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보니 3.1 절이다.
엇그제 핸드폰에 문자가 와서 보았더니 작가단체에서 보낸건데
<시인 이성부 선생님 별세. 00병원. 3월1일 발인>이라고 나와 있었다.
평소 절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어쩌다 마주치면 씨익 웃고 악수를 나누곤 했는데 그것도
무척 오래 되었다.
 부음을 듣고 좀 망연해서 서가에서 그의 시집이 있나 찾아봤더니 89년에 <풀빛>에서
나온 <빈 山 뒤에두고>란 시집이 딱 한권 있는데 저자 사인도 없다. 대신 출판사의 <드림>이란 도장이
찍혀있다.

  <流配詩集 5>

   나는 싸우지도 않았고 피흘리지도 않았다.
    죽음을 그토록 노래했음에도 죽지 않았다.
나는 그것들을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비겁하게도 나는 살아 남아서
불을 밝힐 수가 없었다. 화살이 되지도 못했다.
  고향이 꿈틀거리고 있었을 때,
 고향이 모두 무너지고 있었을 때,
 아니 고향이 새로 태어나고 있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손 쓸 수가 없었다.

 

 *80년 고향 광주를 경험한 시인의 아픔을 토로한 작품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시집의 해설은
목포 출신의 걸출한 평론가이던 김현이 썼는데 편의상 그의 해설 앞머리에서 다룬 이 작품을 선택했다.
어설프게 해설하는 것 보다 시인과 시에 대한 김현의 해설 몇대목을 옮겨 적는 것이 유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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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가까운 데 있지 않고, 먼 데 있으며, 비겁하
하다는  것을 반성하며, 고향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 죽음은 바로 태어남, 새롭게 태어남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반성과 깨달음은 역사적 상처를 통해 당연히, 자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뒤집어 까발림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그 과정의 치열성과 성실성이 이성부 시의 힘이 근원이다.>

 
*  먼 바다를 그리워 하고
 가까운 죽음에 눈 돌리는 시들이 있다 ........
                                                                           
                                                                             역시 해설에 나온 시 <禹話>의 일부
 이 짧은 두행이 필자의 눈길을 끈다. 많은 걸 시사하는 대목이다. 다시 이 시귀에 대한 김현의 언급을
옮겨본다.
 <그의 대범함은 그런 시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시를 비난하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그의 시들을 새로 보면서 그가 지닌 미덕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시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