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상>에 피카소의 자서전인지, 평전인지가 연재된 적이 있었다. 아마 70년대 말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흑요석의 두개골>인가 하는 제목이었다.

정독했던 건 아니고 그냥 눈에 띄는대로 듬성듬성 읽는 정도로 가끔 읽곤 했는데

어느날 어떤 문장이 눈에 들어와 박혔다.

'예술가가 하는 작업은 결국 하나의 고유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낸 사례는 극히 드물다. 가령 이집트 예술이 그런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경우다. 그 이미지는 이후 영원한 예술적 자산이 되어 활용된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고, 실제로 저런 의미였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이해하는 예술의 본령이랄까, 그런 생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문장이었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기존 상식과 쉽게 통용되는 상징들을 깨부수고, 새로운 상식 또는 상징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는 것. 결국 창조적 도전이자, 파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모든 예술이 순수하게 새로운 창의로만 구성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엄격하게 말해서 진정한 창조란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이라는 생각도 한다. 즉, 인간에게 허용된 창조란 기존에 이미 존재하지만 아직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관계를 엮어내어서 형상화하는 것이지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술적 작업이란 도전이자 파괴라고 본다. 기존에 통용되는 상식과 상징을 거부하는.

예술이라는 한정적인 영역의 이슈로 얘기했지만 인간이 하는 정신적 작업 그 결과물 가운데 가치있는 것은 모두 이런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깨시민들이 맨날 죽고 못사는 노짱님 그리워요, 눈물이 납니다 등등의 싸구려 쉐리프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작용한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똑같은 자극에 똑같은 반응을 유도해내는 저 싸구려 상징들, 거기에 역시 정해진 반응을 드러내는 모습들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옷깃에 세월호 뱃지를 달고 등장하는 국회의원들 모습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그냥 잡다한 상징들의 거대하고 조악한 결합들. 노무현과 노랑 깃발과 역시 노란 뱃지, 세월호 리본들. 여기에는 어떤 파괴나 창조도 없다.

'더러운 잠'을 처음 봤을 때 받은 불쾌감에도 이런 요소가 적잖이 작용한 것 같다. 뻔하디 뻔한 상징적 장치들. 최순실 얼굴과 사드와 주사기가 등장하고 뒤에는 역시 뒤집힌 세월호의 모습이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연상장치들 가져다 덕지덕지 콜라주해놓으면 그게 예술이냐?

이미 권력을 잃고 추락해서 전국민의 조롱 대상으로 전락한 대통령에게 발길질 추가하는 게 도전이고 파괴냐?

그건 그냥 제작이고, 장사하는 거다. 주문자가 발주서에 적어놓은 규격에 맞춰 작업자들이 만들어내는 공장의 공정 비슷한 거라는 얘기다. 이런 방식이 무가치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그 결과물이 제품일 수는 있어도 작품일 수는 없다고 본다.

예술적 성취는 숱한 싸구려 작업과 오해 어쩌면 해악스러운 예술적 사기꾼들의 거대한 축적 위에서 어쩌다 피어나는 연꽃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러운 잠'을 끄집어내려 파괴하거나 법적 처벌을 가한다거나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런 싸구려를 허용해야 그래도 괜찮은, 정말 가치있는 결과물이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게 예술이 아니라는 얘기는 하고 싶고, 그럴 권리는 양보할 생각이 없다. 소위 예술가라는 그들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면 내가 '더러운 잠'을 보고 느낀 생각을 드러내는 것도 역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