA 법 조항에 대한 법률/통상 전문가들을 살 수 있는 큰기업에는 FTA에가 대단히 유리하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중소기업이나 일반 국민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규제가 너무 많으면 재벌들이 현상유지를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지언정, 실제 성장에 가장 중요한 혁신(innovation)이 일어나는 일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찬가지로 기회의 사다리가 생기지 않습니다.


2. 한국의 규제의 형편


제가 작년 여름에 한 일주일 정도 중국 센젠에 들렸다가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센젠(Shenzhen)은 홍콩 바로 위에 있는 중국 4대 도시중에 하나인데, 지난 20년간 어마어마한 발전을 한 곳입니다. 인구가 현재 2000만 정도가 된다는.... 하여간 거기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에서 벤쳐 IT가 가장 발달한 곳이 센젠이고, 단적으로 세계에서 드론을 가장 많이 만드는 곳이 센젠입니다. 한국에 와서 지인들과 마치 신사유람단이 되었던 그 썰들을 이야기를 하다가 발견한 것이 현재 IT 관련 업종에서 일하는 선후배들은 다들 한두번씩 센젠에 다녀왔더군요. 제가 원래 이공계출신이라 제 지인들이 다들 그쪽 계통에 있습니다. 대기업에도 많지만, 또 상당수는 벤쳐에서 일합니다. 그 썰들을 풀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이 벤처가 성장하기 어려운 이유중에 하나로 규제가 너무 많아서 아이디어가 있어도 사업을 하기가 어렵다라는 식의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 북미나 중국에서 크게 발전하고 있는 Fintech 같은 것은 한국에서 전혀 꿈을 꿀 수가 없습니다. 바이오? 드론? 로봇? 인공지능? 글쎄요.
 

한국의 중소기업법이나 공정거래법들은 - 제가 정확하게 다 읽어보고 이해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라 조심스러운데, 주변에서 관련 전문가들이 하는 것을 주워들어보면 상당 부분 기형적인 행태를 띄고 있다고 합니다. 재벌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생긴 시장왜곡이 있으면, 그 시장왜곡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법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임시방편으로 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론 관련 집단의 로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기존의 있던 것에 무엇인가 또 다른 임시방편을 덮어씌우고 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결국엔 규제를 위한 규제에 의한 법들만 가득하게 되었다라는 푸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제가 길게 말했는데,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시면 알겠지만, 규제의 수준이라는 것 또는 법이라는 것은 어딘가에 가장 최적이 되는 지점이 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을 누구나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억강부약을 최적으로 할 수 있는 만큼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무조건 규제만 많이 만들어 놓다 보면 억약부강이 되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기술의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른 4차산업같은 것을 하려면 기존의 법만 쌓여 있는 상태에서는 앞으로는 시대를 쫓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림 3]

최적의 규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리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규제를 풀자라는 소리가 나오면, 무조건 아 저거 또 신자유주의 논리, MB 아바타, 박근혜정권의 하수인. 이렇게 마타도어하기 시작하면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정권을 잡으면 그 캠프의 성격상 친재벌-반노동 정책에 가장 열열히 앞장설 (물론 깜빡이만 좌측으로 키고) 사람은 문재인입니다. 지금 캠프에 삼성장학생들과 삼성출신으로 꽉 채워놓고, 최근에는 최종보스인 홍석현까지 알현하고 승인받고 온 문재인이 무슨 짓을 하던지 열심히 빨고 있는 사람들이 안철수보고 MB 아바타니 뭐니 하면서 공격하는 것을 보면 기가 찰 일입니다. 무슨 집단 정신병도 아니고...

그런데, 꼭 민주당 지지자들이 아니더라도 정의당이나 사회당, 녹색당들의 좌파들도 마찬가지로 좀 생각해봐야할 것이 이것이라고 봅니다.

저 [그림 3]을 보시면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나옵니다. 정책지향점을 만들고 싶으면, 최적점 X로 가기위해서 과연 현상태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건전한 토론이라고 봅니다. 규제철폐에 경기를 일으키고 욕만 한다고 해서 개혁을 만들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각개 각분야와 시장에서의 현실은 어떤 부분에서는 [그림 3]의 A 이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B이기도 할 것입니다. 좀 더 실증적인 분석을 해야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현재 많은 분야에 B에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봅니다. (아마도 미국은 많은 분야에서 A의 위치일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과 한국의 규제에 대해서 비교하는 것도 조심해야겠죠.)

그런 과정을 거쳐서 현실이 A라고 인정하면 규제를 더 만들고, 현실이 B라고 합의가 되면 규제를 풀어야지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펴보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3. 규제만큼 중요한 것은 감시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규제가 아무리 좋게 만들어져 있어도 감시가 소홀하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여태까지 대한민국 경제사범들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왔습니다. 이런 상황에 어떤 규제를 새로 만들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국 또 대기업만 승자가 될 뿐입니다. 규제와 감시는 경제 성장, 그리고 혁신(innovation)의 양날개 입니다. (이런 혁신이 기회의 사다리와 양극화의 극복의 시작입니다.)

한마디로 감시기능이란 규제를 어겼을 때 크게 댓가를 치루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정한 감시 체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공정성장법에 크게 찬성을 했습니다. (안철수식 재벌개혁에 대해서는 http://theacro.com/zbxe/5313428 와 http://theacro.com/zbxe/5230954 을 참고하세요.)  공정성장법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실질적으로 독립적 경제 검찰 역할을 할 수 있게 그 기능을 대폭으로 강화하고, 징벌적손해배상을 크게 강화한 것등등의 내용이 있는데, 기본 뼈대가 바로 감시기능의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규제는 풀어주되 감시는 강화하자"라는 안철수의 말은 합리적인 말임과 동시에 일관성(따라서 진정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안철수가 규제만 풀자고 이야기를 했다면, MB 아바타x100이라 불러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규제를 풀자고 이야기를 하기 훨씬 이전에 감시를 어떻게 강화를 하겠느냐를 이미 먼저 이야기를 하고 국회에 법안 발의까지 해놓은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안철수에게 MB 아바타, 친기업, 반노동이라는 말은 마타도어입니다.

도대체 안철수 이외에 누가 이런 감시 법안을 선제해서 발의를 한 적이 있습니까. (참여연대도 그동안 자신들이 그렇게 원하던 방식의 법안을 안철수가 시도하고 있는데, 지지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국민의당이라는 제 삼당이 없었으면 이런 법안들이 국회에서 논의가 가능했겠습니까.
그만큼 진정성이 있는 국회의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참고로 예를 들면, 김영란법이나 신해철법은 국민의당이 없었으면 양당 체제하에서는 입법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다들 눈치보고 미적미적 대다가 한동안 계류되어서 폐기되기 직전의 위험한 상황에 안철수가 나서서 (제 삼당의 균형을 이용해서) 밀어부쳤기 때문에 통과될 수 있었습니다.
현재 규제프리존 이야기때문에 말이 많은데, 과거에 국민의 당에서 이야기한 것과 안철수가 이야기한 것들을 찾아보시면 알겠지만, 이것을 박근혜 정부식의 규제프리존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안철수는 오래전부터 공기업 민영화따윈 같은 것은 반대한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고, 의료영리도 막겠다고 이야기했으며, 규제프리존도 환경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과거에 MB때 규제를 풀기전에 감시를 먼저 강화해야 된다고 말했다가 안랩이 국정조사를 두번이나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국민의당에서도 의료분야에 대해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성명을 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 초에 규제프리존이 국회에서 거부되고 나서 후반기에 새로 기재부에서 바꿔서 국회에 제출한 내용에는 의료민영화 부분은 삭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로 바뀐 안을 제가 찾아본 바로는 그런데, 만약 잘못 알고 있다면 수정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현 계류중인 규제프리존 법안을 무작정으로 찬성한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그 대상이 되는 바이오, 태양광, 친환경 자동차, 드론, 바이오의학, 3D 프린팅, 전기차... 등등 그 해당 산업에 대한 규제는 분명히 최적점이 있는데, 살릴 분야는 살리고 아닌 분야는 규제프리존 이야기에서 빼던지 하는 논의를 하는 것은 훨씬 더 생산적입니다. 심상정도 충북에 갔을 때 바이오 관련해서는 규제프리존을 찬성하는 공약을 말했던데, 이러는 것도 일관성이 없는 것 아닙니까.


4. 마무리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일단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대선의 한복판이기에 나온 이야기지만, 어쩌면 이 글의 논지는 이번 대선의 핵심 공방과는 크게 상관없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던지 4차산업을 이야기하고 그에 관련된 개혁 과제나 경제성장-복지 정책에 대해서 논하게 된다면 한번은 거쳐가야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을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때를 위해서 이 글을 써놓고 있습니다. 특히 진보 좌파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그때는 제발 진영논리로 접근하지 말고, 상식과 합리적인 입장에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발전해야하는 지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드립니다.

물론 안철수가 집권을 해야지 이런 논의가 가능하지, 문재인이 집권하게 되면 뭐, 시종일관 좌우싸움만 하다가 끝나게 될 것이라 보여 기대도 안하지만 말입니다.

쓸데 없이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