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없었다면, 우리는 '한나 이렌트'의 저술들을 '사랑이라는 참으로 아카데믹한 철학을 기술한 것들'로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박사 논문 학위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였으니까."

그런 그녀가 유태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게쉬타포에게 체포되고 프랑스로 망명을 하게 되었으며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 당하자 다시 미국으로 망명을 가는 과정에서 그녀의 나머지  삶은 '전제주의에 대한 연구'로 채워진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나온 대표적인 저술이 '전제주의의 기원'.


그녀는 '정치'와 '자유'를 통합하는 하나의 이론을 만들어낸다. 


“정치가 무의미해지면, 자유 역시 위험에 빠진다.”


그리고 만들어낸 용어가 폭민(mob).

프랑스 혁명 당시의 민중을 폭민(mob)으로 서술한 한나 이렌트의 개념은 문빠들을 그대로 관통한다.


"프랑스 혁명 당시의 프랑스 폭민은 권력을 상실할 무렵의 귀족을 어느 때보다도 미워했다. 귀족들은 권력은 상실했지만 재산을 그 정도로 줄어들지 않았다. 귀족들이 막강한 사법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에는 귀족들의 억압과 착취는 용인되었을 뿐 아니라 존경받기까지 했다. 그런데 귀족이 억압과 착취의 특권을 상실했을 때, 폭민은 그들이 국가 통치의 아무런 실질적 기능을 담당하지 못하는 기생충과 같다고 느꼈다. 억압과 착취가 증오의 주된 원인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기능을 수반하지 못한 부는, 그것을 묵인해주어야 할 이유를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참기 힘든 것이다.”


노빠나 문빠가 이 땅의 실질적 지배층이면서 부를 독점하는 새누리당 및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지지자들을 극도로 증오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에 나오는 문구를 인용하여 서술하자면, 박빠로 대변되는 신민들(subject)은 충성을 발휘, 그들이 만든 , 영남패권주의로 불리는 황제의 왕국은 기초가 튼실하고 그 튼실한 기초에서 나오는 부를 독점했으니까.



첨언하자면, 내가 과거 강준만의 '강남좌파에 대한 비판'을 '당파성에 의한 것으로 강남좌파를 비판하면 웃는 것은 성북동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한 이유이다. 강남좌파의 해악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강남좌파는 '부의 독점'에서 기생되어 나온 파생물에 불과하니까. 그 파생물을 아무리 비판해봐야 '부의 독점'의 본질에의 비판에는 도달하지 못하니까.



IMF 이후에 한국은 '부의 독점'이 심해졌다. 그리고 그 것을 시정해야 할 노무현 정권부터 박근혜 정권까지 시정하기는 커녕 '부의 독점'을 부채질함으로서 정치가 무의미해졌으며 그 결과, 신민들이 만든 탄탄한 황제의 제국은 오히려 해제의 위기에 직면했다.


초점은 '폭민(mob)이 만들어낼 정권이 정치를 유의미하게 부활시킬 것이나?'하는 점이다. 만일 그렇다면, 부의 독점은 해체되고 우리나라는 진일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결코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려스러운 것이다.


요약하자면, 정치의 무의미성은 지속되고 박빠라는 신민들이 만들어낸 황제의 제국의 해체를 대체할 것은 전제주의의 상징인 폭민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일찌감치 노무현 정권은 '시민 독재 정권'이라고 규정한 바. 그 '시민 독재 정권'보다 더 지독한 '전제주의적 정권'이 들어설 위기가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부의 독점의 해체가 아니라' '부의 해체'를 몰고올테니까.


한나 이렌트가 말한, "전체주의로 묶을 수 있는 고리로 소외된 대중(폭민, mob)에 대한 의존, 이념의 사이비 과학화, 운동의 영구화, 총체적 테러의 지배"는 지금 문재인과 친노 그리고 문빠라는 폭민의 양태와 아주 같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대한민국의 특이점인 '학습효과가 없다'는 것에 비추어볼 때 과거에도 그랬듯, 향후 5년 간 광란의 시대를 거쳐가도 그로 인한 반성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주 : 상기 글 중 인용 부분은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에 대한 소개와 간단한 견해 /한나 아렌트 (이진우·박미애 옮김),『전체주의의 기원』, 서울: 한길사, 2006./양진규"이며 첨부파일로 첨부했습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