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인구센서스 결과 개신교가 신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종교로 밝혀졌다.
2005년 통계에서 천주교의 비약적인 성장이 주목을 받았지만 천주교 내부적으로는 이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두배가까이 성장을 했으면 미사참석자수가 늘고 성당을 증축하거나 신설 성당이 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천주교 자체 평가에서는 그 원인을 노인들이 집에 있을 때 조사원이 방문하면 가족들 종교를 자기 기준으로 대답을 햇기 때문에 고령자가 많은 불교와 가톨릭이 약진했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보다 가톨릭 신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인데 그에 비례하여 뻥튀기도 늘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개신교가 신자가 늘었다고 하지만 목사들이나 교단들은 기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회 신자수와 헌금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현장과 교단 통계에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체 종교인구수가 줄어드는 탈 종교화 현상을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 조사가 잘 못되었는가?
아니다
이번 조사는 인터넷 조사를 실시해서 젊은층이 많이 참여를 하고 1인가구가 늘어난 사정등으로 과거와 같이 집안 전체 종교를 한 사람이 대답하던 경향에서 개인 각자의 응답율이 높았기에 좀 더 현실적이 된 것이다,

이 조사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가톨릭은 강력한 중앙집권식이다,
모든 것을 바티칸이 정하고 다음으로는 주교협의회에서 결정하고 최종 교구에서 정책을 집행하는데로 모든 성당이 움직인다,
책자 하나 발간하는데도 교구의 허락이 필요하고 선교활동 역시 승인이 필요하다,

불교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중간정도 되는 시스템이지만 주요종단인 조계종과 주류를 이루는 사찰은 중앙집권적이다,

개신교보다 100년이나 일찍 들어온 천주교가 개신교보다 일제시대 이후 내내 교세가 뒤떨어지고 1500년의 역사를 가진 불교가 이제 개신교에 추월당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면 더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
여러 통계에서 확인 되듯이 종교행사에 참여하는 숫자와 회수가 개신교는 최소 월에 한번 불교는 1년에 한번 천주교는 6개월에 한번이라고 할 정도이다.
1인당 헌금액수에서도 차이가 엄청난다,
역동성에서도 차이가 많다,

개신교는 선교사를 2만명 이상 보내고 있지만 천주교나 불교는 천명을 넘지 못한다,
국내 국제 구호 ngo의 대부분이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의 일천한 기부문화 풍토속에 저 먼나라 사람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후원을 하고 기부를 하는 단체가 일정수준까지 오르기위해서는 활동 무대가 필요한데 교회는 그것이 가능했고 천주교나 불교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개신교와 천주교 불교의 차이가 왜 이렇게 났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개신교 국가인 미국의 힘이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고 말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막연한 이미지일뿐이다,
먼저 미국 못지 않게 한국의 천주교를 지원한 프랑스는 국민의 90%가 천주교인이며 미국의 천주교와 개신교의 비율은 6:4정도 혹은 어떤 통계에서는 5:%이다.

그리고 네비우스 정책으로 일컬어지는 자립정책으로 인하여 미국의 지원 없이 자력으로 교회당을 건립하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이 이미 일제시대에 많이 일어났다.

지금 수도권을 비롯한 도심지의 대형교회의 건물 그리고  시골마다 있는 작은 교회를 유지하고 확장시키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개신교 교회의 선교는 우리 사회 깊이 뿌리박고 있기에 인터넷의 개신교 혐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수가 늘어나는 상황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 차이는 중앙의 통제냐 아니면 개교회 단위의 자발적 행위냐에 있다는 생각이다,
이점은 같은 개신교라도 구제사업에 집중하고 사회참여를 활발히 하면서 중앙집권적인 구세군이나 성공회 기독교 장로회  같은 교단의 성장이 제자리 걸음이라는 데에서도 확인이 된다,

한마디로 개신교의 성장은 자본주의의 논리를 그대로 따랐기에 가능한 것이다,
두번쩨로는 중앙의 통제나 획일적이 아닌 각 교회 개인단위의 자율적인 정책과 행정 포교 방식 그리고 자유롭게 설립할수 있는 선교단체등의 결과물인 것이다,
개신교 교단은 아주 느슨한 조직체이다
그래서 때로는 물의를 일으킨 목사에 대한 제재가 무용지물이 되기도하고 무질서하고 난립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월 100만원도 안되는 수입에도 불구하고 개척교회가 십년을 버티기도 하고 도전도 하는 것이다,

아울러 천주교의 경우 성당은 교구청의 것 신부님은 4년 5년단위로 바꾸어지고 이런점에서 우리성당이라는 개념이 약하다,
불교는 아예 교적 개념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비하여 개신교는 우리 교회 우리 목사님 이런 개념이 강하기에 결속력과 헌신도가 높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느냐하면 우리나라 역시 모두 잘살고 발전을 하려면 각자 자발적으로 자율적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중앙의 통제나 규제를 철폐해야하고 각 개인이나 집단이 가진 역량을 동원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것을 개신교의 성장이 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개신교의 부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방식도 부정적인 면이 있고 그렇다고 불교가 개신교만큼 문제가 없을까?
천주교는 돈 문제에 있어서는 개신교보다 훨 깨끗하지만 그 동네 문제도 만만치 않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인데 시야를 좀 넓게 가지고 방법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시대가 변하면 생각도 변하고 진보역시 과거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웃기는 것이 개신교 보수 교단이 늘 하는 소리가 개혁주의라는 소리인데 여기서 개혁주의라는 것은 500년 전 칼뱅이 주창한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500년전 것을 지키는 것이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이 코메디
이런 코메디를 한국의 진보 좌파도 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