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그들이 믿는 종교는 불교로 제가 믿는 종교와 다르나 일단 종교를 인정하고 시작한 나라니까 고려의 입장에서
저 개인적인 글을 쓰려고 합니다.

사실 조선왕조의 헛점은 멀리 갈것도 없이 그들이 뒤엎은 고구려, 발해, 고려의 시각에서 보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
가장 먼저 조선왕조의 가장 큰 문제점

시리즈를 몇개 적으려고 합니다.
고려의 입장에서 바라본 조선왕조, 북한, 일제 그리고 신라  순으로

조선왕조를 먼저 바라보려고 합니다.

1. 도를 넘어선 절대왕정

이괄의 난의 실패라던거 혹은 임진왜란 이후 선조는 의병장, 군인들로부터 엎어버려야 할 나라였는데 하질 않았습니다. 이유는 선조라는 자는 고려에 의종을 비롯해 이후 왕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때 의병장들과 군인들이 전쟁이 끝나고 찬밥 신세를 당할대 엎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고려의 의종은 무신들을 향해서 그야말로 찬밥 대접을 했죠. 수염에 불을 태운다던가 심지어는 계급이 낮은 문신이 뺨을 때린다던가 결국 그로 인해서 무신난이 일어났습니다. 비록 무신정권은 그들이 전쟁에 싸운 공로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 정권이 끝나고 나타난 것이 바로 신진사대부였습니다. 반대로 전쟁에 싸운 공로가 명확함에도 찬밥신세를 짐에도 무신난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후자가 더 무신난때 무부들보다 더 명분이 서는데 하질 않았습니다. 이유는 조선왕조가 무신정권에 대한 공포로 이미 그 시스템을 죄다 갈아엎었기 때문입니다. 사병의 혁파나 중앙집권 등등등으로 하지만 그 와중에 무신들은 나라가 아닌 왕조를 위해서 싸우는 집단이 된것입니다.  더구나 더 기가 막힌 것은 저는 임오군란을 강력히 지지하는데, 조선왕조는 그걸 무시하고 청나라를 끌어들이고 심지어 일본과 재물포조약을 맺으며 임오군란의 주동자들을 처벌했습니다. 실제로 왕비가 거의 죽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고려라면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과거 양요등을 통해서 싸운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물론 무신정권의 폐단이 너무 컸습니다. 그들은 전쟁에 나가서 싸운 어떠한 공로도 없었고, 기껏 난이나 진압하는 수준 밖에 안되어서,  전반적으로 나라의 운영이나 특히 외교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대몽항쟁이 대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 그걸 작은 시각에서 보질 않고 큰 시각에서 봅니다. 무신정권이 붕괴하자마자 신진사대부가 떠오르고 그 신진사대부의 조상은 안향, 이제현이라는 석학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들을 중심으로 나라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그걸 위화도회군, 역성혁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왕조도 무신의 난같은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좋겠죠. 이것은 의병장과 무인들의 공로가 너무 크고 왕은 너무나도 무능했으니깐요. 물론 무신난을 차별화하기 위해서 만든 시스템의 붕괴가 우려되고 나라사정이 안좋았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신라 말기만 봐도 답이 나왔으니깐요.  더 큰틀에서 보자면 신진사대부들이 한글을 만드는데 일등 공신이었죠. 그 출발점이 고려였구요. 고구려도 고구려 태조인 추모성왕께서도 저 무능한 부여국을 뒤엎고, 대무신왕께서는 부여를 마침네 멸망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도 덕이 너무 많아 우유부단한 영류태왕을 뒤엎고 연개소문이 보장태왕을 세웠습니다. 대몽항쟁도 뭐 몇십여년의 전쟁을 벌였죠. 일제때 조선왕조들이 투항이 아니라 몇십여년 전쟁을 했더라면 어떻게 될지 모르죠. 단지 희생자는 너무나도 많이 나왔겠죠.

2. 국제정세를 읽지못한 조선

고려는 일찍이 아라비아 상인까지 연이 닿을 지경으로 벽란도를 통해 국제정세에도 밝았고, 그로 인해 코리아라는 단어가 붙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이러한 노력에 게을렀고, 결국 국제사회는 Chosun이라는 단어를 쓰지않고 Korea라는 단어를 씁니다.. Coree라는 단어도 쓰구요. 주변국은 한궈, 칸코쿠라고 쓰지만 한국이라는 명칭 역시도 삼한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쓰는 것입니다. 태조왕건 역시 삼한계승을 외쳤습니다. 이는 세종도 마찬가지죠. 또한 애시당초 거란을 비롯해 비롯한 이민족들의 움직임도 누구보다 잘 알았죠.  물론 만부교 사건의 경우는 통일 군주로는 걸맞지 않는 고려 태조의 실책이었지만 조금도 사태 추이를 지켜본 연후에 거란과 외교관계를 맺던가 했어야 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큰 틀에서 보자면 믿을 수 없는 거란보단 발해가 더 고려에 대한 충성심이 굉장해서 거란과 전쟁에서 발해 출신들이 누구보다 전장에 싸웠죠. 이후 여진족과 화친을 맺었고, 거란과 뒷탈을 생각해서인지 여진족에게 땅을 다시 돌려줬습니다. 그로 인해 병자호란같은 일은 없었습니다. 조선은 여진족에 대한 관리가 생각보다 너무 엉망이었고, 땅을 돌려주긴 커녕, 지금의 국경선 바깥으로 추방을 시켰습니다. 차별 역시 심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양에 대해서도 양이라고 하며 그들을 우습게 봤습니다. 그 결과가 아편전쟁 이후 어쩔줄 모르던 조선왕조였죠. 영국은 여진족보다 더 나은 나라임에도요. 몽골 사신을 구슬리기 위해서 고려가 그렇게 애를 쓴것만 봐도 답이 나오죠. 고구려의 경우도 만주정벌때 중원의 분열된 나라를 이용해 만주를 이용하고 말갈족과 거란족을 이용해 만주를 차지했습니다.

3. 주권개념의 희박함.

아편전쟁이 보통 시작되고 나면 조선에서도 만주를 정벌하자는 구호가 생겨야 정상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구호는 상실되고, 심지어 영국과 수교를 통해 병자호란을 일으킨 저 흉악한 청나라 인간들 중원에 한족 오랑캐 등등등과 관계를 끊어버리고 영국식 제도를 죄다 받아들여야 정상인데, 어찌된 영문에서인지 그것조차도 거절했습니다. 만주를 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정도전도 만주정벌에 찬성했잖아요? 근데 이 양반도 웃긴게 고려때는 반대했죠. 사실 정도전이 꿈꾼 만주정벌은 아편전쟁때가 훨씬 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전혀하지 않았죠. 그것을 하기 위해서 준비조차도 안했구요. 뿐만 아니라 일제와는 무려 몇십년간 싸웠어야 했습니다. 과거 몽골과 전쟁은 그 일제와 조선, 그리고 몽골과 고려의 차이만 봐도 엄청났지만 고려는 몇십년간 싸워서 부마국의 지위를 얻게되죠. 강화도 조약을 시작해서 재물포 조약과 각종 조약등으로 저렇게 무기력하게 망했죠. 부마국이고 뭐고도 없었어요. 그냥 나라가 끝났어요. 괜히 조선왕조 왕족들 비호하느라 뭐 덕혜니 이우니 하는 인간들 옹주니 왕으로 치켜세우는데, 보기가 좋아보이진 않네요. 고구려를 보세요. 영류왕이 덕은 많이 쌓았으나 그 덕이 결단력을 잡아먹어 우유부단해지자 참살당했고, 마참내 연개소문이 당나라와의 전쟁을 불싸하게됩니다. 고구려는 망했어도 그때의 전쟁 덕분인지 발해가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죠.  영토는 고구려때만큼이나 넓어졌구요. 더구나 신라나 백제는 망하지 않았죠. 일제식민지보다 더 짧은 30년만에 건국이 되었죠. 그것도 발해의 손으로...더 나아가선 그 사대주의 국가라고 욕 바가지나 먹던 신라조차도 자신들의 나라를 지켰습니다. 천년동안
그런데 조선은 그런 것조차도 없었죠.
 
4. 애초부터 왕권찬탈로 이룩한 나라

정몽주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불교의 개혁에 동참했습니다. 더구나 마지막 왕은 공양왕이었습니다. 공양왕은 궁예와 달리 반란을 일으켜 한반도를 전란으로 만든 사람도 아니였고, 궁예처럼 하루에 몇십 몇백명을 죽이는 짓거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절대왕정을 꿈꾸는 것이 웃기네요. 그래서 정몽주와 공양왕을 참살했습니다. 반대로 태조왕건은 신라의 경순왕과 왕족들을 대거 받아들였습니다.  지금도 이건 법적으로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리고 애초부터 궁예는 신라의 역적입니다. 궁예같은 자가 지금 나와서 나라를 까고 새 나라를 창조하면 지금도 저건 알짤없는 사형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라가 하지못한 것을 태조왕건이 다 했습니다. 

뭐 정몽주의 참살로 결국 신진사대부와 이성계 일가는 서로간의 큰 균열이 생깁니다. 첫 왕조부터 말썽이었죠. 1차 왕자의 난 2차 왕자의 난 등등등. 그런 주제에 무신정권이 꼴보기 싫어 절대왕정을 하는게 굉장히 웃기죠. 

요약
1. 조선왕조가 그 어떠한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공산당들은 유교를 향해서 공맹을 때려잡자니 문화대혁명따윌 일으켰지만 유교는 또 왕을 공산당 앞에서 지키자고 했지만 그것말고는 별로 큰 차이는 없음.
2. 오랑캐 운운하며 양이니 뭐니하다가 아편전쟁때 좋아하고 이때다 해서 영국과 손을 잡아야 하는데 그것도 안함.  
3. 상무정신을 나라에서 중시를 해야하는데 의병들이 더 활약을 했다는건 답이 없음. 고려라면 오랑캐 운운말고, 아편전쟁때 만주를 치고도 남음

Ps. 뭐 조선이나 고려는 늘 말하다시피 고려때 조선의 시스템이 세워지고 조선때 고려의 시스템을 하는게 더 좋았다고 봐요. 이유는 조선의 개국공신들 다수가 공민왕이 발굴한 신진사대부였고, 그들로부터 고려의 개혁이 이루어졌으니깐요. 저는 뭐 정도전 입장보단 정몽주 입장에서 봐서 왕조를 뒤집는 것은 하질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전 불교도 입장에선 보질 않으니깐요. 공맹의 이론에 따르면 우왕의 아버지가 신돈이라고 하는데, 이런 뻥을 쳐서라도 왕을 올리는건 요행을 바라는 군상들이라고 공맹에서 보고 있으니깐 좋게 안보죠. 어느 나라든 폐주나 암살당한 왕에게 성씨를 바꾸는 뻥을 치는건 사람 할짓이 아니죠. 그래서 정몽주가 신진사대부임에도 정도전 일파와는 협조를 안한거죠. 이거 도저히 눈뜨고는 못지켜보겠다 식이었죠. 정몽주가 한간에는 뭐 싫으나 좋으나 백성들에겐 정치일세라고 했는데 그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고려를 지지하지만 다른 쪽으로 지지하는데 고려 성종도 저는 재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려 성종에 입장에선 여진족같은 세력보단 송나라가 크길 바랬으니깐요. 그때문에 그 여진족에 대한 견제를 전혀 안했으니깐 중원의 질서가 너무 꼬였고, 결국 여진은 몰락했고, 그 사이 몽골이 탄생했고, 몽골에게 몇십년간 고생했죠 제가 알기론 인종시절도 막장인게 척준경이 공을 세운 왕인데 타락하던게 한순간이더군요. 뭐 저는 이때 악비라는 장군과 손을 잡고, 송나라가 고려에게 콜을 쳐서 고려와 같이 일을 유목민을 몰아내는 것에 도모하고 고려역시 그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7월에는 합문지후 후장이 이끄는 60여 명에 이르는 송나라 사신단이 금나라를 공격해 달라는 내용의 국서를 가지고 고려에 왔다고 했죠. 근데 묵살했죠. 뿐만 아니라 이전에 송나라에선 고려 사신들이 행패를 부리는데 이를 보고 한탄하는 기록도 남았다고 하죠. 사실 관계는 더 봐야하겠으니 뭐 이런 짓은 기록에 남았다니깐 이건 외교관으로써 할 짓거리가 아니죠. 송나라가 그래도 명나라에 비해서 더 괜찮은 나라인데, 꼭 저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네요. 한간에 정훈장교에 이야기에 따르면 저 송나라가 영국 먼저 산업혁명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했죠. 저 나라는 지들이 뺏고자하는 만주도 강탈당했는데, 결국 고려 성종의 말이 옳았죠. 불교도 은근히 개혁을 했지요.  

이런 것을 보면 조선왕조의 장점도 고려가 받아들였어야 한다고 봐요. 조선왕조때는 여진족을 대토벌작전으로 어느 섬에 추방을 시켰죠. 사후 관리가 생각만큼 안되어서 그렇지. 오히려 고려때 그랬어야 한다고 봐요. 그러니까 유학자나 이후 그들을 중심으로 했던 신진사대부 말을 들었어야지.
 
저는 고려 성종도 성군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불교를 좋아한다면 전 고려 성종을 성군이라고 하질 않죠. 이유는 저는 종교를 믿지만 정교분리는 어느 정도 되어야 한다고 봐요. 왜냐면 전 정치참려에 대한 과도한 독려는 전 싫어하거든요. 공적이 있는 교인들보단 공적이 없고 사고치고 뇌물먹고 교인들이 훨씬 많이 꼬이니깐요. 단 일제와 싸우기 위해 주적인 북한과의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협력을 해야죠. 확실한 것은 정도전 같은 유학자들이 고려에도 있었는데, 이들의 말이 죄다 묵살되었죠. 공민왕이 이들의 말을 잘받아들였는데, 이후 이상하게 타락했죠. 불교라는 것도 사실 뭐 종교 믿는걸 자체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세력이 워낙 컸고요. 정교분리 선에서만 했어도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불교는 불교대로 왕은 왕대로 했어야 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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