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대중들(머리 숫자)이 열성적으로(투쟁 강도) 집권 세력(투쟁 목표)과의 싸움에 나서면 그게 혁명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나라에서 숱한 혁명이 일어났다고 봐야 한다. 중국이야말로 왕조 교체기마다 농민 봉기가 기존 권력의 숨통을 끊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그때마다 혁명이 일어난 건가?

하지만, 중국에서 일어난 그 숱한 봉기를 혁명으로 부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혁명은 단순한 지배세력의 교체가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변화의 요구가 제기되고, 이런 요구를 적극 수용해낼 수 있는 새로운 집권 세력이 등장해 권력을 쟁취하고, 이들의 집권으로 인해 다시 사회 경제적인 변화가 일어나 그것이 제도적 측면에까지 반영되는 과정을 말한다.

그런데 최근의 촛불과 탄핵 투쟁이 그런 사회경제적인 요구를 제기했나? 내가 알기로는 그런 것 전혀 없다. 오히려 촛불이 내세운 요구는 변화라기보다 기존 87년 체제의 옹호 유지에 가까웠다. 표현이 지나칠 수 있지만, 촛불의 요구만 갖고 보자면 혁명이라기보다 차라리 반동에 더 가깝다.

촛불 투쟁의 모든 성과가 바로 문재인과 더민당에게 돌아가는 것을 봐도 이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문재인과 더민당이 근본적으로 개헌에 반대하는 입장인 것도 분명하다. 개헌 자체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문재인과 더민당은 87년 체제의 유지강화를 통해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는 세력인 것은 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얼마나 실패했는지, 얼마나 무능하고 허접했는지와 별개로 87년 체제의 한계를 깨려고 노력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이념적 측면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놓고 씨름했고, 노동개혁 등 한국 자본주의의 합리성 제고라는 점에서 제기되는 의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문재인과 더민당은 거기에 분명히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이들과 지배세력 일부의 불만이 결합해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고 본다. 간단히 말해서 일종의 쿠데타에 가깝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이번 촛불과 탄핵 투쟁에서 문재인과 더민당보다 훨씬 더 가열차게 잘 싸웠다. 그런데 그 성과는 모두 문재인의 것이 되었고 안철수는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간단히 말해서 전략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싸움을 전술적으로 아무리 잘 싸워봐야 오히려 자신에게 더 큰 손해로 돌아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샘플과도 같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촛불 싸움을 외면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역시 안철수는 MB의 아바타라는 게 입증됐다'느니 하며 소위 깨시민들의 온갖 지랄발광이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하지만, 깨시민들이 언제는 안 그랬나? 애초부터 자기를 지지해줄 이유가 없는, 적군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는 지휘관처럼 아군에 큰 피해를 끼치는 존재도 없다.

이런 얘기까지는 뭣하지만, 처음 최순실 사태가 터졌을 때 새누리당 지지자들과 영남 유권자들은 멘붕 상태에 빠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30% 대 중반을 유지하던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5%대로 내려앉았다. 영남의 보수세력이 붕괴한 것이다. 보수 유권자들이 마음 둘 곳을 잃은 것이다.

안철수는 애초에 자신들을 지지할 가능성이 털끝만큼도 없는 깨시민들이 아니라, 이들 갈곳을 잃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좀더 의식하는 행보를 했어야 했다. 애초부터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더민당친노와 새누리당 누구도 지지할 수 없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요구 아니었나?

이번 최순실과 촛불 싸움은 그러한 중도 성향의 지지층을 영남 보수 유권자에게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그런 확장이 이뤄졌을 때 호남의 유권자들도 확실하게 안철수의 집권 가능성을 보고 안철수에게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국민의당 측에 전달하기도 했지만, 별무효과였다. 촛불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도저히 그 투쟁을 외면할 수 없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국회에서 탄핵이 의결된 뒤에는 광장과 길거리에 맡겨진 한국호의 운명을 국회라는 제도권 안으로 수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강조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고 국민의당은 전당대회 준비에 휩쓸려 들어갔다.

지나친 평가일지 모르지만 지금 국민의당의 정치적 정체성은 더불어민주당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친노와 결별하라는 호남 유권자의 요구로 만들어진 이 정당의 주요 인사들이 여전히 김대중과 노무현을 나란히 놓고, 노무현의 가치를 계승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다.

그래봐야 국민의당은 친노 성향이라는 점에서는 더민당을 따라갈 수 없다. 친노 원조 오리지널은 더민당이고, 그렇다면 친노 성향의 국민의당은 그 짝퉁쯤 된다는 얘기다.

하나 물어보자. 이왕 같은 메뉴라면 원조집에 가서 먹지 누가 짝퉁집에 가서 먹으려고 하나? 주변에 원조집 찾기 힘들다면 마지못해 짝퉁집도 찾기는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IT나 정보 유통이 매우 활발한 나라다. 유권자들이 손에 쥐게 될 투표용지에 더민당과 문재인의 이름을 지우고 오직 안철수와 국민의당 이름만 인쇄되게 할 마술을 부릴 재주가 없다면 지금 국민의당과 안철수는 정신차려야 한다.

잊을만하면 당 지도부가 공개석상에서 노무현 이름 읇조리는 허접한 짓 그만두고, 지금 당장 친노 좌파와의 결별에 나서라. 호남에서부터 시작해라. 아니, 친노 노무현에게 이가 갈려서 기껏 국민의당 찍어줬더니 슬슬 노무현 빠돌이처럼 행동하는데 호남 유권자들이 안철수와 국민의당 지지해주고 싶겠냐고? 당신들 같으면 그러겠냐고?

그러면서 왜 안철수 지지율 떨어진 걸 호남 탓으로 돌리냐고?

이해가 안가시나?

지금 국민의당의 문제는 다른 어느 무엇보다 정체성의 문제이다. 당의 성격부터가 애매하고 헷갈리는데 도대체 당원과 지지자들이 뭘 할 수 있나? 정체성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당 내에서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 친노 좌파 성향과 결연히 투쟁해서 승리하지 못하면 이 정당의 미래는 없다.

지금 집권이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