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사회 게시판
18일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폴란드 의회는 오는 23일 1939년 2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소련군의 폴란드 동부지역 진입을 `대량학살'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할 예정이다.
폴란드는 1939년 9월1일 독일의 침공에 국토의 태반을 유린당했고 당시 위협을 느낀 소련은 폴란드 동부의 옛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영토에 자국 군대를 주둔시켰다.
소련은 그 조치가 독일군에 패한 폴란드 정부를 대신해 해당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폴란드는 소련군이 주둔하면서 저지른 여러 잔혹 행위가 대량학살과 다름없다는 입장이다.
러시아 정부는 폴란드 의회가 결의안을 채택한다면 양국 관계가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안드레이 네스테렌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17일 "그런 태도는 양국 관계에 전혀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드미트리 로고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주재 러시아 대사는 이를 폴란드 지도부의 `러시아 혐오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폴란드가 당시 상황을 대량학살로 규정한다면 17세기 폴란드-러시아 전쟁 당시 러시아 영토 내에서 저지른 폴란드군의 행위 또한 대량학살로 비난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폴란드는 지난달 말 2차대전의 기폭제로 작용한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 뒤에는 독일과 구소련 사이에 체결된 '독소불가침조약'이 있는 만큼 러시아가 당시 조약 체결에 대한 사과의 뜻을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해 러시아와 감정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러시아 지도자들은 독소불가침조약을 핑계로 러시아에 2차대전 발발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당시 국영 TV와의 인터뷰에서 "2차대전 발발 책임을 놓고 구소련과 나치 독일을 동일 선상에서 비난하는 사람들은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일 폴란드에서 열린 2차대전 발발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도 "2차 세계대전이 단순히 독-소 불가침 조약 때문에 일어났다는 식의 주장을 거부한다"면서 "이런 잘못된 사실을 대중의 의식에 침투시켜 국내 정치에 악용하는 것은 최악의 행위"라고 비판했다.
hyunho@yna.co.kr
=======================================================================================================
2009년도의 일인데, 일단 폴란드가 엄청나게 러시아를 곤욕스럽게 만든 질문을 내던졌네요. 폴란드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17세기 문제는 프랑스혁명 이전에 문제고, 그때는 땅을먹고 땅을 안먹고를 따지기 힘들다는 것이죠. 그 당시에 러시아가 점령당했냐라는 것을 봐야 하지만 점령은 안당했죠. 반면 독소불가침조약과 그로 인한 폴란드내 나치와 소련의 각각의 학살은 엄연히 점령상태에서 했던 학살이죠. 예를 들자면 우리 역시도 4군 6진 정책으로 여진족이 피해를 봤지만 이후 여진족이 중국의 동화정책으로 묶여있는데, 그 문제로 우리가 중국한테 사죄할 필욘 없죠. 고구려의 만주 정벌도 그렇구요. 무엇보다 독소불가침조약을 비난한 폴란드인들의 정치적 감각이 굉장히 뛰어나보입니다. 어찌 저걸 문제삼았는지 폴란드인들이 생각보다 굉장한 정치적 고단수들이군요. 무엇보다 소련은 이미 붕괴되고 러시아가 소련을 계승할지 안할지 문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우리가 러시아나 일본에겐 소일불가침조약, 사할린 강제 이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죠. 북한과 일본에겐 재일교포 북송 사업을 제기하는 것이군요. 동유럽 사람들이 보통의 고단수가 아니네요.


뭐 연합국들에 대해선 Western betrayal라는 말이 나돌았으니깐요..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는 뭐랄까... 체임벌린, 루즈벨트, 페탱 이런 양반들이 생각만큼 그렇게 유약하고 우유부단하니 그렇게 된것이죠. 사실 미국의 경우도 소일불가침조약 이후 진주만 공습에 대비하라고 많은 안보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정신이상자"로 취급을 했죠. 결국 정국의 불안은 잠재웠지만 그것이 긴장감을 너무 떨어트렸고, 마침내 진주만 공습을 먹으며 초기에 매우 큰 피해를 입었죠. 영국도 체임벌린때 예만 봐도 그렇죠. 전쟁없다니 뭐니 하다가 나중엔 체임벌린이 엄청나게 욕을 먹었죠. 프랑스는 아예 점령당했구요.. 다들 나치나 일제가 자신들에게 칼을 들이댈줄 몰랐죠. 죄다 기습의 형태로 쳤으니. 사실 가장 잔인한 인간들이 나치나 일제나 소련, 중국이지만 가장 뒷구린 집단들도 나치, 일제, 소련, 중국이었죠. 원래라면 루즈벨트도 최악의 대통령이 될뻔했으나 영국과 프랑스와는 달리 미국의 국력이 굉장했으니. 곧바로 태평양전쟁에서 하나 하나 만회를 했죠.
그리고 동티모르 문제는 전 민족적, 종교적, 역사적 복잡성으로 미국이나 영국같은 나라들이 개입을 할때 매우 신중하고 생각을 깊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구요. 중동, 동남아, 아프리카,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뒷수습이 중요한데, 보니까 그 뒷수습도 성공한 것도 아니죠. 예를 들자면 미국도 해방 이후라고 해서 미군정도 개입을 했는데 뒷처리를 매우 이상하게 해서 "고문관"이라는 말이 나왔죠. 그리고 무엇보다 6.25전쟁때 미국의 오판이나 그 평양철교 폭파때 미군 전투기들의 몇백번의 공습이 죄다 실패를 했죠. 대략 몇백회나 그 철교 때려부수려고 공들였는데, 다 실패했죠. 그래도 역시 구소련, 나치, 일제, 중국, 북한 5개 나라가 미국이나 영국보다 더 악랄하죠. 공산주의자들도 뭐 소일불가침조약, 독소불가침조약, 6.25전쟁 1.4후퇴, 재일교포 북송 사업 이런 것이나 다 하고 앉았죠. 문제는 누구보다 권력이나 돈을 싫어하는 자들이 누구보다 권력과 돈을 쌓는 집단들과 손잡는걸보면 해악도 보통 해악이 아니죠. 공산주의를 지탄하고 욕하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누구보다 권력이나 돈을 싫어하는 자들이 누구보다 권력과 돈을 쌓는 집단들과 손잡고 약자를 짓밟는 것이죠. 공산주의는 일찍이 국수주의와 봉건주의 속 탐욕과 권력을 붕괴시키는 즉시 공산주의는 뒷수습을 마무리짓고 없어져야할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티토가 이런 면에선 그나마 나았으나 티토도 너무나 오랜기간 장기집권을 했고, 자기가 죽고난 이후에 발칸반도가 어떻게 될것인가에 대한 비전이나 노선제시를 하는데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죠. 일단 본인이 없어지면 권력의 공백이 매우 커지죠. 그리고 티토는 항구도시 네움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게 넘겨줬습니다.
그리고 레흐 카친스키라는 폴란드 대통령이 국수주의여서가 아니라 양옆의 깡패들이 그만큼 답없는 짓거릴 골라서 한거죠. 한쪽은 바르샤바 학살이나 일으킨 집단이었다면 한쪽은 몇만을 죽인 카틴숲의 학살이 있죠. 폴란드도 아주 크게 잘한건 아닌게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지지했던 폴란드인도 많았고 폴란드내 유대인들도 소련에 가담해서 폴란드인들을 죽였죠. 이건 흡사 이런거죠. 만보산 사건이나 보천보 전투만 봐도 답이 나온거죠. 하나는 친일파들이 합세해서 벌인 것 하나는 친소파들이 합세해서 벌인 것과 같죠.
일단 동티모르 파병에 대해서 말해주자면, 동티모르 파병이나 이라크 파병이나 과거 그 키프로스 개입이나 월남전 개입이나 기타 등등은 미국이 아주 잘했다고 보기 어려워요. 동티모르 파병 이후에 동티모르나 인도네시아의 발전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하였고, 향후 이 나라에서 얻어갈 것은 크게 없었죠. 그리고 이라크는 아예 지옥이 되었죠. 그리고 그 동티모로 파병이나 이라크파병으로 재미보던 거품이 팍 꺼지자 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몰아쳤죠. 해방이후 미군정도 공산당들 때려잡는 독립운동가들 수배도 때리고 이런거나 했지 한건 별로 없어요. 그때 유행한 말이 고문관이죠. 뭐 우리도 잘난건 크게없는게 그 공산당들 잘때려잡는 독립운동가 중에 한사람이 남북협상을 했죠. 몇몇 독립운동가들은 공산당과 일시적 화합도 했죠. 미군정들이 공산주의자들 때려잡는거 구속시키고 막 이런걸로 실컷 욕하다가 정작 미군정이 그걸 보면서 굉장히 기가막힐 지경이었죠. 상관이 군 고문관이라고 후임들이 반말질로 무시하다가 나중에 그 후임들이 역으로 자기처럼 고문관이 되니 황당할 지경이죠. 서로에 대한 몰이해의 비극이었죠. 결국 이후 미군들은 물러나자 터진게 6.25전쟁이죠.
사실 6.25전쟁도 초기에 미군들은 매우 좋았죠. 하지만 년도가 지속될수록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꼬여갔죠. 1.4후퇴 이후에는 답이 없었죠. 특히나 그 평양 철교 폭파 작전때는 미군이 몇백번의 공군기를 띄워도 실패했는데 열악한 우리 공군이 이걸 성공시켰죠. 이 작전이 성공해서 북한군이 더 아래로 안내려간 것이죠. 더구나 공군의 방공식별구역이 평양까지 설정되었죠. 하지만 결국 무승부로 휴전을 했죠. 그 이후 휴전선이네 군사분계선으로 변했죠. 제 개인적으론 625전쟁때 국군이 개성이라도 얻었어야 하는데 개성조차 얻질 못했죠. 한간에는 95%나 장악해서 휴전하길 원했는데 이는 앞전에 국공내전만봐도 위험한 것이었죠. 이미 중국은 오래전부터 개입을 준비했다는게 소련 기밀문서로 발견되었죠.
미국이나 영국의 약점도 뒷수습을 잘하지 못한다는거에요. 내부갈등때문에요. 미국의 경우도 LA폭동때 뒷수습만 봐도 답나왔죠. LA폭동 이후 한미관계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죠.미국도 내부 갈등이 우리보다.더 심각했다는 것이죠. 사실 그 LA폭동때만 봐도 미국의 대선때 트럼프, 힐러리를 둘러싼 미국내 분열은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고 보면 되죠. 그 중간에 굴직하게 터진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은 미국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어줬죠.

=> 루즈벨트가 동남아를 폐쇄하니 석유를 끊었다니 뭐 하지만 이런 것도 제대로 된 조치가 아니라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는 탁상행정이란 비난을 많이 받죠. 그리고 유인설은 뭐 이것만봐도 사실은 아닌 것 같네요. 크게는 진주만 사건도 같이 봐야죠.
I must say that in all my conversations with you...during the last nine months I have never uttered one word of untruth. This is borne out absolutely by the record. In all my fifty years of public service I have never seen a document that was more crowded with infamous falsehoods and distortions--infamous falsehoods and distortions on a scale so huge that I never imagined until today that any Government on this planet was capable of uttering them.▷ 진심으로 말하건대, 지난 9개월 동안 본인은 거짓된 말을 한 적이 없으며, 이는 기록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공직 생활을 50년 동안 해 왔지만 이런 문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악질적인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 찬 나머지 지구상에 이런 문서를 낼 만한 정부가 있다는 걸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진주만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군요. 그래서 후방사수한테 말했죠. "육군 새끼들은 대체 일요일 아침부터 뭔 짓을 하는 거야?" "
ㅡ 2차대전 다큐멘터리 『배틀360』 중에서.
ㅡ 참전용사 증언
그리고 유인론이나 뭐 기타 여러가지에 대해서는 루즈벨트의 4선 저지를 위해 공화당의 토머스 듀이 후보 진영에서 주장한 것이었죠. 정작 이 주장을 들은 미국민들의 반응은 "he's fuckhead"뭐 이런 식이었죠. 다음 선거에서도 민주당 해리 S. 트루먼에게 또 발렸죠.
명분이 필요한 경우는 진주만 털리는 것보단 차라리 태평양에서 대기하다 일본 함대 수장시키고 안전하게 일본 밟으러 가는 게 더 상식적이죠. 사실 토머스 듀이 후보가 저런 말을 한 것은 뭐 소일불가침조약이 맺어진 직후부터 쳤어야한다는 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너무 잘못했죠.
=> 뭐 만보산 사건이나 보천보 전투나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습니다. 나라를 뺏긴 매우 비극적인 결과였죠. 김일성 자체가 뭐 훗날이나 당시나 친소파라고 생각하면 그렇죠. 예를 들자면 폴란드의 경우도 폴란드 국민의 일원인 유대인들이 소련에 합세해서 폴란드인 죽이고 폴란드인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대해서 지지를 보냈죠. 하지만 이것은 독일과 소련의 계산된 음모였죠. 그래서 저 독소불가침조약을 비난한 것이죠.
=> 앞전에 이미 미국도 그때 뒷수습을 매우 엉망으로 해서 욕먹었으니깐요. 그래서 미국이 그 발칸반도 문제를 문제삼아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다소의 개입은 했어도 큰 개입을 안했죠.. 발리를 자칫 발칸으로 만들텐데 당신네들이 책임질거냐는 것으로요.
미국 입장에선 자칫 동남아에도 적을 둘 상황이니깐요. 예를 들어 러시아ㄴ 중국이나 일본도 미국에겐 보통 성가신 존재들이 아니죠.
미국이 평화유지군이라는 명목으로 미군들을 급파한 것은 맞죠. 애시당초에 인도네시아도 발리 테러나 알카에다 소굴이다하면서 인도네시아의 경제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죠. 동티모르의 경우도 정정의 불안이 가중되었고, 그리고 인도네시아도 잘한 것도 없는게 그 과거 네덜란드나 포루투갈 운운하면서 뺏어야 할땅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그리고 네덜란드나 포루투갈의 분할통치도 잘한 짓거리도 아니죠. 예를 들어서 일제식민지에 대해서 북쪽은 중국이 남쪽은 일본이 통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예를 들어서 중국은 과거 당나라 역사를 운운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킨 지역 뭐 평양까지 분할해 지배하는 것이고, 우리로는 일제식민지와 더불어서 또 다른 최악의 시나리오죠. 더구나 만주족이네 뭐 중국인이네 뭐 별의별 민족들을 다 한반도에 넣은 것이죠.
그래서 미국이 동티모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대로 큰 개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칫 동남아에까지 반미감정이 증폭되면 미국의 입지가 매우 위축되죠.
뭐 그렇다고 해서 연합국들이 뒷수습을 저렇게 이상하게 했다지만 러시아(소련), 일본, 중국, 독일은 식민지 문제나 뭐 소련의 경우 연방 해체 문제나 기타 등등등으로 앞전에 연합국이라고 불릴 나라들은 더 뒷수습을 엉망으로 만들었죠. 소련이 붕괴되었는데 그곳에서 나온 나라들이 전부 개도국들이었고, 독일의 경우도 아프리카 문제를 매우 이상하게 처리했고, 나치 정권때는 뒷수습이고 뭐고 할것없이 전쟁만 일쌈았고, 일본은 어떻게든 한반도를 처먹으려고 했지 향후 뒷수습조차도 엉망으로 만들었죠. 재일교포 북송 사업이나 한일기본조약만 봐도요. 중국은 아예 그냥 식민지를 쥐어가면서 그곳에서 핵실험을 하고 사람을 죽였죠.
뭐 사실 식민지에 선발 주자들의 경우는 19세기말에 이니 제네바 협약이다 뭐다 해서 침략이나 그것과 관련된 법을 만드는데 대표적으로 스위스, 바덴 대공국,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헤센, 네덜란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프로이센, 스페인 및 뷔르템베르크 왕국이 있었고 이후 미국이 있었죠. 1882년인가 영국은 1870년에 가입했죠. 이것도 사실 러시아의 크림전쟁이란 결정타를 먹인거죠.
대략 제네바 협약이 생기기 전과 후를 볼때 러시아(소련), 중국, 일본, 나치 독일과 구 독일제국이 제일 구제불능들이었죠. 이 4개나라의 만행은 앞선 서구 열강의 만행을 뛰어넘죠. 일단 우리나란 미국이 중국이나 일본이랑 강대강해서 열심히 깨지길 바래야죠. 히로시마 원자 폭탄에 이은 몇십년뒤 플라자합의 그리고 미중 난사군도 문제까지. 사실 이건 미국의 편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게 중국이나 일본이 이제까지 우리한테 했던 만행들이 정말이지 욕이 나오죠. 근데 미국은 강대강 전략을 안하는게 문제죠. 중동, 중남미,동남아에 개입해서 상황을 이상하게 만드니까 문제죠. 6.25전쟁도 이전에 미군정이나 이후 미군도 크게 잘한건없죠. 1.4후퇴 이후때 미군이나 신탁통치때 미군정이나 하. 러시아, 중국, 일본 3나라만 이제 몰락시키면 좋은데, 근데 문제는 해방기때 중국이나 소련은 전쟁으로 엉망진창이 되고, 일본은 패망했는데 우리에게 가장 절호의 기회였던 해방기를 너무 엉망으로 만들었죠. 가령 중국이나 일본이 엉망이거나 잉여일때 부강했을때가 고려초였죠. 반대는 고려말, 해방기였죠. 그러고보니 고려말이나 해방기는 공통적으로 "국론분열"이라는 것에 있군요.

앞전에 체임벌린의 큰 잘못을 처칠은 수습했어야 하걸랑요. 물론 전 처칠보단 애틀리 수상을 더 좋아하지만
뭐 처칠의 경우는 당적이 여러번 왔다갔다했고, 그리고 자신만의 정치적 견해나 이런 것이 불안정한 사람이었죠. 그래서인지 1945년 총선에선 참패를 당합니다. 처칠측에선 애틀리 총리의 포퓰리즘 때문에 이겼다고 하는데, 제가 볼때는 그 겁쟁이가 된 것은 이전에 당적이 여러가지였고 그로 인해서 보수당의 고정표가 이탈한 것도 있겠죠. 자신만의 어떤 정치적 노선이 우리가 생각했던 처칠과 다르게 흔들흔들했고, 당의 배신자란 소리도 들었죠. 이후 1950년에 또 패배하고 1951년에 가까스로 이겼죠. 반면 애틀리의 경우는 자신만의 정치적 노선이 안정화가 되었고, 그대로 1길로 갔죠.
정치/사회게시판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