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대선의 시대정신 토론회 ]를 가졌습니다.

다음은 '정치권 제3지대론과 호남의 선택'이라는 발제 첫 부분입니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이른바 ‘제3지대론’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어떤 세력들이 여기 함께할 것인지, 실제 대선 판도에 미치는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 것인지가 그 관심의 초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제3지대론이 갖고 있는 문제점과 함께 그 실천적인 대안을 얘기해보겠습니다.

제3지대론은 3개의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지지기반의 한계입니다.

제3지대론이 관심을 모으고 손학규 정의화 정운찬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박원순 등 비중이 있는 정치권 인사들의 참여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현재의 정치구도가 과거 어느 때보다 유동성/가변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즉, 내년 대선이 어떤 구도로 치러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 바로 제3지대론이 성립하는 근거입니다. 현재의 정치 구도가 내년 대선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가능성을 포괄하는 장치의 하나로서 제3지대론이 거론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이런 유동성은 사라지고 결국 대선은 2~3명의 유력주자가 대결하는 양상이 될 것으로 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적 기반 자체가 그렇게 다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치인과 정당, 정치세력은 결국 특정 유권자 집단의 대리인입니다. 이런 정치 기반이 없는 정당이나 정치세력, 정치인은 결코 지속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에는 독자적인 대선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이 크게 보자면 영/호남 2개이고, 하나 더 쳐줘봐야 TK, PK 그리고 호남 등 3개뿐입니다. 이것은 지난 반세기 가량 대한민국의 정치판을 규정해온 기본 질서였습니다. 이 현실 자체를 부인해서는 논의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습니다. 이런 지역 기반의 정치가 바람직한가의 논의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렇게 정치적 기반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의 제3지대론은 어불성설입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제3지대는 이미 정치판에 등장했다고 봐야 합니다. 새누리-더민주당 2개의 축으로 운영되던 정치판에 국민의당이라는 제3세력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3자 구도는 새누리당(TK), 더불어민주당(수도권 일부와 PK), 국민의당(호남)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런 구도에서 제3지대론이 어떤 정치적 근거를 가지게 될 것인지 애매합니다.

결국 제3지대론은 유권자들의 뜻과 무관하게 몇몇 정치인들의 개인적인 욕구와 그 지지자들의 이합집산 이상의 것이 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둘째, 제3지대론은 제3지대론은 정당 정치에 대한 경시, 무시를 깔고 있습니다. 현재 거론되는 제3지대론은 좌에서 우까지 다양한 정치 성향의 대권후보들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지지층의 구성도 복잡합니다. 단일한 정당 조직을 만들어서 그 당원들의 뜻에 의해 대권주자를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호남이 더불어민주당 친노와 결별하게 된 중요한 계기의 하나가 바로 정당 정치에 대한 부정, 정치적 실패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양아치식 정치에 대한 분노라는 점을 봤을 때 제3지대론은 동일한 오류를 되풀이하는 발상이라고 봐야 합니다.

국민의당 아닌 또다른 제3지대를 만들어서 내년 대선에 임할 경우 그 후보자는 당원 주권에 근거하지 않은, 오픈프라이머리나 또다른 방식의 백만민란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는 어떤 유권자 계층을 대표하는지 분명치 않은 후보의 등장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뽑힌 후보는 경쟁력을 가질 수도 없거니와 설혹 요행으로 승리한다 해도 책임성 있는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 정치란 국민 대중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지만 그 출발점은 지지자들과의 관계입니다. 누구를 대표해서 정치를 하는지 분명치 않으면 정치적 책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친노세력이 조장한 가장 심각한 왜곡의 하나가 ‘정치란 것이 전국민의 의견을 따라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정치란 본질적으로 같은 국민들 사이에서도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고 정치적 가치관이나 지향이 다르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당이 존재합니다. 그 정당이 자기 지지층의 이해를 대변한 정치를 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전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 정당정치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3지대론은 기본적으로 성립 불가능한 논리입니다.

제3지대론이 그나마 오픈프라이머리나 백만민란까지만 가도 다행이고 현실적으로는 유력 대선주자들끼리 밀실에서 은밀한 거래와 줄다리기, 타협을 통해서 대선후보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 유권자들의 의사가 체계적, 합리적으로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겁니다.

세 번째로 제3지대론은 호남의 선택과 괴리된 논리입니다.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김영삼 나아가 신익희 등 대한민국 정통야당 60년의 정치적 자산을 이어받은 당입니다. 새누리당보다 훨씬 오랜 정치적 실패와 승리의 전통을 가진 정당입니다. 그리고 호남은 지난 몇십년 동안 이 정당의 최대 주주였습니다. 그런 호남이 더불어민주당을 거부하고, 국민의당을 지지한 것은 주식 투자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손절매를 한 것입니다.

최고의 투자 전문가에게도 어려운 것이 손절매입니다. 그동안 쏟아부었던 자산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쏟아부은 자산이 많을수록, 투자 기간이 길수록 손절매를 하기 어렵습니다. 호남이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해온 역사가 그런 경우입니다. 그런데 호남은 이렇게 어려운 손절매를 한다는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결단의 결과물이 지난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친노와의 결별이었고, 국민의당의 등장이었습니다.

정치권은 호남의 이러한 선택에 대해서 좀더 진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호남을 우상화하거나 그 선택을 무작정 찬양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정당에서 가장 오래 최대주주 역할을 했던 호남이 스스로 그런 정치자산을 내팽개치고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새로 출발하는 결단을 했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사례를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LG그룹의 IT서비스를 담당하는 LG CNS가 지난 7월 새만금에서 스마트팜 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3800억원을 투자해 23만평, 여의도 4분의 1 면적에 첨단 온실과 식물공장, R&D 센터와 가공·유통시설 등이 들어설 스마트팜 실증 연구단지를 세우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여기서 생산되는 토마토와 파프리카 등은 국내 시장에 내놓지 않고 수출하겠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농민단체의 반발을 의식한 조치였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난 9월 LG CNS는 스마트팜 사업 철회를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농민단체 및 좌파 성향 언론과 지식인의 반발이 컸다고 합니다. 전북 도의회마저 ‘LG의 농업진출 반대’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이들의 반대 논리는 결국 대기업의 골목 상권 진출을 결사 저지하는 논리와 똑같습니다. 반기업, 반시장, 반자본주의입니다.

문제는 이런 논리가 좌파 진영에게는 유리할지 몰라도 호남에게는 항상 무거운 짐만 씌운다는 것입니다. 호남이 가난한 저개발 상태로 남아있고 소외되고 낙후된 상태로 있어야 좌파와 친노 세력은 호남을 기반으로 체제 저항적인 이념을 선전하고 국회의원이 되고 대권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호남의 고통이 좌파와 친노 그리고 호남 내부에서 그들의 똘마니 노릇을 하는 좌파 지식인과 운동권, 정치인들의 행복인 것입니다. 호남의 불행이 친노 좌파의 행복, 친노 좌파의 행복이 호남의 불행과 굴욕이 되는 구조는 결코 바뀔 수 없습니다.

지난 총선은 호남이 그러한 질곡과 굴레를 벗어던지겠다고 선언한 결과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호남이 아닌 누구도 할 수 없는 위대한 정치적 선택입니다. 호남이 천재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질곡과 모순이 호남에 집약돼있고 그만큼 고통을 감당해왔기 때문에 그런 선택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3지대론은 그러한 호남의 선택을 강화하고 지지해서 승리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분산시키고 호남의 정치적 요구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호남으로서는 결코 함께할 수 없는 길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