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링이 때로는 나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럼에도 그 편리함, 논쟁에서의 유리함을 알기에 자주 사용한다. 진중권은 나꼼수를 비판하면서 그들을 "음모론자"로 레이블링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나꼼수가 과장이나 과도한 추측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을지 몰라도 음모론자들은 아니다. 적어도 선관위 디도스건을 보면 그들이 오히려 사실에 가깝게 추정했던 건 아닌가? 그때 진중권은 놀고 있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음모론자로 몰아가면 논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쉬워진다. 그래서 진중권도 레이블링을 시전 중이다.

여기 새로운 레이블링이 하나 등장했다. 런닝맨들이 주구줄짱 노빠 딱지 붙이기 놀이에 열중하는 것에 반대급부일까? 그건 아니라고 보인다. 사실 아나키님은 노빠/런닝맨 대립에 별 관심이 없는 분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분은 갑자기 왜 아크로에 수구들이 득실거린다는 말을 갑툭튀하셨을까? 

아마도 그건, 이 위중한 시간에, 제주도의 자연경관을 발파하는 이 시점에도... 노빠 욕하는 글만 가득한 이 아크로의 게사판 글이 한가로와 보였기 때문일거다. 노빠? 그래서 뭐 어쩌라고? 노빠들도 제주도 해군기지에 반대 하잖아! 근데 너네들은 뭐냐? 노빠잡기 놀이 하느라 이 시간에 관심 1g도 안보이는 건 너무하지 않냐? 왜 그런지 알아? 너네들이 수구라서 그래!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이 있다. 아나키님이 수구 세력(군부, 환경파괴, 그리고 재벌)과의 전선이라는 것을 일차적 과제로 놓고 다른 모든 것을 부차적 과제로 돌리는 일차원적 기준점을 상정하고 있듯이 상당수 런닝맨들은 노빠라는 악마와의 전쟁을 일차적 과제로 상정하고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 과제로 돌리는 기준점을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일차원적 기준 이라는 공통점.

이렇게 일차원적 기준을 세우고 그 이외의 세력을 다 적들로 레이블링 하면 심리적 평온이 찾아 온다. 저들은 악이고 우리는 선이니까. 강용석같은 악당도 적들을 공격한다면 한 번쯤은 돌아볼 여유도 가지게 된다. 악당을 공격하는 악당은 필요한 악당이니까. 어쩌면 개과천선하여 선인이 될 여지도 있으니까. 실제야 어찌되었던 마음은 평온하다. 

그러나 실재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노빠도 다양하고 런닝맨들도 다양하다. 강정마을을 해군기지로 만드는 것에 찬성한다고 해도 그들이 다 재벌세력들은 아닌 거 처럼 나꼼수를 지지한다고 해도 그들이 다 노빠들이 아니고 음모론자도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수구란 말은 이렇게 일차적 기준만으로 모든 것을 판정하는 마음의 자세에 대해 내려야할 판정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아직도 한 가지 기준만으로 피아를 나누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을 수구라고 임명하겠습니다.

물론 아나키님이 수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동시에 노빠들을 수구라고 불러서도 안된다. 다만, 노빠는 무조건 적이라고 부를 때, 강정마을에 관심없다고 수구라고 부를 때,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를 뽑지 않으면 빨갱이라고 부르는 그런 마음의 자세는 수구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