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최극빈층이 많이 없어졌다'는 세계은행의 자화자찬적 통계는 그렇다 치고 그걸 신자유주의의 장점이라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안스러움까지 느낍니다. 왜냐하면, '지구촌의 기상이상 현상 때문에 지구의 최극빈층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지구촌의 최극빈층이 많이 없어졌다'는 세계은행의 통계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죠. (자료는 생략. 인터넷 검색해보면 금방 나오는 사안임)


어쨌든 아래의 댓글에서 판단력부족님께서 하신 답변 중에서 두가지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가난을 없애고 싶다'
'신자유주의를 선택한 나라들이 번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우선, 두번째 명제를 볼까요?

'신자유주의를 선택한 나라들이 번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논리 아닙니까? 바로 양상논리입니다.(아래 댓글에서는 환원논리라고 잘못 기술했네요. ㅡ_ㅡ;;;)


양상논리의 대표적인 명제가 있죠.

'박정희는 독재를 했지만 경제를 부흥시켰기 때문에 훌륭한 대통령이다'


독재를 한 것도 참. 경제를 부흥시킨 것도 참. 그런데 훌륭한 대통령?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이 개돼지도 아니고 경제를 부흥시켜 먹거리를 해결해 줬다고 훌륭하다....?


'신자유주의를 선택한 나라들이 번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총량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라는 번영하고 있지만 개인들은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2015년 대한민국 1인당 GDP는 2만 8천 달러. 두명의 자식이 있는 가정의 경우 그 가정의 수입은 1억이 넘어야 합니다. 그래야 중산층이 됩니다. 아크로에 계신 분들 중 자녀가 들인 경우, 가계 수입이 1억이 넘는 분 계신가요? 수도권 봉급자의 월 평균 봉급이 200만원이 채 안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신자유주의의 위험성을 간단하게 정규분포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림-007.gif

위 정규분포들의 가로축은 소득, 세로축은 개채수 . 각 곡선의 면적은 비슷합니다. 그리고 파란색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중산층이 두터운 이상적인 사회입니다. 그런데 지금 소위 '번영한 나라들'은 이 곡선이 파란색 --> 주황색 --> 하늘색 --> 보라색으로 진행 중입니다. 파레토의 법칙인 2:8 사회를 넘어 1:9의 사회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추황색, 하늘색 그리고 보라색은 쌍봉이 되겠죠. 양극화 현상 때문에)



2. 1:9의 사회를 넘어 0.1:9.9의 사회로 진행된다고 해도 우리는 그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사회적 룰로 합의를 본 이상은 말입니다. 그런데 '가난을 없애고 싶다'라는 판단력부족님의 주장은 인문학적으로 아주 훌륭한 생각입니다만 그 주장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그 것은 바로 '결과의 기계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조차도 '가난을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가난을 없애고 싶다'가 논점이 된다면 저는 이 것은 '결과의 기계적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므로 반대 입장을 견지할 것입니다.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시작점의 평등'입니다. 그래서 '시작점의 평등'에서 경쟁의 결과, 가난해진다면 그건 인정해야지요.


운이 나빠서 가난해질수도 있고 머리가 나빠서 가난해질수도 있으며 또한 방탕한 생활의 결과 가난해질수도 있으니까요. 단지, 어떤 이유 때문에 가난해졌든 그 가난한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최소한의 경제력을 확보해줄 의무'는 우리 모두에게 있겠죠. 이는 마치, 전장에서 부상 당한 아군이, 그 부상 당한 아군은 분명히 전투력에 마이너스가 됨에도 불구하고 그 부상 당한 아군을 전장에서 죽이지 않고 전투력이 감소되더라도 끝내 구출하는 것과 같은 것이겠죠.


지금, 한국 진보/좌파들이 신자유주의를 공격하는 부분 중 가장 잘못된 부분은 바로 '결과의 기계적인 평등'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반박하면서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작점의 평등'까지도 부인하는 것이 현실이고요. 아무도 진실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경제적 프로파겐더들'이 외치는 공허한 주장만 경제판을 휩쓸 뿐이죠. 이는 마치, 정치판에서 영남1류, 호남1류는 다 사라지고 영남2류, 호남2류가 아사리판을 만드는 것과 아주 같습니다.




저는 '가난을 없애겠다'라는 구호가 인문학적으로는 아주 훌륭하지만 실천적 의미에서 이런 구호를 외치는 정치인이 있다면 '저 놈 미친 놈 아냐?'라고 비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시작점의 평등'을 외치는 정치인이 있다면 적극 지지할 것이고요. 제가 친노나 문재인을 비판하는 이유이면서 거꾸로 '사회적 이동성'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공정사회를 주장하는 안철수를 지지하는 이유입니다.


딱, 브라질의 룰라 정도면 될겁니다.


"행복해지기를 두려워 말라"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