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하기 전에 조선왕조가 고려왕조를 어떻게 했는지 보도록 하죠.

"공양왕은 폐위된 뒤 원주()에 추방되어 공양군()으로 강등되었다가 2년 뒤에 삼척()에서 살해되었다. 고려의 왕가()였던 왕씨는 이성계 세력에 의해 멸족을 당했으며, 강화도로 집결하라는 명을 받아 배를 타고 강화도로 건너가던 중 배를 침몰시켜 많은 왕씨들이 수장되었다."

삼족을 말렸다는거 중국이나 일본이 말한거 아니에요. 실제로 고려왕조에 왕씨들의 존재는 모래에 바늘 던져서 찾는 지경이죠. 그러니 그 소리가 나온 것이고요.

뭐 본론으로 들어가서 고려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합니다. 일단 한간에 있는 오해부터 풀게하죠.\


 

1. 고려는 몽골의 식민지였다.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몽골이 왜곡한 것은 고려는 몽골의 식민지였네 뭐 이런 것이 오히려 더 신빙성이 있죠..
알다시피 여몽연합군이 일본으로 들어가서 일본도 씨가 말릴 지경이었는데 태풍 한방으로 살아남았죠. 결국 몽골의 체면은 구겨지고 마침내 이후 공민왕이 몽골을 회복했죠. 중국이야  완전 씨가 말랐구요. 부마국이 아니라면 공민왕때 부마국의 지휘에서 완전히 우리가 벗어날 수가 없었죠. 뿐만 아니라 땅도 찾았죠. 태풍이 아니였을때 일본이 어떤 상황이었고 몽골에게 완전히 점령된 중국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보시면 답 나오실 것입니다. 문제는 성리학에 몰두해버린 사학자들은 이런 것에 순진하게 넘어갔죠. 이유는 일제식민지를 당하는데 너무나 무능하게 대처한 조선왕조의 책임을 저것으로 떠넘기기 위해서였죠.

2. 정중부의 난은 5.16 쿠데타와 12.12쿠데타와 같다.



그냥 이 수준의 역사관을 가진 인간들에게 묻고 싶네요.
"71년 현대사에서 우리가 의종같은 왕이 있었으며, 문벌귀족 세력들이 있었냐? 우리가 왕의 시대에 살았냐?"라고요.
당시 무신정권이 일어나기 전에 고려의 의종은 고려에서 손꼽히는 폭군이었고, 의종 옆에 문신들은 무인들보다 나이나 계급이 더 적었음에도 왕을 믿고 무인들에게 뺨을 때리거나 수염을 불태우거나 온갖 잡일들을 시켰죠. 노비들도 뭐 절반이 될거에요. 더구나 음서제이기 때문에 음서제로 피해를 봤고, 선거고 뭐고 나발이도 없었어요. 그때 뭐 체육관이 있기는 하나.

3. 최충헌은 김일성 혹은 박정희와 같은 독재자였다.



알다시피 최충헌 이전은 무신들끼리 서로가 죽이고 살리고 죽이고 살리고 했죠. 알다시피 의종과 문벌귀족세력들이 없어지니 그 자리를 차지해 무신들 피로 얼룩진 권력 싸움을 시작했죠. 이 상황만 보더라도 누군가가 이런 것을 멈출 왕이든 신하든 필요했죠. 결국 나타난 것이 왕이 아닌 최충헌이었죠. 결국 최충헌이 등장하여 이것을 안정화 시켰죠. 물론 그 역시 철권통치로 민초들따윈 안중에도 없었고, 왕은 그냥 이름뿐이었죠. 그래서 만적의 난이나 이런 것들이 일어났죠. 그의 사후 최후라던가 김준 이런 자들이 나왔죠. 더구나 위에 2번과 연결을 시켜볼때 아 최충헌이 나올법도 하구나 이런 생각이 들 지경이죠. 물론 최충헌은 왕조가 붙은 역사에서 역사상 최악의 간신배이자 역적이죠.  저는 폴리페서 즉 정치교수들이나 이런 자들이 이런 식으로 역사를 해석하니 결국 우리나라에 노벨상이니 뭐니 이런 것들이 왜 저렇게도 처참하게 적은지 알법하네요.

저는 한번 묻고 싶네요. "그 최충헌 시절은 우리나라처럼 6.25전쟁도 있었고, 4.19혁명도 있었고, 부마항쟁도 있었고, 왕도 없었고 뭐 체육관 선거라는 것도 있었고 그 체육관도 있었고 자동차도 있고 뭐 그런 것이 있었는지"
참고로 여몽전쟁은 최충헌때 일어난게 아니에요. 아들내미때 일어난거에요.

결론적으로 최충헌의 경우는 이전에 상황만 보더라도 답이 나왔죠. 그래서 저는 우리가 배우는 역사와 정치는 분리시키는게 옳다고 봐요. 그것을 분리를 못하니깐 우리나라 정치판이나 사회 전반에서 정실주의가 판을 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고려왕조는 위에처럼 저렇게 참혹하게 조선왕조에게 징벌을 당했죠. 무신정권도 툭까놓고 고려왕조의 한 역사였으니깐요. 하지만 현대정치사와 비교를 하는건 폴리페서들이나 하는 것이고, 좀 세분화시킬 필요가 있지... 그걸 최충헌은 누구 누구다 하면 답이 없네요.

그리고 왜 역사가 정실주의적 관점 즉 현대 정치사와 저 당시와 비교가 되는지 제가 설명을 드릴게요. 우리나라 국민들의 조상은 조선왕조를 혁명으로 무너트리고 새 나라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고려왕조 그리고 이후 조선왕조 속에 있던 세도정치니 뭐니 하는 정실주의적 모습들 즉 모임을 만들어 각각이 중구난방이 되어 세를 만들고 결국 해방기때는 그 모습들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결국 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선 서로 서로가 적대적이었다가 공생관계로 결국 통합을 했어도 다시 깨졌구요. 그것이 바로 정실주의의 실체지요. 소위 뭐 친목질이니 이런 것들 있잖아요. 친목질도 나중엔 커지잖습니까? 그러다 다시 깨지구요. 또 반복되구요. 그런 것이 지금도 뿌리내린다는거죠. 무엇보다도 조선왕조는 왕을 죽이고 또 왕에 서니깐 1차 왕자의 난때까진 자기들끼리 권력투쟁을 하던 고려왕조와 다를게 하나도 없었고, 아군이 어느덧 자신의 칼을 겨누게 되었죠. 그러나 다 잘했다고 하면서 통합을 만들려고 하죠. 싸웠는데 다 잘했다는 식으로 억지로 통합을 만드는게 웃기죠.


무엇보다 유교라는게 종교인지 종교가 아닌지를 밝히기 매우 힘들어요. 결국 이러한 것들이 사라지고, 뚜렷한 역사관이나 이런 것이 없으니까 고려왕조-조선왕조-일제강점기-해방기-현대사 등등 그의 세분화는 쌩까고 다 비교하다가 하나 걸려라 식으로 역사를 해석할 수 밖에요. 정실주의적 관점에서 뭘 논하려고 한다던가 이러면 탁상공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죠. 뭐 큰 문제는 탁상공론식 역사관을 깨기위해 더 뚜렷하게 밝혀줄 고고학에 대한 발전에 그 누구도 힘을 쓴 사람들이 없고, 지금도 한국에서 고고학을 하려면 한국에선 매우 열악하고 연구비도 얼마 안줘요. 고도의 노동력이 요구되는 것이죠. 더구나 남북이 분단되어서 우리가 북한에 함부로 가서 유물을 파거나 그럴 처지도 아니구요. 그리고 고고학 자체가 땅을 파고 포크레인도 동원해야 하니까 더 힘들구요. 고고학을 통해서 유물발굴 사업이 예산이 넘쳐나서 그걸 시행하면 결국 현대정치사와 전근대사 즉 왕조사와 비교하는 이야기들은 쏙 들어가요. 막말로 유물 발굴하려고 측량하고 포크레인까지 동원하는데 지리멸렬한 긴 말이 뭐가 필요있나요?

 

4.고려시절 불교는 왜 찾으라는 부처를 저렇게 잘찾을까요?


 

알다시피 지금 우리나라는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고, 부처를 믿는 것도 자유입니다. 물론 전 불교도들이 아니죠. 하지만 불교도들을 전 그렇게 크게 미워하고 싶진 않아요. 그리고 팔만대장경은 우리의 국보고 이것은 불교에 승려들이나 불교도들이 만든 것이죠. 이것을 부정하고 싶진 않으시겠죠? 그리고 불교가 어느 정도 왕권을 억누른 것도 있어요. 후고구려에 궁예는 자신을 미륵부처라고 하여 온갖 막장짓을 자행했죠. 그러자 태조 왕건이 그를 참살했죠. 태조 왕건이나 이후에 고려왕들은 그래서 미륵부처를 참칭하면 궁예처럼 된다는 교훈을 남겼죠. 뿐만 아니라 고려왕 중에는 오히려 유교를 내세워 불교를 누른 왕이 있는데 그 왕은 성종이었죠. 정작 성종은 노비들을 늘리고 불교의 행사들을 없애버려서 나중에는 후대 고려왕들이 다시 불교행사들을 복원했죠. 오히려 더 발전했죠. 물론 고려 성종도 그 노고를 통해 불교의 폐단을 개혁했죠.

 

5. 고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환단고기 추종자이며 유사학자들이며 고토회복에 미친 극우주의자다.

 

이건 성리학에 빠진 강단 사학쪽에서 이야기하는데, 고려는 그렇게 실리를 무시하고 거대한 영토에만 집착한 나라가 아니라는 내용을 제가 들고올게요.

"충선왕 : 낙타 50마리 키우는게 백성들에게 무슨 피해가 간다고 굶어죽였을까? 싫으면 돌려보냈으면 될 일을

이제현 : 글쎄요 거란의 간계를 꺾으려 한 것인지, 훗날의 사치한 마음을 막으려 한 것인지 알수 없습니다."

또 이야기를 할까하는데, 고려말기에 위화도회군에 찬성을 했던 사람은 그 유명한 석학인 정몽주였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최영 장군이 훌륭한 무인이었으나 너무나도 이상적인 고토회복에 기가 질렸던 것이죠. 물론 정몽주는 군법을 거스르면서까지 저런 선택을 했지만 오히려 고토회복 즉 만주정벌론은 이성계나 정도전이 했죠. 그러자가 조준도 기가 질려서 반대를 했죠. 조준은 이방원을 밀었죠.

그리고 환단고기는 고려때 만들어진게 아니에요. 일제때 만들어진거구요. 그와 맞먹는 역사왜곡을 보여주는 규원사화는 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거구요. 단기고사는 발해에서 만든거구요. 고려가 만든게 아니에요. 오히려 고려는 삼국사기를 편찬했던 나라에요.
그러니 그 유사학자들도 고려를 붙잡아서 어찌어찌 하지말고 저런 말을 봐야 하는 것이죠.   

뭐 그 밖에도 고려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도 있을 것이지만 뭐 그렇다고 결론적으로 고려왕조도 잘난거는 크게 없어요. 그러니 왕조가 씨가 마르는 지경이었죠. 결국 마지막엔 고려의 종교였던 불교가 말한 그 고려사도 허상 중에 허상이죠. 물론 조선왕조도 그렇게 할수 밖에 없죠. 고려왕조한테 그렇게 했던 것처럼.  


결론을 말씀드리면 결국 고려왕조는 이미 신진사대부들과 이성계로 인해서 고려의 왕족들을 누구봐도 저건 아니라 할 정도로 처참한 벌을 받았습니다. 확실한 것은 저도 홍경래의 난,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처럼 망이 망소이의 난, 만적의 난,진주민란 등등 뭐 이런 것을 부각시키고 싶죠. 정중부의 난 이런 것들 말구요. 고려 의종이나 문벌귀족 이런 것들 말고요. 하지만 고려왕조에 대한 지나친 왜곡에 대해선 오해를 불식시키고 싶다는 차원에서 이 글을 올려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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