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골품제

알다시피 골품제의 경우는 아무리 무예가 뛰어나고 아무리 글을 잘써도 그 차지는 왕이나 왕족들이 다 해먹었죠. 그래서 그 사람들은 당나라에 가거나 그럴 수 밖에 없었죠. 3최라고 하는 사람들과 무장인 견훤만 봐도요. 고려의 경우는 과거제로 어느 정도 최고 자리까지 오를 수 있고 고려는 비록 정상적인 정권이 아닌 무신정권때도 이의방이 무신정권의 수장까지 되었죠. 고구려의 경우도 을지문덕, 온달 장군이 평민 출신이라면 신라는 김유신,김관창,김품일 등등 다 귀족 출신인데 가야출신 귀족들이죠. 그래서인지 신라는 말기가 들어서 성골,진골, 옛 가야출신 귀족말고는 등용이 불가하니 그것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의 불만으로 반란이 일어났죠. 그래서 신라왕족 출신인 궁예뿐만 아니라 견훤도 나왔죠. 신라사를 옹호하는 사람도 저 골품제를 옹호하면 일단 욕부터 거하게 먹고 시작하죠.

2. 저 자세의 외교

알다시피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을 했는데, 사실 고구려 멸망기까진 뭐 그들의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해도, 문제는 너무나도 저 자세로 일관해 고구려의 수치인 "안승"이라는 자를 받아들였죠. 안승은 애시당초 옛 고구려의 영토를 되찾고 뭐 그런거에 관심도 없었죠. 저는 고구려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저 안승이라는 놈을 참살하고 싶네요. 한간에 답이 없는 고구려사관에 빠진 사람도 안승이 싸웠다고 하는데, 안승과 그 일당이 검모잠을 죽인 것만해도 답이 나오죠. 그래서 신라 내에서도 저 안승이나 그 일당들은 반란이나 일으킨 역도들이였죠. 웃긴게 이럴려면 애초부터 신라가 안승보고 "항복하지 말고 중국과 싸워라 안싸우면 당신 목을 치겠다."라고 투항을 거절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반면 고구려는 뭐 전 영류왕의 편을 들고 싶지만 그래도 영류왕이 시해되고 나서 당나라와 안시성전투와 각종 전투를 벌이며 민족사에 획을 긋는 전쟁을 만들며 이 저항정신은 훗날 발해를 만들게되죠. 고려의 경우는 만부교사건이라고 저도 동의하진 않으나 훗날 거란과 전투에서 거란을 거절해서 발해유민들이 거란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죠. 이건 몽골때까지 이어졌고, 몽골에게 저 자세로 일관했으나 이후 고려는 쌍성총관부를 탈환하고 기철을 참살하며 북방영토를 기존에 고려보다 더 늘렸죠.저는 이때까지만해도 공민왕이 과거 고려 태조와 고려 문종이 환생한줄 알았는데, 공민왕이 말기에 저렇게 타락할줄 몰랐습니다.
 
신라는 안승을 받아들일 정도로 북방 정책을 더 이상하지 않았으니 발해가 옛 고구려의 영토를 수복했죠. 예를 들어서 발해의 대광현과 그 부하들은 고려에 와선 충직한 신하가 되었죠. 그들은 적어도 검모잠같은 명장들은 저렇게 참살하진 않았죠. 고구려에선 검모잠을 참살하고 신라에선 고구려왕이랍치고 반란일으킨걸 보니 답이 안나오네요. 그럴려면 검모잠이나 힘을 합쳐서 부흥 운동이나 열심히 할것이고 신라도 안승같은 이런 인간에게 투항을 요구하지 말지.

3. 신라 화랑의 타락

처음에는 화랑이 상무정신이 뛰어는 집단이었으나 훗날 화랑은 타락하여 온갖 음탕한 곳이 되었죠. 초기엔 특수한 군사집단에선 말기엔 자제위급의 집단으로 변질되었죠. 관창도 나오고 김유신도 나올때 화랑은 쓸만한 부대였으나 전란이 끝나자 이 집단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났죠.

Ps. 그래도 장점이 있다면 영류태왕도 저는 성군이라고 봤을대는 볼때는 나당연합이 과연 나쁘기만 한가입니다. 연개소문이 옳으냐? 영류왕이 옳으냐?의 토론을 보면 나당연합뒤 고구려 멸망을 보면 영류태왕의 선택이 꼭 나쁘진 않겠죠. 나당연합 이전에 영류태왕이 귀신같이 당나라와 화친을 맺으면 나당연합은 무용지물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자치통감에는 이세민이 돌궐을 그렇게 멸망시켰는데, 뭐 뒤에 백제나 신라가 가만있지 않겠죠.  그리고 고려 예종께서 여진족에게 땅을 준것만 봐도 뭐 나쁘긴 할까 전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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