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200미터 반경 안에 편의점이 세 개와 슈퍼마켓이 한 개 있다. 나는 슈퍼마켓을 주로 이용하는데 내가 매일같이 두어개 이상 마시는 제로칼로리 보리음료가 백원이 싸기도 하기 때문이지만 다른 편의점들과는 달리 슈퍼마켓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느낌은 아마도 카운터에서 계산만 할 뿐 상품의 입고부터 출고, 그리고 재고처리 하다 못해 상품들 디스플레이까지 본사가 결정하는 편의점과는 달리 세세한 것까지도 신경을 써야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중간업자들과의 협상 어떨 때는 다툼도 일어나는 것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편의점에 가면 '편의점 주인'과 '손님'이라는 경계가 뚜렷한 역할분담이 있고 그 두 경계에서 발생하는 대화조차 거의 없는 반면 슈퍼마켓에 가면 예외없이 동네 아줌마 또는 동네 노인들이 와서 수다를 떨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편의점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이 슈퍼마켓에는 하나 있는데 그 것은 외상값을 적어놓은 칠판 때문에 살아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 칠판은 매일 내용이 바뀌는데 외상을 한 사람 이름과 외상값을 적어놓았다가 외상값을 갚으면 그 내용을 지우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번은 음료수를 마시다가 내 기억으로는 몇개월동안 바뀌지 않았던 것 같은 내용이 칠판에 적혀 있었다.


"저 분..... 몇개월 동안 외상값 만오천원을 안갚은거예요?"


슈퍼마켓 아줌마는 고개를 칠판 쪽으로 돌려 내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을 보고는 분.명.히. 고개를 다시 내 쪽으로 돌릴 때는 약간 상기된 얼굴이 되더니 툴툴거리며 말했다.


"어휴~ 저 진상. 정말 손님 끊을 수도 없고"


슈퍼가게 아줌마가 말하는 진상 손님은 외상을 져놓고 다음에 와서는 물건을 사고 외상은 외면한 채 그 날 살 물건값만 치루고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3개월 여가 지났는데도 외상값을 갚을 생각을 하기는 커녕 어떨 때는 슈퍼마켓에서 한참동안 수다를 떨고 간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는 기적적으로 외상값을 갚는데 며칠 있다가 또 외상을 지고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반복을 해왔다는 것이다.


슈퍼아줌마가 짜증난다는 듯 열변을 토하자 내가 달래듯 말했다.


"외상진 손님들은 다시 오지 않고 다른 가게로 간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저 손님은 계속 오시니까 외상값을 떼먹지는 않을거 같네요"


그러자 슈퍼아줌마가 주먹진 한손을 다른 손 손바닥을 치며 이렇게 말한다.

"어디 외상값을 떼먹어? 죽을려고. 내가 이래도 예전에 한가닥 했었다고요"


슈퍼 아줌마는 강원도 출신이다.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투표했다고 했다. 호남 모지역 출신인 남편과 함께.(지역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모지역 출신 중에 슈퍼마켓하는 분이 적으니 신상털이 소재로 씌일까봐이다. ^^ 매사에 조심) 나는 슈퍼아줌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슈퍼 아줌마 부부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맞게 투표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왜냐하면, 노무현 정권 때 당시 여당인 열리누리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이유가 자영업자들이 새누리당에 몰표에 가까운 투표를 했으니까. 당시 노무현 정권에 대한 자영업자들의 원성은 상상을 초월했다. 물론, 박근혜 정권은 이 슈퍼마켓 부부의 바램과는 달리 노무현 정권 때보다 자영업자들을 더 힘들게 만들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런 기억이 있었으니, 경기 부양이야 말로 이 슈퍼마켓 부부에게는 가장 합당한 정치적 이익일 것이고 박근혜에게 투표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맞게 행동한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 들어서 자영업자들이 더 힘든 상황에 처해지기는 했지만 최소한 슈퍼마켓 아줌마는 자신의 투표 행위에 대하여 후회는 커녕 자부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슈퍼마켓 아줌마를 보면서 속으로 '정신 승리 오지시네'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슈퍼마켓 아줌마의 자부심은 최순실 사태가 터지자 산산조각이 났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음료수를 마시러 슈퍼마켓에 가면 최순실 사태를 방송하는 뉴스를 보면서 '어머', '저런' 등의 감탄사가 연발되어 나온다. 그리고 박근혜에 대한 성토가 쏟아져 나온다.


보다 못한 내가 한마디 한다.

"아줌마. 저 보도 중 적지 않은 부분이 과장된 것일거예요"


박근혜의 무능함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박근혜 탄핵과 언론 개혁 중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언론 개혁'이라는 입장을 가진 나로서는 뉴스를 보면서 혈압을 올리는 슈퍼마켓 아줌마가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동풍.


"아니, 어떻게 저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느냐고요? 뚝 짤라 과장된 것이 반이라고 하더라도 그 나머지 반이 일어날 수 있는거예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지금 발생했고 그 것이 위법사항인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어처구니 없는 일'임은 사실이니까.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박근혜 게이트에 대하여 그 아줌마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박근혜 탄핵에 이은 최순실 청문회까지 내가 그 슈퍼마켓에 아침이건, 점심 시간이건 아니면 퇴근 시간에 들릴 때마다 채널은 항상 고정되어 있었다.


"아줌마. 드라마 안보세요? 맨날 채널이 고정되어 있네요"

"아니, 지금 드라마보다 더 막장 드라마가 내 눈 앞에 펼쳐지는데 드라마가 문제가 아니예요"


꽤 긴 시간 동안,  박근혜 게이트 관련하여 나는 최소한 하루에 세번 원치 않는 소식을 TV화면을 통해서 잠깐만이나 보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며칠 전 출근을 하다가 슈퍼마켓에 들렀는데 TV가 꺼져 있었다.


"TV 고장났어요? 오늘은 안켜셨네요"

"청문횐가 뭔가 볼 필요가 없어요"


"아니 왜요?"

"내가 고등학교까지 밖에 안나왔지만 그래도 알건 안다우."


"뭐를요?"

"하다 못해 살인을 한 범죄자도 법정에서는 자기 자신을 위해 변호할 기회를 주는게 맞는거 아닌가요?"


"그런데요?"

"아니,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사람들 말할 기회는 줘야 하는거 아닌가요?"


슈퍼마켓 아줌마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아시리라. 인사청문회 등 각종 청문회에서 우리가 익숙히 보아 왔던 장면 아닌가? 물론, 모르쇠로 일관하는 청문회 증인들도 한심하지만 그 '모르쇠'는 비난의 대상이 될지언정 범법 행위는 아니다. 헌법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에 의하여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권리가 증인들에게는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모르쇠'를 논리적으로 파해해야 할 의무는 청문회 의원들에게 있다.


어쨌든 그 날 이후로 슈퍼마켓 TV는 켜진 적이 없다. 하다 못해 드라마를 보지도 않는다. '증인들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그 청문회'가 슈퍼가게 아줌마에게, 아마 내 생각으로는, 이중의 상처를 준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전에는 종종 나에게 '정치 현안에 대하여' 이런 저런 질문을 했던 슈퍼가게 아줌마가 그 날 이후로는 '정치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박근혜에게 투표한 것을 자랑으로 여겼던 그 슈퍼가게 아줌마가 말이다.



최순실 청문회는 이렇게 최소한 한 명을 또 정치무관심자로 돌려버렸다. 내가 꽤 오래 전에 그랬던 것처럼.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