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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1987년,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보고 천주교 부산교구 주보 [부산가톨릭] '장대골'란에 제가 실었던 시국글입니다.

오늘 광화문 광장에서 30주기 추모행사가 열린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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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십자가 이야기 / 정중규(베네딕도)


“악은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진리 쪽에 서 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제 본성을 드러낸다. 그는 정녕 거짓말쟁이이며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다(요한 8,44).” 지난 해 중앙성당 수교회 주최로 열린 강연회에서 시인 고은 씨는 “침묵은 악”이라고 설파하였다. 왜냐하면, 침묵은 거짓을 묵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악은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온갖 거짓인 은폐, 조작, 허위, 억압, 날조, 기만, 왜곡, 밀봉, 연막 등등을 일삼고 폭력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오직 그런 것들을 통해서만 존속할 수 있는 까닭이니 그야말로 거짓은 악의 온상이다. 따라서 그에 저항하는 진리의 몸짓은 당연히 그 악의 침묵을 깨뜨리고 거짓을 폭로하는... 행동을 동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수께서도 “감추인 것은 드러나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니 어두운 데서 말한 것을 밝은 데서 밝히고 지붕 위에서 외쳐라(마태 10,26~27).”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그분의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세상의 불의(악)에게 은폐된 폭력에 대한 하느님 당신의 폭로요 고발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희생을 통해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작금의 사태는 우리를 깊은 생각에 잠겨들게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있는 공권력에 의해 오히려 살인적 고문이 자행되어져 처녀가 한 밤중 밀실에서 공적인 강간을 당하고 백주에 청년이 독방에서 무수히 구타당하며 물먹인 소처럼 되어 쥐도 새도 모르게 맞아 죽은 놀라운 사건들…. 엘리 위젤의 ‘밤’이 생각나게 하는 그들의 고통을 아프게 느끼며 “왜?” “왜?” 반문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세례자 요한의 증언, “이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계신다(요한 1,29).”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악하고도 무서운 침묵이 거짓의 옷을 걸쳐 입고서 위선적인 허세를 부리며 온 땅을 압제하고 있는 이 참담한 현실 한 가운데에 그들은 맨몸으로 뛰어들어 가슴엔 한 맺히고 온 몸엔 피멍들게 하는 극한의 아픔을 용기 있게 껴안고서 이 시대의 어린양이 된 것이다. 자신의 인격과 목숨의 죽음을 통해 십자가를 기꺼이 지면서 철저히 은폐되었던 악의 실상을 온 누리에 폭로하여 진실을 그대로 드러내 준 그들은 마치 자신을 태워 빛을 내 어둠을 쫓는 촛불처럼, 아니 갈바리아 산상에서 태양조차 낯을 가릴 정도로 온 몸이 처참히 찢겨진 채 십자가에 못 박혀 악을 수치스럽게 하신 그분처럼 그들 자신의 죽음의 놀라운 힘으로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듯(루카 10,18)” 악의 심장부 한 가운데에 심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그리고 보라! 그들의 죽음의 고발로 이 사회는 지금 분명히 보다 참된 길로 움직여 나아가고 있고, 외면적 제도 개선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에테르로 마취된 듯 잠들어 가던 우리들의 양심이 되살아났다는 점이다. 또한 어쩌면 제2, 제3의 그들이 되었을지도 모를 많은 이들이 그들로 인해 미리 구해진 꼴이 되니 이것이야말로 십자가의 신비 그 역설적 의미를 극명하게 나타내 준 것이 아닌가!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직도 이 시대의 국외자로 자족할 것인가? 점잖은 방관자로 자적할 것인가? 아니면 호화 아파트들이야 남아돌아 텅텅 빌지라도 하늘 아래 배고픈 이들이 자기 살던 땅에 천막 짓는 것은 그리도 큰 죄라 불도저로 싹싹 밀어붙이며 초전박살 내는, 멍든 처녀 가슴은 오랏줄에 묶여 옥에 갇히고, ‘기똥차게’ 잘 빠져나온 고문 형사는 오히려 활개 치며 돌아다니는, 경찰들은 학교 안에 학생들은 경찰서 안에 서로 자리 바꿔 살고 있는 주객전도의 기이한 일들이 예사로 벌어지는 이 별난 세상에 살면서 그 또한 하나의 이상한 일로 여기며 무심히 지나칠 것인가? 그럴 순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그들의 죽음을 끝없이 외쳐야 한다. 그들의 죽음을 속죄양으로 삼아 비로소 깨어나기 시작한 우리들의 양심에 그들 십자가의 씨앗을 심어 모두가 거짓을 모르는 진실의 낟알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고귀한 십자가가 참으로 부활의 영광으로 이 땅에서 피어날 수 있도록 우리들의 가슴을 야무지게 다듬어야 한다.


● 천주교 부산교구 주보 가톨릭부산 장대골 사순 제2주일 1987/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