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반적으로 들 수 있는 포퓰리즘에 대한 지적은


다수의 중서민층 편에 서서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 하고, 이는 남미나 남유럽 몇몇 국가들의 몰락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다.


일것이다.

즉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방법에서 일방적으로 상부층 운동장의 것만 빼앗아서 하부층 운동장을 메우려하면 운동장 자체의 높이는 전체적으로 낮아질 수 밖에 없다는 논리일 것이다.


하지만 위 지적에서는 북유럽 몇몇 국가의 사회분배 시스템 사례는(높은 세율과 전반적이고 보편적인 재분배) 이야기 되지 않는다.

여기에 남미와 북유럽 두 부류의 시스템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던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역시나 귀차니즘이 발동하고 내게 그 주제에 대한 관심은 있으나 열정이라고는 1도 생겨나지 않으므로 <다음기회>로 미룬다.


아무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부층에 다수의 약자가 몰려있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구조)

상부층에 소수의 강자가 기득권의 <강력한 힘으로> 뿌리박고 있는 상황이 연출될 수 밖에 없다.

현상은 그렇다.

이재명은 확실히 분배의 논리쪽에 중심이 있어 보인다.

성장의 극대화에 (오히려 상부층의 역량을 기반으로 좀 더 효율적인 성장을 끌어낼 수는 없는가) 는 좀처럼 큰 관심은 없어 보이는데

이 부분에 이재명이 내놓는 입장은 이렇다.


생산이냐 분배냐의 양자택일의 시대는 지났다.

1. 분배에 기초한 내수경제의 활성을 기반으로 하고

2. 그 기반 위에서 자유시장 논리에 의한 성장동력확보 정도의 의미로

<생산적 복지>  <성장적 분배>를 주장하는것 같다.


박정희의 국가주도 인위적 경제개발 정책은 분명 유효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경제논리였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국한 됐어야 했다.

불행하게도 비정상적으로 탄생된 사회의 상위계층들의 욕망과 박정희의 정치적 야욕이 적절히 컴비네이션을 이루어

비정상이 고착화 되버린것이 우리 사회의 비극일것이다.


단 한번도 <역사적 심판>이 - 민족적이든지 정치적이든지 경제적이든지 - 이뤄지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내가 이재명에 주목한 대목이 그 이유이다.


2.
한그루님이 지적해주신 화장실전후의 문제는

'이재명의 주장자체가 포퓰리즘이라기 보다 그 주장을 어떤 이유로

(다수 여론의 반발등에 의한 비현실성 또는 독단적인 모습의 전력에 비춰 봤을때 이재명의 의지자체에 대한 의구심)

집권후에 철회 할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쯤으로 읽힌다.


이에 대해 이재명은

"내게 필요한것은 대통령직이 아니라 내가 구상한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대통령의 권한이다"

라고 밝히긴 했지만,


'서는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 라는 말이 있다.

노무현의 예가 적절할텐데, 대통이전의 노무현은 위와같은 기울어진 운동장과 과도한 지역적 편파를 바로잡고 싶었을것이고

취임이후에는 무슨 이유인지 개혁에 대한 동력을 상실하고 화합의 모드로 태세전환을 했다.

아마도 추측컨데 김대중이 '통일' 에 지나치게 집착한것처럼

노무현도 '지역주의' '화합' 에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 생긴 '나는 공정하고 원칙적이면서 관대하다' 병에 걸린듯 하다.

영화 <300>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왕처럼...

이재명도 과연 그럴것인가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재명이 집권후 '태세전환'을 할지 말지 예측 해 보기 위해서 <그의 과거에 그랬던 적이 있었나> 하는 사례는 찾아볼 대목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 일상과는 거의 무관한 현 정국에서 (조롱과 비난을 받기에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무 대선이라는 이벤트에 관심을 가져 가는것 같아서 좀 자제하고 그냥 나 하던 일이나 충실히 해야겠다는 무기력감과 냉소만이

어차피 결론이다.


정치병은 내 신상에 위험하다. 클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