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전통을 추구하기보단 개혁을 추구하는 쪽입니다. 하지만 저는 동성애라는 것이 개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역 동국통감에 대한 공민왕에 대한 비판입니다.

"완악(頑惡)한 소년들을 가까이하여 음탕한 짓을 함부로 하게 하였으며, 술 주정을 부려 때도 없이 좌우(左右)를 구타하였다. "

국역 동국통감 공민왕기

보통 명군이었던 군주가 타락하게 되면 여색과 술은 기본에 저런 남색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때나 지금이나 민초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5개라고 생각합니다.

1. 은냥 한개와 하다못해 밥 한끼(경제)
2. 적지않은 땅을 얻거나 하다못해 송곳이라도 꽂을수 있는 땅(토지)
3. 나라를 지킬수 있는 하다못해 자신을 지킬수 있는 힘 (국방)
4.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지혜와 하다못해 자신이 배우고 배워서 싸우지도 않고 머리를 써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지혜(교육)
5. 백성들이 병들지않고 하다못해 자신이 병들지 않고 1년이라도 더 살수 있는 것(의료)

이 5개가 과연 동성애보단 덜할까요?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저는 항상 늘 이런 말을 합니다.
"동성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잘살고 우리가 땅을 가지고 우리가 힘을 기르고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오래 살아하고 또한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머리를 모아 이걸 극복할수 있는 것인데 동성애가 그것보다 중요하냐?"  라고요.

저렇게 동성애니 뭐니 하는데 있어서 특히나 악용되는 것에 있어서 저것에 가중되는 돈과 토지와 힘과 머리는 한두푼이 아닌 여럿입니다.
보통 동국통감의 경우는 기존 삼국사기나 고려사보단 좀 진일보했습니다. 물론 조금 앞서갔을뿐이지요.

물론 저건 조선왕조 시각에서 써서 공민왕에 대해서 저런 평을 하긴 하나 사실 몽골같은 유목민 입장에서도 동성애라던가 족내혼은 긍정하는 입장은 아니죠(여긴 동성애보단 일부다처제를 중시) 그래서 소손녕이라는 양반이 고려는 본시 신라에서 일어났다고 한 것도 고려왕조의 가계도가 너무 엉망이고 동성애라던가 족내혼같이 산라의 풍습을 이어받았으니 그런 말을 했겠죠. 물론 서희 대감이 이걸 반론을 했다지만  소손녕이라는 그 양반 말도 신라의 그 이해할 수 없는 풍습을 고려가 일부 받아들인 것만봐도 이해가 가죠. 

더욱이 동성애의 경우는 정치적으로 악용을 할 경우 간신배들이 꼬일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죠. 고려든 조선이든 항상 문무신료라는 것이 있고, 더욱이 동성애의 경우는 "애"니깐 이것은 사감 즉 감정이고 그것을 정치력으로 악용하다보면 "지혜"라는 것을 갉아먹기 쉽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자제위같은 동성애 집단은 능력에 따라 정상적으로 등용하는 것이 아닌 귀족들 중에 혹은 동네에 잘생기고 칼잘하는 인간들을 뽑기 때문에 뿐만 이들이 정사를 잘하면 얼마나 잘하고 능력을 발휘하면 얼마나 발휘할까요? 
이성애를 들먹이나 이성애의 경우도 예를 들어서 "왕은 여색을 경계하고 여왕과 왕비는 남색을 경계하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고려사엔 무비라는 여자가 있습니다.

"총애(寵愛)하는 폐첩(嬖妾)인 무비(無比)는 안에서 일을 주장하여 뜻에 맞추고 뜻을 이끌어 번갈아 가며 서로 오염한 미탕을 부리니, 간사스러운 말만 분분히 떠오르게 되고 바른 말은 소절( 絶)되어 변란(變亂, 정중부의 난을 칭함)이 연곡간(輦 間)에서 생겨도 끝내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것이 어찌 그 두려워하지 않을 바를 두려워하고, 그 무서워할 바를 무서워하지 않는 까닭에 그러함이 아니랴. 또 화란(禍亂)의 처음에 한 사람도 목숨을 바친 자가 없었음은 더욱 가탄(可嘆)할 일이로다."

고려사 의종기

저는 동성애든 이성애들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합니다. 동성애는 저런 자제위를 낳고 이성애는 의종의 애첩이자 고려시대 요녀로 알려진 무비와 같은 인물을 낳게하는 것이죠.

늘 말하지만 사감에 따른 사상을 제도로 허용하기 보단 앞으로 시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세상은 더 고도화되고 전문화되는 상황에서 그것에 걸맞는 사상을 들이는 것도 좋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저 자제위나 무비의 이야기는 더 살펴봐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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