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무신정권의 전횡을 폭로하고 그 폐단을 고발하고 있다. 이제현은 오언절구의 시를 인용하여 주먹바람[拳風], 즉 무신의 완력이 의정부를 장악하는 공포정치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낸다. 이러한 현실인식 태도는 무인정권의 폐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게 한 것 같다.

그는 예전에는 우리나라의 문물이 중국에 필적할 만큼 융성하였으나, 근래에 산중에 가서 장구(章句)나 익히는 조충전각(雕蟲篆刻: 수식을 일삼는 것)의 무리가 많은 반면 경명행수(經明行修: 경전공부와 심신수련)를 하는 사람의 수효가 적게 된 이유를 바로 무신의 난에서 찾고 있다.

곧, 학자들이 거의 다 무신의 난이 일어나자 생명 보존을 위하여 깊은 산으로 찾아들어 중이 되는 이가 많았다. 그래서 문풍(文風)이 진작되는 시점이 되어도 학생들이 글을 배울 만한 스승이 없어 도피한 학자였던 중들을 찾아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무신집권기가 초래한 반문화적 폐해를 단적으로 밝혀준 좋은 예일 것이다."

디게 이걸로 조선왕조가 고려사를 비난하는데 참고를 많이했고, 이 양반은 조선왕조에서 사대부에서 최승로,얀향, 정몽주와 더불어서 손꼽히는 인물로 알아주는데, 반론을 하자면
일단 최충헌 이전까지는 무신정권이 부작용이 많아도 우리 민족사에서 꼭 나쁜 해만 끼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탱자탱자 놀면서 칼든 인간들을 종으로 버린 의종이나 고려 문벌귀족만 봐도 그리고 반란 진압을 자기 손으로 하지 않고 몽골에게 SOS친 고려 원종만 봐도 답이 안나올 지경입니다.

고려원종만 봐도 답이 나오죠.
"1274년 원나라의 매빙사(媒聘使)가 남편이 없는 부녀자 140명을 요구하자 결혼도감(結婚都監)을 설치하고 민간의 독녀(獨女)와 역적의 처, 종의 딸 등을 보내니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결국 삼별초가 옳았던 것이죠.그리고 이전 무신정권은 최충원 일가가 제일 나빳습니다. 이유는 왕을 4번이나 갈아치우고 몇십년간 전횡을 저질렀으니깐요. 이전에는 천민출신이 최고 지도자가 되었고,  그것이 이의민이었고 그 망이 망소이의 난도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라는 말을 했는데 그걸 이의민을 뜻한다는 역사학자의 말도 있었죠. 사실상 나라에서 권력의 공백기가 어느 정도는 생겨야지만 이런 민중봉기도 일어나는 것이죠. 당시 백성들 입장에선 자신들의 어려움을 표현할 방법은 반란 말고는 없습니다. 지금처럼 민주주의가 정착된 시절도 아니였구요. 

고려왕조 역사상 최악의 왕이 충혜왕이었는데, 석학이라고 불릴 이제현은 어디 숨어있었죠. 물론 공민왕을 옹립한 공로는 있으나 문제는 신돈을 골상학으로 판단하는 골때리는 시각을 가져서 답이 없었죠. 이제현의 말을 너무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참 많아서 답이 없네요.

그리고 "그는 예전에는 우리나라의 문물이 중국에 필적할 만큼 융성하였으나, " 이 말도 웃긴게, 무신정권 이전에 의종이나 문벌귀족들의 하는 짓거리들을 보지 않은 것이죠. 그때 우리나라의 문물이 중국에 필적할 만큼이라는 말을 쓸 필요없고, 중국이란 말을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네요. 그래서 고려의 불편러를 이제현이라고 하는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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