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프로야구 팀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져 리그(이하 MLB)에서 활약한 오간도라는 투수를 총액 180만불에 영입했다. 그 오간도 투수의 한국 프로리그(이하 KBO)에서의 활약 예상은 '낙관과 비관' 등 전망이 엇갈리지만 유명세로만 친다면 그동안 한국 프로야구 팀들이 영입했던 투수들 중 가장 높다. 그러자 독립구단이어서 거액을 주고 이런 선수들을 데려오기 힘든 넥센의 한 팬이 뉴스 기사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한국도 사치세를 도입해야 한다"


사치세. MLB에서 각 프로야구 팀에 제한시킨 연봉 상한선이다. 한국 프로농구나 프로배구 등에서 실시하는 샐러리 갭이 같은 의미로서 MLB의 각 팀은 로스터 40인에 든 선수들의 연봉을 제한선 이상 지불할 수 없으며 제한선을 넘으면 일종의 벌금을 물리는 것이 사치세이다. 


'악의 제국'이라고 불리는, MLB를 대표하는 양키스 구단의 경우에는 사치세로 지불할 금액보다 우승을 할 경우 생길 기대이익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번번히 사치세를 자주 내는 팀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빅 마켓 구단과 스몰 마켓 구단, 그러니까 기업으로 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으로 흔히 균등경쟁세(Competitive Balance Tax)라고 한다.


이 균등경쟁세의 효과 여부를 다른 프로 종목인, 예를 들어 프로축구에 대입하면 그 실효성을 알 수 있다. 그 것은 바로 영국의 프로축그리그인 프리미어 리그(EPL)과 스페인 프로축구리그인 프리메라 리가(SPL)이다. EPL의 경우 중계수입권을 협회가 전부 관장한 후 일정한 기준에 의하여 구단들에게 분배한다. 반면에 SPL의 경우 각 구단이 독립적으로 중계수입권을 가진다.


그 결과, SPL의 경우에는 두 팀, 바르셀로나와 레얄 마드리드가 거의 모든 시즌 순위 경쟁에서 1위 및 2위를 독점하고 있는 반면에 EPL의 경우에는 최소 네 개의 팀이 모든 시즌 치열한 순위 경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전세계를 기준으로 할 때, EPL의 시청률이 SPL의 시청률보다 높으며 그 높은 시청률에 의한 수입의 차이도 크다.


이 EPL과 SPL의 예를 다시 MLB에 대입한다면 균등경쟁세는 결국, 제도적으로 팀 간의 경쟁의 균형을 유지시켜 그로 인한 파이를 키우겠다는 것으로 '성장분배'가 지배하는 미국에서 예외적으로 '분배성장'을 추구하는 몇 안되는 사례이다.


그렇다면 한국 프로야구 리그(KBO)에도 사치세를 도입해야 할까? 그에 대한 답은 위에 인용한 댓글 뒤에 다시 달린 댓글이 대답해준다.

"한국에는 사치세 도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


맞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올해 FA(Free Agent) 자격을 얻어 삼성에서 기아로 이적한 최형우 선수는 4년간 총액 100억으로 계약했고 또한 삼성에서 LG로 이적한 차우찬 투수는 4년간 총액 95억으로 계약했는데 그 계약을 액면으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해년마다 FA 계약 시에 불거지는 '이면계약' 또는 '세전 금액이냐? 세후 금액이냐?'라는 의혹은 한국 프로야구 팀들의 운영 상의 투명성이 없다는 방증 중 하나이고 따라서 구단 운영의 투명성이 담보되는 사치세는 한국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이런 한국 프로야구 구단들의 운영 상의 불투명성이 한 해 800만 관객들(연인원이 그렇고 실제 한번 이상 야구장을 방문한 사람들 기준으로 치면 800만에 훨씬 못미치겠지만)과 매주 월요일만 빼고 프로야구 중계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은 이런 불투명성을 암묵의 동의를 한 후 '엔터테인먼트'라는 명목으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즉, 부정부패 소지에의 묵인 내지는 소극적 동의. (뭐, 그 중 나도 한사람이기는 하다만 ^^)



KBO에 사치세가 도입되려면 먼 훗날의 이야기겠지만 어쨌든 사치세라는 이름의 균등경쟁세는 '경쟁의 균등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안철수가 이야기한 공정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며 내가 언급했던 메리토크라시이다.


그리고 이 경쟁의 균등성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헌법 제 119조

제 1항: "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기본으로 한다 
제 2항: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헌법 제 119조는 '시장에서의 자유와 평등'을 규정한 것으로 오랜 기간 동안 보수 자유주의자들(흔히 신자유주의자들)과 진보진영 간의 논쟁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보수 자유주의자들은 제 1항에 명시된 자유, 그리고 진보진영은 제 2항에 명시된 평등을 우선하여 논쟁을 했다.


사실, '자유와 평등의 우선순위'는 오랫동안 인문학의 최대 쟁점이었는데 최근에는 '평등 우선 순위'로 논쟁이 정리되는듯 하다. 그리고 헌법 제 119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자유와 평등의 연결고리를 중요시 하여' '실제적으로는 평등 우선을 판결하였다'. (논쟁의 줄거리 및 헌재 판결의 대략적인 내용은 여기를 클릭)


내 개인적으로는 사민주의에 지지를 보내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쟁은 딱히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생존의 문제라는 측면에서 경쟁은 필수적이다. 잔인한 이야기 같지만, 경쟁력이 없는 개체는 도태되는 것이 종족 유지의 최우선 과제이다. '동물의 왕국'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는 것들은 바로 '이런 경쟁력이 없는 개체를 도태시키는 장면의 영상화'이다. 초원의 사자들은 결코 젊고 힘센 초식동물들을 노리지 않는다. 늙거나 어디 다쳐서 활동이 부자유스럽거나 또는 갓 태어난 초식동물을 먹이감으로 노리는데 이 것은 경쟁력이 없는 개체는 도태되어야 한다는 자연의 법칙이고 그런 자연의 법칙을 백수의 왕 사자들 역시 순응함으로서 전체 생태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당연히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 그러니 경쟁력 없는 개체는 도태되어야 하지만 경쟁력 없는 개체도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시키도록 사회적 안전장치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경쟁력 없는 개체를 도태시키는 룰이다. '경쟁력 없는 개체를 도태시켜야 전체 생태계가 안정된다'는 자연의 법칙을 한국 경제에 대입한다면, 인위적인 경쟁의 법칙, 그리고 그 경쟁의 법칙이 평등하지 않다면 그 생태계, 즉 한국 경제는 도태된다는 것이다.


내가 동종교배를 낳는 영남패권을 비난하고 평등의 가치를 자유의 가치보다 우선으로 하는 이유이다. 경쟁은 필수적이지만 경쟁의 결과물이 최선이기 위해서는 자유보다는 평등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속된 말로, 동일 출발선에서 '요이땅'을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핸디캡이라는 것이 존재해야 한다면, 최소한 달리는 과정은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핸디캡을 가지고 출발하는 주자에게 발목에 무거운 철퇴까지 달고 달리자는 것은, 한마디로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의 다른 표현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