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가야하므로 짧게 쓴다)


안철수의 공정성장론은 흙수저, 금수저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사회적 유동성(social mobility)을 높여 기회를 균등히 주자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 문제화 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청소년층, 그리고 아래의 통계에서 보듯, 농촌자영업자가 많은 호남에서 높은 지지율을 받아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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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실은? 뭐, 언론이 새누리당 vs. 더불어당으로 갈려 있는 마당에서 목소리가 묻히니 안철수의 공정성장론 자체를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의 샌더스 열풍을 생각해본다면 안철수의 공정성장론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언론에서의 소수 포지션 때문이 아니라 공정성장론 자체를 젊은이들이 의심하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보는게 더 맞다. 바로 메리토크라시의 배반이라는 것이다. 기회가 균등히 주어진들 흙수저를 탈피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의심은 진보진영에서 한 때 주장한 '부모의 사회적 계급이 자식의 사회적 계급을 결정한다'면서 '사회적 계급의 세습화'를 비판했던 것과 같다. 물론, 실천적 의미에서 본다면 그나마 안철수의 공정성장론이라도 실천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지만 정책 지지는 또 다른 이야기다.


링크한 기사에도 있지만 흙수저/금수저를 깨려면 기회평등을 넘어서는 결과평등을 실천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제도가 필요하다. 물론, 나는 사민주의를 지지하고(그렇다고 딱히 사민주의자도 아니다만) 한국에서 사민주의를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사민주의가 어쨌든 신자유주의보다 체제 경쟁에서 떨어진다는 것도 인정하므로 price taker 경제구조인 대한민국에서 결과평등적 정책은 대한민국 경제의 공멸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 내가 장준하장하준의 주장을 원론적으로는 맞다고 생각하지만 흔쾌히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쉽게 풀어 쓰자면, 지구가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어 그 통일된 나라의 경제체제를 결정하는 투표를 한다면 나는 사민주의에 기꺼이 투표하겠지만 각 나라별로 나위어 나라별로 체제 경쟁을 하는 현실에서 같은 투표를 한다면 사민주의에 표를 던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좀 파쇼적 발언이지만 백기완이 박정희를 일컬어 '박정희는 수만명을 괴롭혔지만 수백만명을 먹여살렸다'라는 발언(실제는 백기완이 한 발언이 아니라고 한다)에 동의한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공정성장론이 설득력이 없는 것은 미국의 샌더스 열풍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공정성장론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결과평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은 유권자들을 속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바로 내가 언급한 디테일이다.


안철수의 공정성장론이나마 실천을 해야 한다면 그 디테일을 이제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안철수는 잠적 중이고 국민의 당은 한줌도 안되는 권력, 그나마 호남유권자들이 정치적 얼리어댑터를 자처하면서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확보시켜준 그 권력을 연대니 뭐니 하면서 낭비하는 게으름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이라도 안철수와 국민의 당은 게으름에서 탈피, 공정성장론에 대한 디테일을 내놓아야 한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