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가 굉장히 공정하다고 자부하면서 현실적인 전략으로 영남 후보론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그 전략이 실제로 실행될때 호남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혹은 그 전략이 가진 폭력성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겁니다.

인종주의자 혐의가 짙은 김두관의 토속적인 pk지역주의나, "영남 후보를 내세우면 유리하지 않겠어"라는 깔끔한 영남 후보론이나, 실제 정치적 선택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는게 중요합니다. 희한하게도 오직 영남 출신의 정치인만 연속적으로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현실은, 이 두 부류가 정치적으로는 동일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혹은, 전자가 후자를 일방적으로 리드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후자 부류의 정치적 소극성이나 수동성이, 결과에 있어서는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겁니다. 후자의 영남 후보론에 대한 암묵적 동의야 말로 영남 후보론의 중핵입니다. 정치적 의지는 약하나, 강한 정치적 결과를 낳는것입니다. 좀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사실상 나치 독일은 나치에 대한 전 독일인의 수동적 동의로 지탱되어 왔다고 할수 있습니다. 영남 후보론 역시, 소수의 pk 준인종주의자 그룹에 대한 소위 "깨어있는 시민들"부류의 동의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영남 후보론에 대한 비판을 순결한 정치적 실용주의에 대한 과도한 공격으로 받아들입니다. 영남 후보론에 대한 비판을 호남 지역주의의 피해의식의 발로로 보는 것입니다. 영남 후보론이 갖는 호남 배제의 폭력성에 대한 인식이 옅거나, 혹은 영남 후보론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의 위험성을 알지 못합니다. 사실 대선 후보로 영남 출신만 고려되는것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깨달을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이 현상의 바탕에 "호남은 안된다"는 인식이 암묵적으로 깔려있다는 것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악의적으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또한 그런 호남은 안된다는 인식이 민주당에서 호남 정치인을 비토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 역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많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아주 뻔뻔스럽게 자기를 기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깨어있는 시민들을 비판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관심사는 개혁 진영이 영남에서 세력을 확보해 불리한 지역구도를 타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동원되는 영남 후보론의 폭력성은 그들이 알바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호남입니다. 호남을 배제하는 논리가 횡행하는데도, 기계적으로 민주당 계열에게 표를 주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으로부터도 배제당하고, 민통당으로부터도 배제당한다면, 왜 호남 자민련을 만들지 않을까요? 아니면 실용적으로 민통당과 새누리당을 왔다갔다 하지 않을까요? 스스로 호구를 자처하니 아무도 구원해줄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