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손석희는 CEO 홍석현의 의도를 이제에서야 눈치 챈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익히 알았으면서도 더 큰 것을 이루기 위해 그를 감수하며 JTBC에 뛰어든 것일까. 아니면 이제에서야 감추고 있던 발톱을 드러내는 JTBC를 받치고 있는 자본 삼성을 상대로 '모두가 동의하는 교과서 그대로의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이 순간 불퇴전의 각오와 결의를 스스로 다지고 있는 것일까.

이른바 홍라희 음모론에서 본다면 슬프게도 JTBC 뉴스룸은 집권 시나리오의 하나의 도구였을 뿐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헤집고 다닐 때, 세월호 때와 마찬가지로 손석희 앵커의 언론인으로서의 각별한 사명감에 감동하면서도 일각에서는 갸웃거리기도 했었다. 그것은 언론인 손석희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뒷그림자를 향한 것이었다.

손석희 앵커가 JTBC 뉴스룸을 맡았을 때 나는 이미 ‘손석희를 영입한 삼성의 의도’를 짚은 글을 쓰기도 했지만(물론 그 의도를 나는 무조건 나쁘게만 보지 않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인조차 ‘쓰임새 있는’ 도구로만 여기는 삼성이라는 대한민국 최대의 대기업의 ‘가벼운, 한없이 가벼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운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한없는 슬픔을 느낀다.

물론 영입될 때 손석희가 충분히 각오하고 오늘의 상황을 충분히 예상한 것이겠지만, 그 예상한 바의 현실 앞에서 언론인 손석희는 대기업의 압력과 횡포에 맞서 '모두가 동의하는 교과서 그대로의 저널리즘'의 원칙을 자신을 기꺼이 던져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JTBC

[앵커브리핑] '시청자 여러분께'

손석희 입력 2017.03.20     


뉴스룸의 앵커 브리핑. 오늘(20일)은 저희들의 얘기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공적 영역이지만 사적 영역이기도 합니다.

사적 영역이면서 공적 역할을 한다는 것은 경험으로 볼 때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광고료로 지탱하면서도 그 광고주들을 비판한다든가, 동시에 언론 자신의 존립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치권력을 비판한다는 것은 그 정도에 따라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제 생겨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언론사로서는 비판과 생존의 함수관계가 무척 단순해서 더욱 위험해 보이기도 하죠.

지난 몇 년간, 대기업의 문제들, 그중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희 JTBC와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믿고 있는 특정 기업의 문제를 보도한다든가, 매우 굳건해 보였던 정치권력에 대해 앞장서 비판의 목소리를 냈을 때 저희들의 고민이 없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예외 없이 커다란 반작용을 초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널리즘을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언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이런 고민은 시작됐을 것이며, 언론인들은 때로는 좌절하기도, 때로는 그 좌절을 극복하고 살아남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저희들이 생각하기에 언론의 위치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중간에 있으며 그 매개체로서의 역할은 국가를 향해서는 합리적 시민사회를 대변하고 시민사회에는 진실을 전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과서적인, 뻔한 얘기 같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좌절로부터 살아남는 목적이고 명분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몇 번인가에 걸쳐 언론의 현주소에 대해 고백해 드렸던 것은, 고백인 동시에 저희 JTBC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주말부터, JTBC는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의 입길에 오르내렸습니다.

가장 가슴 아픈 건 저희가 그동안 견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던 저희의 진심이 오해 또는 폄훼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명확합니다.

저희는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모두가 동의하는 교과서 그대로의 저널리즘은 옳은 것이며 그런 저널리즘은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을 위해 존재하거나 복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나 기자들이나 또 다른 JTBC의 구성원 누구든. 저희들 나름의 자긍심이 있다면, 그 어떤 반작용도 감수하며 저희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을 지키려 애써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비록 능력은 충분치 않을지라도, 그 실천의 최종 책임자 중의 하나이며, 책임을 질 수 없게 된다면 저로서는 책임자로서의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