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포츠 스타의 위력이 대단하기는 한가 보다.

이런 저런 구기 종목 관람을 좋아하는 내가 유일하게 잘 안보는 축구를 단지 손흥민 선수의 플레이를 보려고 한국과 이란의 월드컵 예선 경기를 시청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의 기대는 전반전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국 국가대표팀의 '경악할 정도의 실망스러운 경기 내용' 때문에 산산조각이 났고 그래서 TV를 껐다. 


그리고 아침 출근길에 뉴스에서 한국이 0:1로 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은 이란 원정 경기, 그러니까 이란 홈 경기에서는 42년 동안 단 한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는 설명과 함께.


42년이라면 언제부터인가? 1970년대 중반부터인데 당시 한국 축구는 동남아 축구의 강국이었던 버마(지금의 미안마 맞지 아마?)에 어쩌다 한번 이기거나, 지금은 한국에 상대가 안되는 태국 등과 맞수 정도가 되던 시절이었고 중동이 오일머니에 힘입어 아시아 축구 신흥 세력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러니까, 비록 이란 홈경기가 고지대에서 열린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이 이란 원정 경기에서 42년 동안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은 한국 축구가 그동안 다른나라와 바교해서 더 나은 발전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방증으로, 비록 신빙성에서 상당히 논란이 많기는 하지만, FIFA의 랭킹에서 한국 축구는 당시 30위권에서 40위권으로 밀려났고 과거 절대 약자였던 일본이 지금은 한국 축구의 경기력을 초월하는 것이 현실이다.


2. 그 날 저녁,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기사들을 챙겨 읽어보니 축구 국가대표 감독 '슈틀리케'에 대한 비난 기사가 홍수를 이루었다. 불소통, 고집, 변명, 오만 등등 리더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항목들을 그동안 슈틀리케 감독이 많이 보여준 모양이다. 아마, 기사들의 내용은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 비난의 이유가 되는 '슈틀리케 감독'의 발언들 중 상당수는 내가 기사로 접했으니까.


그런데 슈틀리케 감독에 대한 비난 내용이 100%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기사 내용들은 딱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바로, 내가 한국 프로야구판에서 징그러울 정도로 목도한 '순혈주의'.


그러니까 슈틀리케 감독을 비난하는 칼럼이나 기사를 쓴 기자들이 과거 내국인 출신 국가대표 감독들을 평하는 칼럼이나 기사들과 비교해 본다면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이야기다. 같은 잘못을 가지고 그들이 내국인 출신 감독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변명을 해댔던가? 똑같은 잘못을 가지고 외국 출신 감독에게는 비난을 내국인 출신 감독에게는 변명을 해대는 그 심리 바탕에는 전 국가대표 감독 허정무가 이야기 한 '국내 출신 감독이 외국 감독에 비하여 전혀 밀리는 것이 없다'라는 정말 포복절도할만한 발언의 내용이 깔려있다.


히딩크 김독이 얼마나 많은 비난에 직면했던가? 물론, 그런 비난에 대하여 히딩크 감독은 '무시하거나 정면돌파를 하는 전략을 택한 반면'에 슈틀리케 감독은 '민감한 반응을 보으면서 적절치 못한 대응을 한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히딩크 감독에의 비난의 내용은 슈틀리케 감독에의 비난의 내용과 같다.



문제는, 한국 축구의 근본 문제는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만이 한국 축구의 근본 문제를 간파하고 대처했다. 칼럼이나 기사를 쓴 기자나 그 칼럼이나 기사에 인용된 전문가들의 의견들은 한국 축구의 근본 문제를 아무도 제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축구의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축구 선수들 중 공격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은 상대 국가 수비수와 1:1 장면에서 돌파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외국 대표 팀의 수비수와 1:1 장면에서 돌파할 능력을 가진 선수는 차범국 전 국가대표 감독, 이영표 전 국가대표 선수 및 손흥민 현 토트넘 소속 축구 선수가 유일하다. 마찬가지로 상대 국가 공격수와 1:1 장면에서 막아낼 수 있는 한국 국가대표 수비수들 역시 손에 꼽는다.


축구에 대하여 문외한에 가까운 나조차도 '한국 축구의 문제점'에 대하여 논문을 쓰라면 수십편도 쓸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축구는 문제점이 산적해 있지만 축구 언론 시장은 '순혈주의'에 입각하여 여전히 엉뚱한 방향으로만 비난을 해댄다.



3. 뭐, 이런 현상이야 수십년을 이어왔고 그래서 만성이 되어 그러려니 하면서 기사들을 훑어가다가 한 기사에서 그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지금 한국 축구는 과거의 한국 축구와는 달리 헝그리 정신이 실종되었다".


헝그리 정신? 21세기가 되었는데 아직도 헝그리 정신 운운하는 정신나간 사람이 기자라니. 도대체 제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하긴, 어디 그 기자 뿐인가? 어쩌다 시청했던 국가대표 경기에서 캐스터들이나 해설자들 역시 '보다 더 많은 투혼을 발휘해야 한다'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게 현실이니 말이다.


참, 지긋지긋한 이야기다. 이는 마치 한국 경제에 대하여 비판하면 '그럼 북한에 가서 살아라'라는 말만큼 한심한 이야기인데 그 한심한 이야기를 아직도 듣는다. 그리고 이 참, 지긋지긋한 이야기가 아직도 축구판에서 횡행하는 현실은 한국이 이란 원정 경기에서 42년동안 한번도 이기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4. 이런 참, 지긋지긋한 이야기가 어디 축구판에서만 있겠는가? 전근대성은 사치인, 부족사회도 안되는 씨족사회의 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작금의 한국인의 태반인데 말이다. 참, 지긋지긋하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