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71년 대선 전후의 동아일보 기사들을 정독하다 보면 DJ가 빨갱이로 몰리게 된 발언인 '예비군 폐지 주장'이 나온다. 

사실 관계를 설명하자면, DJ는 '예비군 폐지 주장'을 두번하게 되는데 첫번째 발언의 후폭풍은 어마어마해서 DJ자신도 놀랬던 것 같다. 그래서 수정해서 다시 발언하는데 그 발언은 '확인사살'.

재미있는 점은 당시 박정희는 DJ의 예비군 폐지 주장에 있던 세부항목들 중 일부를 재빠르게 정책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그 것도 두번 다. 박정희가 DJ의 주장 중 어느 부분을 정책에 반영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아마 '농번기에는 예비군 소집 훈련을 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일, DJ가 '예비군 제도 폐지'를 1971년 대선에서 주장하지 않았다면, 1971년 대선의 승리와 패배는 바뀌었을 수 있고 DJ 평생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빨갱이 딱지'도 없었거나 'DJ는 빨갱이'라는 정치적 선동의 효과는 그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게 내 판단이다.


내가 DJ의 '예비군 폐지 주장'에 대하여 주목하는 것은 두가지.

첫번째는 왜 DJ는 예비군 폐지 주장을 했을까?
두번째는 DJ의 예비군 폐지 주장을 정책으로 반영한 박정희 정권의 정책 결과, 정치적 이익은 누가 가져갔을까?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 두 개의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준 기록들은 없었다. 당연히 동원되는 것은 '역사적 추리'.


내가 DJ를 인정하는 것 중 하나인 '한국 통계는 너무 부실해서 믿을만한 것이 없다'라는 DJ의 발언. 대통령이 된 직후의 발언이었다. 연도로는 1998년이지만 설명의 편의 상 1997년으로 한다.


1997년 DJ의 발언을 1971년 DJ의 예비군 폐지 발언에 대입하면 통계적 상치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DJ의 예비군 폐지 발언으로 국민들이 얻을 정치적 이익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도시의 지식인들 - 이승만 정권 이래로 질식 단계에 이른 반공주의의 완화라는 정신적 승리 이익 및 예비군 제도 폐지로 인한 실질적 이익
호남의 지배층(대지주들) - 정치적 이익이 없음
호남의 대중(소작농) - 정치적 이익을 가져감
영남의 지배층(자본가들) - 정치적 이익이 없음
영남의 대중(소작농) - 정치적 이익을 가져감

문제는 대지주들이 많던 호남에서 자기 땅을 가지고 있지 않아 품앗이 형태의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빈민층에게는 정치적 손해.


즉, 예비군 제도 폐지는 오늘날의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대입하자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착화되는 현상을 가지고 옴으로서 호남의 빈민층에게는 기회의 손실이 발생하며 이 것은 정치적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당시, 대지주 위주의 호남과 자작농이 많았던 영남, 그리고 호남에 비하여 절대적인 면적이 커서 농지의 합도 호남보다 컸던 영남은 소작농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김해평야 등은 당연히 대지주들이 지배하고 있었겠지만 - 이 부분은 통계에서 보이지 않으니 제외... 해도 대세에는 영향이 없다고 본다) 그러니 DJ의 예비군 폐지로 인한 실질적인 정치적 이익을 본 계층이라는 것이다.


이 상황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픽션으로 구성해보자면 이렇게 될 것이다.

영남소작농 A : 예비군 훈련이 시작될 땐데... 바쁠 때 예비군 소집이라 참 번거롭단 말야.
영남소작농 B : 자네 몰랐나? 올해부터는 농번기에는 예비군 소집이 없어졌어.
영남소작농 A : 정말? 거 좋은 정책이네? 누가 만든거야?
영남소작농 B : 누군 누구야? 박정희지
영남소작농 A : 그래, 역시..... 박정희가 국민들 속을 잘 긁어준다니까?

그렇게 실질적 혜택을 입은 영남소작농 A는 농한기가 되어 똥뚜깐에 가려고 과거 신문들 중 하나를 골랐는데 그 신문의 제목은 'DJ, 예비군 제도 폐지 주장"

그리고 영남소작농 A는 똥뚜깐에서 이렇게 되뇌인다.

"북괴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예비군 제도를 폐지하자고? 이 인간 빨갱이 아냐?"


즉, 실질적 정치적 이익을 가지고 가면서도 '북괴가 호시탐탐 노리는 조국을 지키는 자긍심을 빼앗아가려는, 설사 예비군 훈련 중에 고스톱만 치다 오더라도, 그가 실직적 정치적 이익을 가지게 된 동기를 제공한 DJ는 북괴에의 증오와 맞물려 빨갱이로 각인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DJ의 예비군 폐지 발언은 그가 당시의 통계를 몰랐다면 한국의 산업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병크성 발언이고 통계를 알았다면 고도의 정치적 이익 배려를 노린 발언이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정치적 이익과 지지 정치인의 상치에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DJ의 예비군 폐지 주장'이라는 것이다.


2. 이런 정치적 이익의 상치는 율곡의 '십만양병설 주장'에서도 볼 수 있다.

물론, 율곡의 십만양병설은 '조선 역사의 3대 쟁점 중 하나'로 꼽히는 것으로 실제 율곡은 발언하지 않았다는 것과 선조실록에는 율곡의 십만양병설이 없었지만 선조수정실록에는 율곡의 십만양병설이 기록된 것을 거론하면서 율곡을 신격화하고 유성룡을 폄훼하려는 그의 추종자들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주장이 있고 '호남폄훼의 역사적 기록의 논란 중 하나'인 성호사설에서는 버젓이 '십만양병설'을 거론하며 율곡을 심하게 비판한다.


율곡의 십만양병설은 한국 역사의 기록 및 해석에서 보여주는 진영논리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이익의 상치에 대한 또 하나의 사례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산수를 해볼까?

조선 시대 인구 : 4백만 중 남성 2백만 (숙종 때 기준이니 선조 때는 인구가 더 적었을 것이다)
조선 시대 노비 : 20% (숙종 때 대기근으로 노비의 비율이 증가했다고 하는데 조선 시대 노비의 비율이 50%라는 통계도 있으니까 숙종 때의 추정인 2~30%에서 하한치를 잡는다 - 이게 또 이영훈의 식민지 근대화론의 쟁점 중 하나인데 패스~!!!)

그런데 노비들은 세금의 의무,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 따라서 군자원인 남성 양민들은 2백만 x 80% = 160만.

조선시대 평균수명 추정치는 50세(55세인가 그런데 계산의 편의를 위해 짱깨식으로 50살로 끊는다) 그리고 조선의 인구는 증가했으므로 연령별 인구의 구성은 피라밋 형태인데 이 것도 짱개식으로 종형으로 한다.

그러면 군자원 대상을 20세~30세라고 하면? 10세씩 연령층을 끊으면 20세~30세의 연령층은 20%.

따라서 160 x 20% = 32만명.

32만명 중 십만명을 뽑으니 크게 문제가 안될 것 같이 보이지만 조선의 주요 산업은 농경사회이고 노동력이 필수이며 특히 힘이 필요한 경작농업에서 20세~30세의 노동력은 인구비율보다 높게 차지할 것이다. 즉, 십만양병을 한다면 농업에 치명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십만양병설에서 누가 정치적 이익을 가지고 갈 것인가?라는 것이다. 노비들은 세금의 의무가 없으므로 십만양병을 하는 경우 세금원이 줄어들 것이고 이는 조선의 중앙정부의 세원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이다. 반면에 양반들의 경제적 비중이 커져 결과적으로는 왕권의 약화 및 양반의 세력 확충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율곡의 십만양병설 주장은 왕도국가를 지향하던 조선의 이념에 직접적인 배치가 되는데 율곡에의 비판의 지점은 율곡 추종자 vs. 유성룡 추종자로 나뉜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이익 따로 정치적 주장 따로라는 것이다.


3. 영남패권의 본산지라는 대구는 그들이 투표한만큼 정치적 이익을 가지고 가는걸까?

성급한 일반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답을 두가지로 나누어 한다면 '영남패권은 존재한다' 그러나 '대구 사람들은 그들이 투표한만큼 정치적 이익을 가지고 가지 못한다'라는 것이 통계가 말해준다.


그래도 그들이 투표한만큼 정치적 이익은 커녕 정치적 손해만 보는 호남보다는 훨씬 낫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대구 유권자들도 수도에 집중되어 있는 기형적 구조 하에서 '정치적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4. 한국 정치 발전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정치적 스탠스와 정치적 이익의 일치

그런데 솔직히 답이 없다. 왜냐하면, 한국이 유독 심해서 그렇지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유권자의 가장 큰 정치적 이익은 바로 '정신승리'이기 때문이다. 계급배반투표는 이를 입증하는 근거 중 하나다.


박근혜 지지자들과 문재인 지지자들은 각각 '빨갱이로부터 나라를 보호할 구국의 화신', '오랜 독재 정치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수호할 대리인'으로서 지지하는데 이 지지의 이유는 정치적 이익과는 전혀 관계없는 허구가 만들어낸 이미지이니 말이다.

정신승리를 하는 소피스트와 바리새인들에게 몰려 세계 4대 성인이라는 소크라테스와 예수도 죽임을 당했는데 하물려 범인들이야.


민주주의 원칙을 부정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지만 어쩌면 민주주의 제도는 인류의 영혼들이 모여 만들어낸 시뮬라르크 세계인지도 모른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여준 그 허구의 세계 말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